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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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는 4가지가 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가 있다. 공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네 가지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요즘에는 ‘보기, 누르기’도 있다. 어쩌면 언급한 네 가지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지도 모른다. 네 가지 소통중에 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장 많이 배우고 익히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기? 듣기? 가 아니라 압도적으로 많은 훈련을 하는 것은 ‘읽기’다. 다음으로 많이 배운 것은 ‘받아쓰기’로 시작되는 ‘쓰기’일 것이다. 그 다음에는 ‘말하기’ 약간 그리고 ‘듣기’는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을 듯하다. 듣기평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읽기’ 훈련의 연장선이다.
우리는 청각장애가 없다면 상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음성을 듣고 사실과 내용을 파악하는 것만이 듣기라면 ‘읽기’의 목적과 차이가 없다. 읽기란 텍스트에 기술된 사실과 내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활자로 된 것을 파악하는 것과는 다르다.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표정, 음성의 질, 톤, 맥락, 목소리, 태도 등을 종합하여 해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같은 내용을 책으로 보는 것과 영상을 보는 것과 현장에서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에 각각 차이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읽기와 듣기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듣기’란 상대의 말속에 숨어있는 느낌(감정)과 욕구 등을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사회복지 실천기술에서는 ‘공감적 경청’이라고 한다.
어쩌면 공감경청은 사회복지 기술이라기 보다는 모든 소통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상대의 발화속에 들어있는 느낌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 다음 소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상대가 내 얘기를 듣건 안 듣건 각자 자기 얘기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듣는 것을 나타내는 한자는 청(聽)에 해당된다. 그런데 듣는 것을 표현하는 한자가 하나 더 있다. 문(聞)이다. 聞이 사용하기 훨씬 쉽고 간단하다. 그러면 聞을 사용하면 되지, 번거롭게 聽을 왜 별도로 만들었을까? 그 쓰임이 다름을 조상들은 인지한 것이다.
聽과 聞을 비교해보자. 감각기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聞은 감각기관이 귀(耳) 하나다. 즉 귀만 있으면 되는 듣기다. 이에 비해 聽은 귀(耳)는 물론 눈(目)과 마음(心)이라는 감각 기관과 철학적 기관까지 종합한 입체적이고, 심층적 행위임을 추론할 수 있다. 여섯개의 한자로 구성된 聽을 풀어보자면 ‘귀를 왕처럼 여겨, 열개의 눈으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 듣는다’라는 의미가 聽에 담기지 않았나 생각한다. 즉 聞은 사실과 내용을 듣는 것이며, 聽은 (사실과 내용에 담긴)감정과 욕구를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20년차 현장활동을 촉진하는 전문강사를 직업으로 하고 있어, 주로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강의의뢰를 받는다. 8년전 서울의 한 자치구 해당 주무관이 강의의뢰 전화가 왔었다.
주무관 : “구청 직원을 대상으로 대강당에서 조찬강의를 요청 드립니다. 주제는 주민과 갈등소통 관련된 내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 : “인원과 장소는 어떻게 되는지요?”
주무관 : “약 150여명이고, 장소는 구청내 고정식 강당입니다.”
나 : “갈등소통 교육은 일방적 강의방식으로는 효과적이지 않아서요. 인원도 너무 많고요. 조별워크숍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당시 의뢰한 시기는 11월 중순쯤이었다. 강의의뢰를 많이 받다보면 할만한지, 아니면 어려울지 ‘촉’이 생긴다. 주무관의 의뢰 메시지를 듣는데, 촉이 영~ 별로였다. 왜냐하면 11월말에 조찬강의라고 하면 아침 7시강의를 의미한다. 구청장이 있을 것이며, 거의 전 직원이 모이는 강의일 가능성이 있다. 담당자는 새벽4~5시 정도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참여자들은 통트고, 쌀쌀한 시간에 원하지 않는 강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예상되었다. 공공분야 강사로서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강의분야는 ‘주민과 갈등소통’이라는 주제라니 시간대, 분위기, 참여자, 강의장소, 강의주제 등 모든 조건이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갈등소통 교육은 일방적 강의방식으로는 효과적이지 않아서요. 인원도 너무 많고요. 조별워크숍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돌려서 질문형태로 거절한 것이다.
그러면 주무관은 보통 “안 됩니다 / 어렵습니다 / 그 장소밖에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고, 거기에 나는 “그러면 다음 기회에 여건이 되었을 때 수행하겠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업무소통을 종결한다. 그런데 그 때 그 주무관은 이렇게 답변하지 않았고, 이렇게 응답하였다.
