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속동물 By 김성호
- 20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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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의 그늘에 놓인 길고양이와 도시의 과제
● 서울의 정비사업과 보이지 않는 생명들
서울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도시입니다. 낡고 오래된 주거지를 허물고 현대식 아파트와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정비사업은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2024년 3월 기준, 서울에서는 재개발 247곳, 재건축 165곳, 소규모 정비 278곳 등 총 690곳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시 전역에서 동시에 수많은 지역사회가 해체되고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변화의 과정에는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재개발 구역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길고양이들입니다. 낡은 집과 골목길은 이들에게 은신처이자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철거가 시작되면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남겨진 고양이들은 먹을 것도, 몸을 숨길 곳도 없이 공사장 주변을 떠돌며 생존의 위기에 놓입니다.
● 백사마을에서 드러난 현실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며 오랫동안 도시의 애환을 간직해온 공간이었습니다. 좁은 골목과 오래된 집들은 많은 방송과 사진작가들의 무대가 되었고, 그 풍경 속에는 늘 마을을 누비던 길고양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개발 계획이 확정되고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빈집이 하나둘 철거되자 고양이들의 은신처는 사라졌고 먹을 것과 물도 구하지 못해 상당수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공사장의 안전 문제로 돌봄 활동이 제한되면서 캣맘/캣대디들조차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살아남은 개체들 역시 공사 소음과 낯선 환경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적응하지 못한 채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백사마을의 경험은 재개발 구역에서 길고양이가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단순히 “길고양이가 알아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가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이며, 실제로는 많은 고양이가 매몰되거나 굶어 죽고 새로운 서식지에서는 주민 갈등을 일으키며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집니다.
사진설명: 철거가 진행중인 백사마을의 모습과 남겨진 길고양이
● 정비사업과 길고양이 문제의 사회적 성격
정비사업 구역에서의 길고양이 문제는 단순히 동물 보호 차원이 아닙니다.
첫째, 공사 과정의 안전 문제가 발생합니다. 철거 현장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이 구조물에 갇히거나 중장비에 의해 피해를 당하면, 이는 주민 민원으로 이어지고 언론 보도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둘째, 지역 갈등이 증폭됩니다. 길고양이 보호를 요구하는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사이의 갈등은 이미 여러 구역에서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정비사업의 추진에도 부담을 줍니다.
셋째, 도시 생태계와 보건 문제로 이어집니다. 방치된 고양이들이 새로운 구역으로 무리 지어 이동하면 쓰레기 문제나 소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곧 공공의 문제로 확산됩니다.
결국 길고양이 문제는 민원 처리 수준에서 다뤄야 할 부차적 사안이 아니라 도시 관리와 지역사회복지, 생태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비지역 길고양이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
서울시 정비사업 현장에서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필요합니다.
- 현황 조사: 정비구역 내 고양이 개체 수, 급식소 위치, 돌봄 현황을 사전에 파악해야 합니다.
- 선행 TNR: 공사 전·후로 집중적인 중성화 사업을 실시해 개체 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 점진적 적응: 급식소를 단계적으로 이동시키며 고양이가 서서히 새로운 공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임시 계류장과 생태통로 확보: 치료가 필요한 개체, 어린 개체를 보호할 수 있는 임시 공간과 안전한 이동 경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 사후 관리 체계: 공사 이후에도 모니터링과 급식소 운영, 주민 민원 대응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원칙들은 단순한 동물복지 대책이 아니라 지역사회 갈등을 예방하고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돕는 공공정책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진설명: 동물권 행동 카라가 제작한 재개발지역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 리플렛 (첨부파일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해외사례에서 배우는 길고양이 공존 정책
길고양이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도시화와 재개발을 겪은 세계 주요 도시들도 이 문제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공존을 위한 제도적 해법을 모색해 왔습니다.
- 미국 뉴욕시는 NYC Feral Cat Initiative를 중심으로 재개발 구역의 길고양이를 사전 조사 후 포획해 중성화·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사회화가 가능한 개체는 입양을, 그렇지 않은 고양이는 Working Cat Program을 통해 창고나 산업지대에 장기 배치합니다. 이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공공보건과 도시 생태계 관리의 일부로 자리 잡았습니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시는 도시 차원의 Citywide Cat Program 운영을 통해 TNR과 예방접종을 기본으로 하고 재개발 구역에서는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길고양이를 포함한 생태적 요소를 함께 검토합니다. 사회화가 어려운 개체는 안전한 외부 서식지로 옮겨, 해충 방제와 환경위생 관리에도 기여하도록 합니다.
- 영국은 Cats Protection과 RSPCA를 중심으로 지방 카운슬이 협력하여 재개발 전 서식지를 조사한 뒤, 불가피한 경우에만 포획과 이주를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농장, 마구간, 정원센터 등 안전한 서식지를 마련할 뿐 아니라 주민 갈등 예방에도 힘을 씁니다.
사진설명: LA 시의 Citywide Cat Program 책자의 표지
이러한 해외사례들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재개발과 재건축 과정에서 길고양이 보호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적 과제가 되어야 하며 지자체와 지역주민, 그리고 봉사자와 동물보호 단체가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더 나아가 길고양이 문제를 단순한 민원 차원이 아니라 도시 생태계와 공공보건을 함께 고려하는 정책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 사회복지적 시사점
길고양이 보호 문제는 사회복지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첫째, 이는 지역사회 돌봄의 확대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취약한 존재를 보호하는 태도는 곧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와 맞닿아 있습니다.
둘째,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도시 차원에서 구현하는 일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모델은 지역사회의 신뢰와 통합을 높입니다.
셋째, 이는 사회복지 실천의 패러다임 확장을 의미합니다. 사회복지는 인간을 돌보는 데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환경과 동물까지 포괄하는 One Health/One Welfare 관점이 필요합니다.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동시에 진행 중인 정비사업은 단순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넘어, 지역공동체와 도시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길고양이 문제는 주변부의 작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과제입니다. 백사마을의 경험이 보여주듯, 준비 없는 재개발은 길고양이들에게 치명적일 뿐 아니라 주민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반대로 체계적인 관리와 제도적 지원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사회복지가 지향하는 상생의 도시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재개발은 피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작은 생명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지 도시를 만드는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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