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경제 탐구와 생활 By 김춘광
- 20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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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텀블러 만능주의?
최근 전세계적으로 ESG가 경영 환경에 주요 고려사항이 되면서, ESG 경영을 강조하는 곳마다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와 같은 다회용기의 사용을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는 "종이 한 장 아끼기" 포스터가 붙어 있거나 사무실 곳곳에 친환경 실천을 독려하는 캠페인의 결과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노력과 실천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텀블러만 사용하면, ESG의 실천은 끝인가요?
그것으로 충분한가요? 서울은 고층 건물이 밀집한 인구 천만의 대도시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놓쳐왔지만, 바로 그 건물들이야말로 어마어마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또 하나의 오염원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7%가 건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니, 앞서 이야기한 종이컵을 텀블러로 바꾸는 것과 건물을 바꾸는 것의 차이를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 덩치, 체급이 주는 차이
관련 데이터는 이러한 현실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건물은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의 30%와 에너지 관련 배출량의 26%를 차지합니다. 미국의 경우 건물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2024년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건물 부문이 21.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과연 나 한 사람이 종이컵 한 개 아낀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마천루들을 생각해보면, 수십 층짜리 오래된 건물 하나가 비효율적인 냉난방 시스템으로 소비하는 에너지는 그 건물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직장인들이 1년간 아끼는 종이컵의 환경 효과를 하루 만에 상쇄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구요.
3. 건물, 사무실 환경을 바꿔야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행히 우리 정부도 인식을 한 듯 합니다. 정부는 2023년부터 공공건축물 신축 시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 의무대상을 연면적 500㎡ 이상, 공동주택 30세대 이상으로 확대하기 위한 ‘녹색 건축물 조성 지원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건축물의 5대 에너지(냉방, 난방, 급탕, 조명, 환기)를 정량적으로 평가하여, 건물 에너지 성능을 인증함으로써 건물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 속도를 현재 연간 1%에서 5-10%로 대폭 늘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4. ESG, 무엇부터 바꿀까?
ESG 경영의 진정한 성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각 개인의 생각의 변화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적, 구조적 변화 없이 괄목할만한 성과가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건물 부문에서의 대규모 투자와 개선이야말로 ESG의 주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ESG는 개인보다는 조직, 더 나아가 건물과 환경을 총체적으로 바꾸려는 의지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결국, 자원을 동원하고,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리더층의 각성과 생각의 변화가 없이는 탁월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투자 효과의 관점에서 보면, 노후 건물 하나의 에너지 효율 개선은 수천 명의 개별적 실천보다 훨씬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비록, 초기 투자 비용은 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비용 절감과 부동산 가치 상승이라는 경제적 이익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가 건물 부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정부 단위의 정책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움직임에 발맞추어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이루어지길 바라봅니다.
ESG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도 건물의 개선은 훨씬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령, "우리 회사는 본사 건물을 제로에너지 건물로 전환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직원들이 종이컵을 덜 쓰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 보다,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개인의 실천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실질적 효과와 효과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좀 더 크고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공간의 영향 아래서 살아갑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도 노후한 건물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종이컵을 텀블러로 바꾸는 것만 강조하기 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공간과 환경의 변화를 통해 보다 큰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 매년, 텀블러 구매나 종이컵 퇴출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쓰고 있나요? 그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본질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얻고 싶으면, 좀 더 큰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건물의 에너지 시스템 개선에 대한 투자가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 임팩트를 증폭시킬 수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이야말로 ESG의 진짜 의미를 되돌아볼 때입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 좀 더 큰 구조적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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