-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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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를 품고 찾아온다
삶은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기의 연속입니다. 이 위기는 단순히 위험한 상황을 넘어 중요한 선택을 요구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어 ‘krisis(κρίσις크리시스)’에서 유래한 ‘위기(crisis)’라는 말은 ‘분리, 구별, 결정, 판단’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이는 위기 상황에서 더는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제 새로운 방법과 관점을 찾아야만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기는 좌절이 아닌, 성장과 발전의 기회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집니다.
산불을 기다리는 식물, 위기를 기회로 삼는 자연의 지혜
자연은 위기를 기회로 삼는 놀라운 지혜를 보여줍니다.
쉬오크, 뱅크스소나무, 자이언트 세쿼이아와 같은 나무는 산불이 나기를 기다리는 특별한 생존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의 씨앗은 섭씨 200도 이상 고온에서만 솔방울이 열립니다.
특이하게도 이 씨앗에게는 날개가 있습니다. 그 덕에 씨앗은 산불이 만들어낸 뜨거운 상승기류를 타고 멀리 퍼져나갑니다.
고온의 불길은 경쟁 식물들을 모두 제거하며,
불타 죽은 나무들 또한 새로운 거름이 되어 씨앗이 뿌리내리고 싹을 틔울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줍니다.
어느 곳에서는 소방관들이 이 나무들의 번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산불을 내기도 합니다.
어떤 나물들에게 산불은 ‘위기’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기회’로 직결됨을 보여줍니다.
모든 위기가 기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자연스레 기회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위기를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감당하려는 노력이 함께할 때, 시련은 비로소 성장과 성숙의 밑거름이 됩니다.
반대로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이로써 좌절하고 끝내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고난 속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는 태도
결국 삶이 고난과 괴로움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변화와 성장의 기회'라는 날개 달린 씨앗을 품고 찾아온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시련을 맞이하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강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이 애당초 고달픈 여정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 찾아오는 때때로의 행복한 순간과 성장이라는 깨달음이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는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를 다르게 해석하는 사회사업가
사회사업가로서 위기를 만난 당사자를 지원할 때,
바로 이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를 지원하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사자가 처한 어려움을 단순한 고통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성장과 변화의 잠재력을 함께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어려움에 처한 당사자 곁에 그를 믿고 응원해 주는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달리 바라보고 해석하는 타자 덕에 당사자의 어려움은 값진 경험적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은 결국,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와 그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둘레 사람의 존재에 달려있습니다.
관계 속 성장의 기회
삶은 예측 불가능한 위기의 연속이지만, 모든 위기가 반드시 고통과 좌절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는 인간이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위기 속에서 형성되는 좋은 관계는 시련을 극복하고,
고난을 귀중한 경험적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집과 가족을 잃은 위기는 자연과 타인을 만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바로 이런 통찰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9세기 미국 남부, 13살 소년 허클베리 핀은 학대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가족을 찾아 도망친 노예 짐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며 수많은 위기와 사건에 휘말립니다.
우연과 인연 덕에 마주한 사건들을 슬기롭게 헤쳐 갑니다.
이들의 여정은 당시 노예 제도가 만연했던 미국 사회의 위선과 인종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서사이자,
모든 위기가 고난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허크와 짐의 우정은 인종, 나이, 계급이라는 당시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연대였습니다.
허크는 노예를 짐승처럼 취급하던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도 짐을 한 명의 존엄한 인간이자 진정한 친구로 대합니다.
짐의 자유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기꺼이 감수합니다.
어린 백인 소년과 성인 흑인 노예라는 극단적 차이 속에도 이 둘의 우정은 성장합니다.
도망쳐야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서로가 유일한 의지처가 됩니다.
고난을 함께하며 깊어진 유대감 속에서 짐은 허크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허크는 짐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뗏목 위에서 이들은 사회적 계급과 관계없이 동등한 존재로서 서로를 존중합니다.
이 모습에서 인간 존엄성과 평등의 보편적인 가치를 확인했습니다.
고난이 경험적 자산이 되는 좋은 관계의 필요성
허크의 여정에서 닥친 수많은 위기. 때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고난들이
그를 성장시킨 바탕에는 그 곁에 ‘좋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허크의 성장에는 크게 두 가지 핵심적인 관계가 작용했습니다.
첫째, 인간관계입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학대와 문명사회 위선에 지쳐 방황하던 허크에게 짐은 진정한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첫 존재였습니다.
또한, 따뜻한 마음과 인간적인 연대를 보여주는 진짜 어른이었습니다.
짐 역시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최초의 백인인 허크를 통해 인간을 향한 믿음과 희망을 얻었습니다.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며 인종이란 사회적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평등하고 진실한 관계 속에서 허크는 사회가 강요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웠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시시피 강의 흐름처럼 끊임없이 닥쳐오는 위기 속에서도
한결같은 짐의 우정은 허크에게 단단한 내면의 안정감과 회복력을 주었습니다.
허크에게 닥친 다양한 위기가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게 했습니다.
둘째, 대자연과 관계입니다.
외딴 섬과 낡은 오두막, 좁은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마주한 미시시피 강이라는 광활한 대자연은
허크에게 끊임없는 변화와 자유와 위로를 베푸는 공간이었습니다.
억압적인 문명사회와 상반되는 자연 속에서 허크는 비로소 숨 쉴 틈을 얻었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안락을 떠나 모험을 택했을 때 경험할 수 있었던 자연의 순환과 밤하늘의 별, 강물 위에서 사색은
허크가 모순적인 문명사회 틀을 깨닫고 더 넓은 시야를 갖는 데 기여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강의 흐름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존재하는 자연은 허크에게 짐의 우정과 함께 중요한 안정감을 제공했습니다.
