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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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가 아닌가“,
"신청을 안 했다고 안 주니까 지원을 못 받아서 (사람이) 죽고 그러는 것",
"정보화 사회라서 다 알고 있는데, 쫙 지급하고 안 받겠다는 사람은 반납하면 되는데 왜 굳이 신청하게 해서 행정력을 낭비하느냐”
얼마 전 재정 관련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이야기이다. 복지사각지대 문제 원인을 신청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편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신청주의란, 당사자가 신청해야 권리가 성립하거나 절차가 개시되는 원리이다. 이는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 격언과 같이 “모든 복지는 신청이 필요하다”는 복지서비스 수급의 전제조건이었다.
신청주의가 갖는 폐해는 그동안 사회복지현장에서도 꾸준히 제기해온 문제이다. 취약계층일수록 복잡한 증빙, 반복되는 행정 방문, 디지털 접근성 부족, 낙인과 두려움으로 접근의 어려움이 있다. 신청주의는 제도가 존재함에도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이었다. 기초생활수급신청이나 무상급식의 공휴일 중식비 지원 신청, 정보접근성이 낮은 독거 어르신 은둔 청년 불안정 노동자 등은 신청의 문턱조차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산재보험은 현장에서의 공상처리(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입었을 때, 산재보험 처리를 하지 않고 사업주가 직접 보상하는 것) 압박이나 고용불안으로 신청조차 어렵다.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편급여에 자동급여 방식을 도입해왔다. 출생과 동시에 양육 급여와 지원이 시작되고 연금수급 연령이 되면 별도의 신청이 없어도 계좌에 입금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했듯 자동지급은 오히려 행정 비용을 효율화시킨다. 미수급을 줄이는 일이 부정수급을 통제하는 것보다 행정효율성이 높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자동지급은 권리로서의 복지와 재정 절약이라는 이중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오랫동안 폐지·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된 신청주의가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일면 허탈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변화의 단초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우리사회가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더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현실적 상황이기도 하다. 어쩌면 송파 세모녀도, 망우동 모녀도, 관악구 탈북 모자와 방배동 김씨, 신촌 모녀와 같은 호모사케르의 희생이 구조를 바꾸는 사회적 제의(祭儀) 역할을 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청주의의 자동지급 전환에서 정작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다. 신청주의는 신청하면 수급자가 될수 있는데 미신청한 경우(미신청, 거부오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강점이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데 신청해도 이미 제도적으로 배제되었던 사람들은 자동지급이 되더라도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부양의무자 제도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는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가 있었지만 세부계획에서는 완화로 조정되었다. 제도적 개선 없이 신청주의가 폐지된다고 해도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많지 않다. 신청주의와 함께 혁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제도는 강한 선별주의이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신청주의는 잔인한 것이다. 그러나 더 잔인한 것은 강한 선별주의이다. 신청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별주의가 온존하는 이상 문제해결의 여지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신청주의를 폐지했다면 부양의무자 제도도 폐지되어야 한다. 신청주의가 폐지된다고 해도 선별주의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없으면 현실 속 사각지대는 여전히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국세청, 지자체, 건강보험공단 등 공공데이터 등 공적 정보와 실제 생활 사이의 격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복지사각지대는 신청을 못해서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가족의 재산을 실제 소득과 관련 없음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는 이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신청주의 폐지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폐해(弊害)들이 해결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단초를 제공한다는 의미는 자동지급이 복지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복지서비스가 충분하지 않고(형식만 있고 내용은 빈약하고) 강한 선별주의로 신청주의 폐지의 대상에 조차 포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자동지급이 된다 한들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개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신청주의의 폐지가 선별주의의 약화로, 보편복지의 확대로 이어지는 경로가 되기 위해서는 단계적 전환이 필요하다.
또 한편으로는 신청주의가 자동지급으로 단계적 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모든 사회보장서비스에 있어 신청주의는 완전히 폐지될 수는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신청주의가 아닌 인간에 대한 심사가 공적데이터를 통해 이뤄질 텐데 자동화가 가속될수록 수급 선정 또는 사회보장서비스의 기계적 선별은 더욱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의 글로 칼럼을 마무리 한다.
“가난한 이들의 곁에 있는 중립적 길잡이다. 복잡한 현실과 어긋나는 복지제도 사이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부정수급이 아니냐는 의심보다 어떤 제도가 지금 필요한지 알려주는 길잡이가 절실하다.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의 역할이다) 어떤 자동화보다 더 낫고, 필요한 일이다.”
한가지 더 덧붙임.(2017년 8월 17일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공동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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