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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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에 대한 일곱 번째 이야기 – 선(線)의 영역 1
1. 면에서 선으로 넘어가는 순간
기획은 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기획의 순서는 면→선→점이다. 면은 질문을 통해 상황을 펼쳐가는 과정이고, 선은 그 면에서 얻은 단서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꿰는 과정이다. 점은 마지막에 찍히는 해답이다.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기획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면에서 멈추어버리기 때문이다. 자료를 모으고, 질문을 나열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까지는 잘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연결해 흐름 있는 이야기로 조립하지 못하면 기획은 여전히 흩어진 구슬에 불과하다. 바로 이 구슬을 꿰는 실,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선의 영역이다.
면을 선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면이 하나의 선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덜어냄이 필요하다. 두괄식으로 시작해 글피티로 핵심을 엮어 하나의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정리하는 것이다.
선의 영역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면에서 모은 자료를 어떻게든 연결해야만, 기획은 설득의 언어가 되고 실행으로 옮겨진다. 면이 ‘확장’이라면, 선은 ‘정리와 연결’이며, 점은 ‘집약과 결론’이다. 선은 두괄식으로 시작해 글피티로 정리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 과정에는 근거(제시)와 필력이 중요하다.
2. 선의 본질 – 두괄식으로 꿰어라
선의 영역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두괄식이다. 기획은 설명이 아니라 설득이다. 설득을 위해서는 결론을 가장 먼저 말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왜냐하면…” 이 단순한 문장이 선의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서를 미괄식으로 작성한다. 데이터와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그러니 이 사업이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해관계자의 시간을 낭비하고 집중력을 흐트러 트린다. 선의 영역에서라면, “이 사업은 기관 신뢰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으로 시작해야 한다. 결론이 분명할 때 근거와 사례는 제자리를 찾고, 설득의 강도는 높아진다.
3. 선의 도구 – 글 PT와 논리 검증
머릿속에서만 정리된 생각은 흐릿하다. 글로 꺼내야만 논리의 빈틈이 드러난다. 선의 영역에서 중요한 작업은 글 PT(글로 쓰는 프리젠테이션)다.
글 PT는 기획서를 바로 쓰기 전에, 결론-근거-요청의 구조로 핵심을 글로 풀어내는 작성의 방식이다. 글로 정리하다 보면 불필요한 설명이 줄고, 빠진 자료를 확인할 수 있으며, 논리의 비약을 교정할 수 있다.
4. 선의 영역을 드러내는 실제 사례
(1) 프로그램 참여도 향상 → 신뢰 회복
복지관의 목표는 처음에 단순했다. “프로그램 참여도를 높이자.” (6편 면의 영역 “5. 실제 사례” 참조) 그러나 면의 영역에서 질문을 이어가면서 목표는 달라졌다. 참여자는 주 1회 15명, 인근 기관 평균 40명에 비하면 현저히 적었다. 하지만 강사나 공간, 부대 조건은 모두 양호했다. 문제의 원인은 품질이 아니었다. 과거 특정 프로그램에서 발생한 주민 민원이 대규모로 확산되며 기관 신뢰가 무너졌던 것이다. 사과와 홍보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이를 “입발린 소리”라며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선의 영역에서 이 사실을 꿰어야 한다. 글 PT 형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결론] 프로그램 참여 저조의 본질은 품질 문제가 아니라 기관 신뢰 하락에 있다. 따라서 참여도 향상을 위해서는 신뢰 회복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 [근거] 참여자 수: 주 1회 15명 → 인근 기관 평균 40명의 37.5% 수준. 품질 요인 배제: 강사·공간·부대조건 모두 만족도 높음. 과거 사건: 주민 민원 발생, 담당자·강사 갈등으로 신뢰 급락. 대응 실패: 사과·홍보에도 주민은 “입발린 소리”로 인식. [함의·요청] 홍보 강화만으로는 문제 해결 불가. 6개월 신뢰 회복 플랜 필요: 공개 사과, 민원 대응 프로세스 개선, 주민자치위원회 협력 점검. |
이렇게 선의 영역에서 꿰어진 흐름은, 단순히 “참여자를 늘리자”라는 모호한 목표를 “신뢰 회복 없이는 참여도 향상도 불가능하다”라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전환한다.
(2) 기후위기 참여 전략 → 인식 전환
또 다른 사례를 보자. (6편 면의 영역 “7. 질문이 멈추는 순간 – 목표의 구체화” 참조) 처음의 목표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지역사회 참여 전략”*이었다. 하지만 면의 영역에서 질문을 확장하자 현실은 달랐다. 사람들은 “기후위기는 심각하다”고 말했지만, 실제 행동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쓰레기 분리배출이나 일회용품 사용 문제를 보면, 말과 행동이 괴리되어 있었다.
왜 그럴까? 더 깊이 들어가 보니,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때문이었다. 심각하다고 대답하는 것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지, 실제로 체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황사로 마스크를 쓰고, 폭염에 냉방비를 걱정하며, 폭우로 집이 침수되는 경험은 이미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제 선의 영역은 이 흐름을 꿰어 하나의 메시지로 정리한다. 글 PT로 다시 써보면 다음과 같다.
[결론] 주민들이 기후위기를 심각하다고 답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심각성과 개인적 연관성 체감 부족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사회 전략은 심각성과 연관성을 생활 언어로 전달하는 인식 전환 캠페인이어야 한다. [근거] 태도–행동 괴리: 말은 ‘심각’, 행동은 저조. 사회적 바람직성: 좋아 보이려는 대답, 실제로는 와닿지 않음. 현실 연관성: 황사, 폭염, 폭우 등 생활 피해 이미 진행 중. 참여 조건: 문제를 ‘내 삶과 연결된 현실’로 인식할 때 행동 전환. [함의·요청] 추상적 구호가 아닌 체감형 캠페인 필요. 폭염 열지도, 미세먼지 알림, 생활 리추얼(일회용품 줄이기) 등 구체적 행동 제안. 주민이 ‘기후위기는 나의 문제’라고 느낄 때 비로소 참여가 가능하다. |
이렇게 면의 질문이 선의 흐름으로 정리되는 순간, 막연한 “기후위기 참여 전략”이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심각성과 연관성 전달”이라는 목표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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