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속동물 By 김성호
-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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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충남 보령의 한 불법 번식장에서 123마리의 개가 구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지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냅니다. 사실 이보다 앞서 2023년 9월 경기도 화성의 합법 번식장에서 1,420마리의 개가 구조되었고 같은 해 7월 인천 강화의 합법 번식장에서도 300마리가 구조된 바 있습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번식장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개들은 상품화된 존재로 취급되어 평생을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 밀집 사육과 질병, 그리고 학대와 방치 속에서 살아갑니다
특히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번식장이 법적으로 ‘합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도 실상은 다르다는 점에 있습니다. 좁은 뜬 장에 배설물이 가득 쌓인 채 개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갇혀 있었고 마실 물조차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일부 개들은 강제로 다리가 묶여 괴사에 이르기도 했으며, 살아있는 어미 개의 복부를 절개해 새끼를 꺼내는 잔혹한 사례도 보고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단순한 관리 소홀이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허점과 이윤 중심적 제도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적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동물이 고통 속에 내몰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동물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제도’에 있습니다. 2008년부터 등록제로 운영되던 동물생산업은 2012년 신고제로 전환되었다가 2017년 다시 허가제로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강화라는 말과는 달리, 일정 규모의 시설과 인력만 갖추면 누구나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허가 이후 관리와 감독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동물들은 1년에 두세 번씩 강제 출산을 하고 남는 개체는 값싼 축산폐기물을 먹으며 버텨야 합니다. 게다가 2개월령 이하 강아지나 고양이의 매매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펫숍의 진열장에서 누군가에게 팔려나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고리는 ‘경매장’입니다. 국내에는 2천여 곳의 합법 동물생산업장이 있는데, 여기에다가 불법시설까지 합하면 약 3천 곳에 달하는 번식장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는 경매장을 거쳐 펫숍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일주일에 수차례 열리는 경매장에서 수천 마리의 어린 동물이 거래됩니다. 이 과정에서 경매업자는 낙찰된 동물 한 마리 당 수수료를 챙기고, 생산업자는 계속해서 돈을 목적으로 동물을 번식시킵니다. 결국, 생산자와 판매자, 경매업자가 얽힌 착취 구조 속에서 동물은 단순한 상품으로만 취급됩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학대와 착취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에서는 이미 제도적 대안을 마련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루시법(Lucy’s Law)’입니다. 루시는 2013년 사우스웨일스의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로, 6년 동안 반복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척추가 휘고 뇌전증과 관절염을 앓다 끝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공장식 번식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켰고, 결국 2018년 영국은 루시법을 제정했습니다. 루시법은 6개월령 미만의 강아지와 고양이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반드시 전문 브리더가 직접 대면 거래를 통해 분양하도록 규정합니다. 제3자 거래를 금지하여 대량 유통 구조를 차단한 것입니다. 독일은 더욱 엄격합니다. 브리더가 되려면 국가공인자격을 취득해야 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감독을 받습니다. 사육 환경 역시 동물의 크기에 따른 최소 면적과 채광, 환기 등 세부 기준을 철저히 적용합니다

사진설명 (영국 루시법 개정 캠페인 홍보사진. 출처: https://themayhew.org/lucys-law-the-story-of-a-little-dog-who-changed-the-world/ )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11월, 한국형 루시법이라 불릴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개·고양이 판매 금지 월령을 기존 2개월에서 6개월로 상향하고 경매장을 통한 거래 중개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습니다. 현재 일부 의원들이 다시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지만 여전히 법 제정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법이 제정되더라도 지속적인 단속과 감시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의 실효성은 보장될 수 없습니다. 인력 부족을 이유로 내버려 두지 말고 동물보호단체와의 협력 등을 통해 보완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물 경매 금지·6개월령 미만 동물 판매 제한’을 골자로 한 한국형 루시법에 대해 국민의 약 80%가 반대 의사를 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토마토그룹 여론조사 애플리케이션 ‘서치통’이 2025년 1월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성인 11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08%가 반대한다고 답했으며 찬성 의견은 20.92%에 그쳤습니다. 반대 이유로는 ‘금지가 아닌 제도적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44.12%로 가장 많았고, ‘동물권 단체 의견만을 수용한 입법권 남용’(33.82%), ‘펫산업 종사자에 대한 입법 테러’(11.76%)가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찬성 이유로는 ‘반려동물 입양 문화 정착’(44.31%), ‘시대에 역행하는 반려동물 경매 차단’(31.14%), ‘공장식 번식 제어’(15.27%)가 주로 제시되었습니다.
한편 한국펫산업연합회 등 관련 단체는 루시법이 반려동물의 특성과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며, 시행될 때는 반려동물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대규모 폐업과 일자리 상실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따라서 법안 논의 과정에서는 동물권 보호와 산업 종사자의 생계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동물권’의 문제로만 한정 지을 수 없는 것으로,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갖습니다. 우선, 동물이 이윤 논리 속에서 착취당하는 현실은 사회적 약자가 구조적으로 소외되는 인간 사회의 모습과 깊은 유사성을 보여줍니다. 사회복지는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 출발점에는 ‘힘없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물 역시 동일한 약자성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적 돌봄의 범주를 확장하여 사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번식장의 개들이 참혹하게 학대당하고 죽어나가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대다수의 반려인은 물론 전 국민들이 정서적 충격과 피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경험은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 심리사회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동물 학대 소식은 곧 가족의 고통이나 상실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애도와 상실감을 느끼며, 무력감과 죄책감, 분노와 같은 복합적인 정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사회 전반에 불안정한 심리를 확산시키고 인간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적 유대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는 정신건강 문제와 사회적 비용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사회복지가 다루어야 할 중요한 영역이 됩니다.
둘째, 번식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동물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공중보건의 영역으로 이어집니다. 브루셀라병과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은 번식장의 열악한 위생 환경에서 쉽게 발생하는데, 이는 곧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는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반려동물 번식장의 문제를 공동체 안전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예방적 차원에서 사회복지의 보건적 기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셋째, 사회복지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상호돌봄은 인간 사회 내부의 관계를 넘어 동물과 환경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One Health·One Welfare’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듯이, 인간과 동물, 환경은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관계 속에 존재합니다.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연계를 이해하고 복지 현장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역복지관이나 사회복지센터에서는 유기동물 입양 연계 프로그램, 동물 매개 활동, 반려동물 돌봄 교육 등을 통해 주민과 동물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넷째, 제도적 차원에서도 사회복지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국형 루시법과 같은 법 제정은 동물권 보장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떠한 돌봄의 가치를 지향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사회복지사는 정책 현장에서 이러한 논의가 단순히 ‘동물 애호가의 주장’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복지 담론 속에 동물권과 상생복지를 적극적으로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는 곧 사회복지의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현장 실천에서도 새로운 돌봄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따라서 반려동물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단순히 동물학대를 막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곧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과제입니다. 한국형 루시법 제정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우리 모두의 안전과 복지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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