주무관 : “인원이 너무 많죠~, 조별워크숍 방식이어야 효과적 일텐데요. 당혹스러우시죠~ 그런데 어떻하죠? 이미 장소가 공지되어서요…실행을 위해서는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여기에 예라고 해야할지, 아니오라고 해야할지 매우 난감해졌다. 업무소통을 하다가 상대방이 5초정도 아무 반응도 없으면 당황스런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수락을 해버렸다. 수락이후 후회했으나 나는 많은 품을 들여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한 강의기획의 노력을 들여야 했으며, 경직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겨우 수행했었다. 이후 왜 내가 이 강의를 수락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결정적 이유는 주무관의 예상을 벗어난 응답내용 때문이었다.
“인원이 너무 많죠~, 조별워크숍 방식이어야 효과적 일텐데요. 당혹스러우시죠~ 그런데 어떻하죠? 이미 장소가 공지되어서요…실행을 위해서는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이 응답 내용은 나에게 어떤 임팩트를 주었는가? 내가 당연히 응답할거라 예상한 “안 됩니다 / 어렵습니다 / 그 장소밖에 없습니다”와 내용은 같다. 내가 요청한 “갈등소통 교육은 일방적 강의방식으로는 효과적이지 않아서요. 인원도 너무 많고요. 조별워크숍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에 대해 둘 다 요구사항을 들어준 것이 없다. 하지만 내 귀와 몸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5초 정도 말을 못잇게 만든 구절은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당혹스러우시죠...”였다. 이 한 마디에 나는 수락해버렸던 것이다. 무언가 묘한 느낌을 주었던 “당혹스러우시죠...” 특히 구청 주무관에게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은 내가 정서적 낯선 세계로 인도되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그 주무관이 “약 150여명이고, 장소는 구청내 고정식 강당입니다.”라고 했을 때 내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주무관은 그 느낌(감정)을 정확한 ‘언어의 그릇’으로 퍼올려 귀가 아닌 ‘입으로’ 들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이해받아지는 듯한 ‘소통(通)되는’ 상태가 되었으며, 그 과정이 수락까지 연결되어진듯 하다. 즉 그 주무관은 나의 요구를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고, 추가 비용도 들이지 않고, 나를 단번에 섭외한 셈이다.
이처럼 상대의 느낌을 입으로 들어주는 것이 ‘듣기’다. 그렇기 때문에 청각장애가 없으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며, ‘듣기’는 학습과 연습의 영역이다.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듣는 것은 어쩌면 모든 소통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의 감정과 욕구를 입으로 들어주는 것은 내 말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비용이다. 내 경험의 사례에서도 나를 어려운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섭외한 것은 ‘당혹스러우시죠...’라는 나의 감정을 입으로 들어주는 ‘비용’을 치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례를 통해 주민조직 활동현장에서 ‘듣기’의 중요성을 체험해보기로 하자.
사례1. 참여주민
“아휴, 나는 그 위기가구 가족행사 운영 리더를 처음 맡았었는데, 그 당시 코로나로 활동을 제대로 못했어요. ㅠㅠ”
*느낌 : 아쉬움, 실망
*듣기 : 행사 리더를 처음 맡으셨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으셔서 많이 아쉬우셨겠어요. / 실망스러우셨겠네요.
그런데 여기에 “아~ 그 당시에 우리 복지관에서 온라인 행사운영 방법 강의가 있었는데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면 하실수 있었겠는데요...” 등으로 방법을 제시하면, 참여주민의 속은 어떨까? 아마도 ‘잘 났어 정말~누가 그거 몰라서 얘기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사례2. 참여주민
“저는 지역에 자원봉사활동하면서 기관장님이나 시장님 표창장을 한 번도 못 받았는데 저보다 3년이나 늦게 활동한 회원은 이번에 표창을 받는다네요....”
*느낌 : 서운함
*듣기 : 선생님도 표창을 진작에 받았어야 했는데 많이 서운하시겠네요…
그런데 여기에 “에고 우리 선생님도 조금만 더 열심히 활동하시면 올해나 내년에 꼭 표창받을 수 있을 겁니다. 선생님 화이팅!”이라고 응답했다고 하면 참여주민은 서운함에서 분노로 감정이 바뀔수도 있다.
사례3. 참여주민
“이번 재난재해 활동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아 활동이 제대로 될 지 걱정했는데 참여자가 많이 조직되었어요!”
*느낌 : 기쁨
*듣기 : 재난재해 구호활동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으나 예상과 달리 참여자가 많이 모집이 되어 기쁘셨겠어요.
무엇을 열심히 하여 예상된 목표보다 결과가 더 좋았을 때 일어나는 감정은 ‘기쁨’이다. 무엇을 열심히 하지 않았으나 결과가 좋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의 감정은 기쁨이 아니라 ‘놀라움’이다. 기쁨과 놀라움의 감정은 다르다. 다른 감정을 정확하게 반영하여 들었을 때 이후 소통내용은 달라지게 된다.
다음 칼럼에서는 주민조직 활동현장에서 사회복지사, 참여주민, 공무원 등간에 소통 사례를 활용하여 상대의 감정을 듣는 연습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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