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밖복지 By 노수현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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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은 인류의 과제입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과 자연마저 수단화하는 자본 중심의 사회구조, 그로 인한 경쟁의 심화, 정보통신의 발달, 가족구조의 변화, 핵 개인화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가 바로 고립입니다. “고립을 해소한다”라는 말은 사람들이 경쟁하지 않고 모두 행복한 공동체를 만든다는 말만큼이나 추상적입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소망하되, 실천은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우선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립은 해소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입니다. 코로나19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해서 코로나19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감기처럼 코로나19를 받아들이되, 심각해지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이론적으로 인류 모두가 일정 기간 동시에 접촉을 멈추면 종식될 수 있겠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코로나19는 관리의 대상이 됐습니다.
고립도 같습니다. 고립을 낳는 구조가 그대로인데 고립만 ‘해소’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접근입니다. 코로나19 환자를 찾아 치료했다고 코로나19 자체가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고립 역시 개별 사례의 성과를 전체 문제의 해소로 과대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의 과제를 한 기관, 한 팀, 심지어 한 명의 담당자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고립 해소’라는 불가능한 목표 대신 ‘고립 관리’라는 현실적 목표를 세워야 출발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작도 전에 과제의 무게에 짓눌려 담당자가 고립됩니다.
관리에는 크게 확대·유지·축소·중단이라는 네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공적 재원 의존이 큰 복지 현장은 흔히 확대만을 관리로 오해합니다. 유지하거나 축소하면 다음 해 사업 지속을 장담하기 어렵고, 종료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확대·확산·고도화·지속화’만을 전략으로 삼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고립과 같은 새로운 사회문제일수록 이런 협소한 전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올해 어렵게 고립 당사자 5명을 발굴해서 모임을 구성했다면, 그 모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전년 대비 120% 증원이나 월 1회 모임을 2회로 늘리는 계획을 덧붙이면, 계획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현실성은 크게 떨어집니다.
고립 당사자를 발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과입니다. 당사자의 고립이 단기간 개입으로 해소될 일이었다면 애초에 고립도 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고립은 오랜 시간 외부 환경과 내부 요인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5년 된 문제를 5개월 만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고립은 단기 해결이 아니라 장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구체적 관리 방법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연락입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연락이 끊기면 사이가 멀어지고 어려울 때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연락을 유지해야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나눌 수 있습니다. 연락은 가장 기본이 되는 고립 관리 방법입니다.
연락할 때도 내용이 중요합니다. 큰 일이 있거나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휴대전화가 울리고 그 친구의 이름이 뜬다면 반갑지 않습니다. 고립 담당자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립 위험군에 정기적으로 연락드렸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반가워하는 듯했는데 어느 때인가 ‘나 아직 안 죽었다’라고 역정을 내셨답니다. 대화가 아닌 생사 확인, 모니터링의 목적이 너무 앞서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연락은 다음 방법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둘째, 대화입니다. 연락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위험 지대에 안테나를 세우는 일과 같습니다. 주파수를 열었다면 방송해야 합니다. 연락은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고 대화는 방송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라디오 디제이처럼 담당자의 일방적인 말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고립된 당사자가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부터 입을 열고 일상을 나눠야 합니다. 자꾸 고립 당사자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받고 질문이 없다면 우리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복지관을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처럼 깊은 이야기를 하라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날씨와 먹는 이야기로 충분합니다. 내가 먼저 일상을 이야기해야 상대도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관계는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배신과 오해, 냉소의 위험에도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의 마음에 닿습니다. 우리 곁의 친구들은 그런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셋째, 관계입니다. 앞의 연락과 대화가 넓게 보면 관계입니다. 관계를 셋째 요소로 따로 구분한 이유는 고립 당사자의 특별함 때문입니다. 고립 앞에 생략된 말이 ‘사회적‘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관계입니다. 공간, 자원, 정보, 관계의 단절이나 급격한 감소가 고립입니다. 그중에서도 복지 현장은 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고 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관계라고 하면 당사자들끼리의 관계와 주민과의 관계를 먼저 떠올립니다. 둘 다 중요하고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그러나 관계의 시작이 있습니다. 1단계가 이뤄져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고립 당사자 관계 맺기의 시작은 담당자와의 1:1 관계입니다. 고립 당사자는 이것만으로도 벅찬 과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른 당사자를 만나거나 이웃 모임에 참여하는 건, 이제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격입니다. 무리입니다. 지금은 담당자와의 1:1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이게 돼야 다음이 가능합니다. 사실 이것만 제대로 되면 다음 단계들은 수월합니다. 어떤 때는 다음 단계가 굳이 필요 없거나 우리가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고립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보다 고립의 위험 요소를 많이 갖춘 한국 사회가 고립에 관심을 가지는 건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나 관심만으로는 안 됩니다. 방법도 세련되어야 합니다. 마음만 앞서니 현장 담당자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현장에서 만나는 고립 담당자가 갈수록 고립됩니다. 과업은 크고 책임은 무거운데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을 단단히 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고립 해소의 무겁고 비현실적인 목표부터 버립시다.
고립은 해소가 아니라 관리입니다. 고립 당사자를 많이 발견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흘려버립시다. 고립을 찾으러 나가는 발걸음이 성과입니다. 그런 노력을 잘 기록해서 자신의 활동을 증명해야 합니다. 고립 당사자를 발견했다면 연락, 대화, 관계의 세 가지 유지 관리를 목표로 실행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기록하면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의미를 정리하고 분석해서 표현하면 성과가 됩니다. 그래야 고립 담당자가 고립되지 않으면서 고립 당사자의 곁에 머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떨어진 물방울이 바위도 깨듯이 오랫동안 곁에 있어 주기가 고립의 벽을 허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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