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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York)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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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York), 잉글랜드라는 이름의 심장

 

2025EASP 학회(East Asian Social Policy Research Network)는 잉글랜드 북부의 고도(古都) 요크에서 열렸다. 영국의 경주에 견줄만한 도시일까? 이전에도 몇 차례 그 도시를 직접 밟고 다녀왔었다. 요크 민스터 대성당의 고딕 첨탑 아래에서 복지국가의 윤리적 원형을 떠올렸고, 미클게이트 바에서 반역자들의 목이 꽂히던 기억의 문을 지나며, 사회과학자로서 우리가 다루는 구조와 삶, 정책과 권력이 구체의 역사와 어떻게 맞닿는지를 새삼 되새겼다. 학회의 논의는 발표장 안에 머무르지 않았고, 도시의 성곽과 골목, 돌바닥과 유리창 위로 흘러나왔다. 요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서였으며, 이번 EASP는 그 책장을 넘기는 발자취였다.

 

요크의 역사는 곧 잉글랜드의 역사다.”

마지막 황제라 불린 조지 6세의 칭호가 요크 공작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 도시는 단지 북부의 도시가 아니라, 잉글랜드라는 섬나라 문명의 중심을 관통하는 상징적 수도였다. 천년을 넘긴 돌벽과 진혼의 첨탑들, 반역자들의 목이 꽂혔던 성문, 덴마크의 바다 바람이 밀고 들어왔던 뱃머리의 기척까지. 요크는 시간과 공간이 쌓여 이루어진 거대한 기억의 성전이다.

 

요크 민스터 대성당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성전건립은 1220년에 시작되어 200년 넘게 이어졌다. 기독교 왕국의 꿈과 부채가 하나의 고딕 첨탑이 되어 하늘로 솟아오른 곳. 그 안에서 템플 주교는 전쟁국가에서의 전환을 위해 복지국가를 처음 언급했다(전쟁 중이던 1941). 가난한 자의 이름이 성가보다 더 높이 울려 퍼지던 순간, 성당은 단순한 신의 집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성소가 되었다. 유리창은 빛을 통과시키지만, 이곳의 광휘는 그늘에서 반사된다. 잉글랜드 복지국가의 윤리적 원형은 이 고딕 아치 속에서 태어났다. 구원이 제도가 되고, 연민이 설계가 된 공간. 요크 민스터는 돌로 쌓아올린 믿음의 형태이며, 제도로 구현된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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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들린 곳은 요크 성곽. 기원후 71, 로마 제국의 제9군단이 이곳을 요새로 삼으며 성곽을 두르기 시작했다. 9세기 덴마크 바이킹이 침입하자, 다시 그 위에 성벽을 세웠다. 처음엔 2km 남짓이었겠지만, 지금은 4.5km에 이른다. 그 위를 걷다 보면 남서쪽 정문인 미클게이트 바(Micklegate Bar)에 닿는다. 과거 왕이 입성하던 문이었다. 그러나 그 문을 가장 자주 통과한 것은 왕의 행렬이 아니라, 반역자의 잘린 머리였다. 대의와 배신, 그 피의 경계선 위에서 요크는 늘 침묵하고 있었다.

 

세번째는 클리포드 타워였다, 요크성의 중심에서 솟아오른 원형 요새. 14세기 반란군을 진압한 뒤, 클리포드의 목이 여기에 걸렸다. 도시의 이름을 지닌 자가 도시의 심장에 의해 잘려 나가는 장면. 역사는 때로 자기 자신을 부정함으로써만 자기 정체성을 얻는다.

 

네번째는 샘블즈 거리와 시장. 1870년대, 푸줏간의 거리였고 핏물의 통로였다. 지금은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이 고스란히 유지된 채, 해리포터의 다이애건 앨리로 재탄생했다. 마법은 그렇게 늘 평범한 거리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진짜 마법은 피와 노동, 냄새와 역사 위에 세워진다. 잊지 말아야 한다. 환상은 현실의 이면일 뿐이다.

 

다섯번째, 바이킹 마을 복원. 9세기 덴마크 노르만 족이 이 땅을 밟았다. 침입자는 곧 정착자가 되었고, 적은 뿌리가 되었다. 40년 전부터 요크는 그 흔적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박물관은 단지 유물이 아니라, 말 없는 항변이다. 복원은 망각의 반대말이다. 요크는 침묵 속에 말하고, 붕괴 속에 보존하며, 파괴 속에 윤리를 세운다.

 

마지막으로 머천트 어드벤처러스 홀(Merchant Adventurers’ Hall)은 단순한 중세 유산이 아니다. 이곳은 한때 요크 상인들의 권력과 자치, 그리고 복지 실천의 중심지였다. 상인이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자가 아니라, 도시의 윤리와 공동체의 질서를 조직하던 시절. 그 공간이 지금은 학회, 결혼식, 리셉션 등 다양한 공공의 장으로 살아 있다. 흥미롭게도, 이번 EASP 학회장으로 선임된 학계 선배가 유학 시절 바로 이곳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도시와 인간, 기억과 역할 사이에 흐르는 묘한 순환이 감지된다. 과거의 서비스 노동이 오늘의 학문적 리더십으로, 장소와 정체성이 교차하는 그 감회는 요크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의 농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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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는 그렇게 거대한 미망의 도시였다.

성곽은 전쟁을, 성당은 구원을, 거리와 시장은 삶의 현실을, 박물관은 기억의 균열을 품고 있었다.

 

그 모든 공간을 잇는 것은 도시를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이였음을...로마 군단과 바이킹 침공, 중세의 상인들과 고딕의 장인, 신앙과 생계, 반역과 권위가 얽히며 요크는 스스로를 기억의 수도로 단련해왔다.

도시를 걸으며 복지국가란 제도 이전에 공간과 시간 속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감각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중세의 상인들이 공동체의 윤리를 세웠던 머천트 홀, 신의 이름으로 인간 존엄을 외쳤던 요크민스터, 핏물 흐르던 샘블즈 거리마저 지금은 삶과 과거의 통로가 되어 있다.

요크는 과거를 박제하기보단 균열 위에 윤리를 세우고, 폐허 위에 공동체를 상상하고 있었다.

 

오늘의 한국사회도 그렇게 복지국가를 다시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복지는 제도가 아니라 기억이며, 행정이 아니라 실천인 셈이다. 성곽처럼 지키고, 성당처럼 품으며, 시장처럼 살아 숨 쉬는 복지국가.

 

그 점에서 요크는 과거가 아니라, 저희가 마주한 미래일지도 모른다서구의 복지국가는 전쟁과 재건, 신앙과 공동체, 시장과 윤리의 충돌과 조율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 유산은 제도만이 아니라 공간과 기억, 장소와 실천의 층위로 전승되고 있다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빠르게 압축하며 복지국가의 형식을 갖춰왔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얕고 흔들리기 쉬울 수 있다.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의 이식이 아니라 기억의 내재화이며, 정책의 수입이 아니라 공간과 삶의 재구성이 아닐까?

   

요크의 성곽과 성당, 시장과 회관이 품은 역사는 복지국가는 건물이나 서류 안에만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공유해 온 거리와 서로를 기억해 온 시간 속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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