우리는 낚싯줄을 드리웠지요. 그 다음 원기를 돋우고 몸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강 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을 쳤습니다.
수영이 끝나면 이번에는 물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모래톱 바닥에 앉아서 먼동이 트는 것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도 아무 소리 하나 들여오지 않았습니다.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지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잡을 자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만 어쩌다 먹개구리가 울어대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물 위를 저 끝까지 바라다 보고 있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희미한 선 같은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쪽 강둑에 있는 숲이었지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 하늘에 뿌연 곳이 보였고, 그것이 밝아져 검은색은 찾아볼 수 없이 회색으로 변해 갔습니다.
저 멀리 꺼뭇꺼뭇 작고 검은 점들이 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장사배들이거나 그런 비슷한 것들이었지요.
이처럼 ‘좋은 관계’ 속에서 겪는 위기는 고난으로만 끝나지 않고 ‘경험적 자산’이 되어 개인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합니다.
짐과 진정한 우정과 대자연 품 안 놓인 허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쌓아갔습니다.
이 두 존재가 없었다면 허크는 아마도 위기에 굴복하거나 기존 사회 틀에 길들여졌을지도 모릅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기존 질서에 길드는 순응하는 존재가 아닌,
허크처럼 거꾸로 세상을 자신에게 길들이려 하는 주체적인 존재들이 필요합니다.
이는 좋은 관계 속에서 겪는 고난을 통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혐오와 공동체의 역할, '좋은 관계'의 재구성
허크와 짐의 관계는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때 어떻게 혐오가 무너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허크는 짐과 직접적인 경험과 교감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편견에서 벗어나 그를 존엄한 인간으로 인식합니다.
이는 피상적인 정보와 경험 부족에서 생겨나는 현대 사회의 혐오 작동 방식과 대조됩니다.
우리 사회는 공동체 약화와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 축소로 다른 사람과 직접적 소통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은 익명성 뒤에 숨은 혐오 표현과 '에코 챔버*' 현상을 심화시켜 편향된 시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 피상적이게 됩니다.
이는 쉽게 낯섦과 불안감으로 이어져 혐오의 씨앗을 만듭니다.
공동체 유대감 약화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를 강화합니다. 이로써 외부 집단을 경계하고 쉽게 적대적으로 만듭니다.
결국, 공동체 붕괴는 다양성을 경험하고 이해할 기회 감소, 피상적인 정보와 편견 노출 증가,
‘우리’와 ‘그들’의 경계 강화 따위를 통해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허크와 짐이 제도화된 공동체에서 벗어나
낯선 타자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편견을 극복하고 진정한 인간적 연대를 맺는 과정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형태의 연결과 공감의 장, 즉 공동체입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이러한 ‘뗏목’을 만들고 ‘합승’을 제안하는 일,
즉 타자의 이해를 넓히고 혐오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핵심적인 역할일 겁니다.
*“에코 챔버 효과(eco chamber). 갇힌 방 안에서 대화하면 같은 이야기만 듣기 마련입니다.
특정 SNS에서 활동하다 보면, 갇힌 방 같은 그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처럼 느껴집니다.
유튜브를 보다보면 알고리즘이 비슷한 영상을 계속 보여줍니다.
그렇게 내가 보는 것만이 진실이라 여기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습니다.” 「미래사회와 사회복지」 (김세진, 구슬꿰는실)
마무리
이 책은 낭독 모임을 만들어 사회사업 동료 네 명과 이틀간 온종일 함께 읽었습니다.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내가 읽고 동료가 읽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났던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사회사업 동료들과 함께 읽은 허클베리핀 이야기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타인’과 만남을 통해
스스로 질문하고 성찰하며 성장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삶 역시 끊임없는 ‘떠남’과 새로운 ‘만남’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다양한 사람과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숙명이자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남겨두라
박노해
거울 앞에 서면 먼저 상처가 눈에 띈다
고문으로 상한 콧등과 급히 꿰맨 오른손
여기저기 독재 시대가 몸에 남긴 상처들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다며
지인들이 치료를 권하고
심리 치료를 해주겠다고
선의의 전문가들이 찾아온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상처는 단지 흉터가 아니다
내 인생의 흔적이고 삶의 무늬이다
나의 불운 나의 오류 나의 약점 나의 죄마저
그것이 있음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그 상처가 나를 구성하고 생성하고 있다
하여 나는 숨 쉴 때마다 힘이 드는
부러진 콧등의 불편함을 견디며 기억하련다
이 오랜 상처와 매일의 고통들이
무엇을 싹 틔우고 무엇을 비춰주고
무엇을 낳아 갈지는 신비의 영역이다
사람에겐 견디는 힘과 승화의 힘이
자연히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으니
스스로 치유할 여지를 남겨두라
인간의 신비를 신비로 남겨두라
하늘이 낸 목숨, 하늘이 보살피게
하늘의 몫을 좀 남겨두라
사랑은 기꺼이 상처를 입는 것
사랑하지 않는다면 상처받지도 않는다
상처 하나 없는 그는 타인들을 상처 낼뿐,
내가 상처받은 지점이야말로
위대한 힘이 깃든 빛의 장소일 수 있으니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가 와도
상처받으면서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상처 속에서도 선한 걸음을 멈추지 말기를
사랑하고 다시 사랑하기를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268쪽
- 2025년 6월에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고 만납니다.
- 사회사업가 고전 읽기 모임 : 2022년부터 사회사업가들과 함께 읽기 시작한 고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 파수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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