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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관광의 차이점_주민조직사업 효과성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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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관공서, 비영리조직, 공익조직을 대상으로 강의, 워크숍을 진행하는 직업으로 주로 년말에 일감 요청을 많이 받는다. 지난 10년간 4분기에 늦가을의 정취와 고즈넉함을 여유있게 느껴본 시간이 드물다. 그러다가 해가 넘어가고, 1분기가 시작되면 많던 요청이 뚝 끊기고, 겨울잠을 자다시피 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보통 이 시기에 다른 사람들은 체력 향상과 콘텐츠 개발을 하기에 좋은 시기라고 부러워들 하지만 조직생활을 하지 않는 자영업자로서 1분기 겨울 추위와 더불어 쏟아지는 불안감과 낮은 수입에 시달리는 시간들을 견뎌야해서, 체력과 개발에 집중하기가 어렵곤 한다. 견뎌보다 불안과 두려움이 겹겹이 싸여 옴짝달싹 못 할 때가 오면, 기분과 상황을 환기하고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가기도 하고, 가족들과 떠나기도 한다. 나는 쓸쓸해서 혼자 가는 여행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함께 여행을 하다보면 이게 여행인지, 프로젝트를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나는 소위 진한 J로서 계획과 상황을 주도적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유형이다. 이런 성격이 과업에는 유리하나, 쉼에는 불리하다. 여행이 또 다른 프로젝트가 되어, 과업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에 잠시 두려움과 불안을 잊는 효과를 얻기는 하지만 여행을 함께 한 동료와 가족과 긴장과 갈등이 유발되어 상호간에 피로가 쌓였던 적이 많다. 최근에는 나이에 따르는 경륜이 생겨서 갈등을 조정하긴 하지만 속으로 다시는 함께 여행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번번이 하곤 한다.


그런데 여행이 아니라 돈 좀 써서 관광상품 패키지를 다녀오면 여행과는 다르게 회복되고, 충전되는 경험을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여행보다는 관광이 힐링과 기분전환에 더 적합함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지면 관광보다 여행이 더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자영업자로서 매일 스스로 기획하고, 새로운 제안에 기대와 불안이라는 샌드위치와 칵테일을 먹고, 마셔야 하는 처지에 있다. 이런 처지에 열달 정도 시달리다. 휴식을 목적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기획의 피곤함과 예측불가한 상황에 대한 긴장의 지속으로 휴식이 되지 않는 결과를 겪게 된다. 하지만 관광은 다른 사람이 짜주는대로 그 흐름에 나를 던지고, 내가 별도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식상하고, 뻔하게 느껴질수도 있는 관광을 나는 휴식으로 여기는 듯 하다


개념적으로도 여행(旅行)과 관광(觀光)은 다르다. 한자도 다르고, 영어도 다르다. 여행은 travel이고, 관광은 sightseeing이다. 관광은 영어와 한자 모두 보다, 구경하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에 여행에서 한자를 보면 행() 돌아다니는 것이다. 특히 영어 travel의 의미는 더 적나라하다. travel은 중세 영어 ‘travail’에서 유래하였다. travail은 프랑스어에서 들어온 말이라고 한다. 원래는 고통, 고생, 힘든 노동을 의미했다고 한다. 더 오랜 어원을 거슬러가면 쇼킹하다. 라틴어 ‘trepalium’에서 유래했다는데, 이 라틴어의 의미는 세 개의 말뚝으로 만든 고문 기구를 가리켰다고 한다. 한 마디로 옛 사람들은 여행을 개고생으로 여겼으며, 여행자는 거지, 부랑자로 취급당했다고 볼 수 있다. 100년전까지만 해도 동서양 어디에서도 여행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시도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치안, 천재지변, 기온, 낯선자에 대한 배척 등 생존에 대한 위협을 각오하고 시도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바울, 삼장법사, 명나라 정화, 마르코 폴로, 콜럼부스와 같은 세계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기나긴 여행에서 죽지않고 살아남았다는 것만해도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행과 관광의 차이점을 누군가가 재밌게 해석하여 흥미로웠다.


관광(觀光) / sightseeing

여행(旅行) / Travel

목적지 설정 후 떠남

보는 것, 구경

전문가와 업체의 상세한 계획

짜여진 코스 대로

결과 예측 확인가능

안내자 필요

휴식 속 충족

목적지 도달 시작

돈이 넉넉히 필요

내 삶과 습관 유지

편하다가 돌아와 여독

배경지식과 풍경

같은 과정 되풀이 가능

떠난 후 목적지 생김

찾는 것, 돌아다님

비전문가인 나의 느슨한, 고유한 계획

(우리) 맘 대로

결과 예측 확인 불가능

안내자 없음(동료가 있을수 있음)

힘 듦 속 충족

출발하면서 시작

돈이 소액이라도 가능

내 삶과 습관 조절

힘들다가 돌아와 깨달음

현실경험과 관계

매번 다름

몇 가지 살펴보면 떠난다는 것은 목적지를 전제하지만 여행은 일단 떠나고, 목적지가 차후에 생겼다가 변경되기도 하다가, 없어지기도 하는 예측불가한 경우라는 것이다. 관광은 휴식 속 충족인데, 여행은 힘듦 속 충족이라는 해석도 공감이 간다. 내 경우는 좀 다르지만 관광은 편하다가 돌아와 여독(旅毒)인 반면에 여행은 힘들다가 돌아와 깨달음이라고 비교한 경우도 인상적이다.


이렇게 내가 관광과 여행을 비교한 이유가 무엇일까
? 우리의 삶의 풍경과 스타일도 관광과 여행에 비유할 수 있을 듯 해서다. 즉 관광같은 스타일의 삶의 양식과 시대가 있고, 여행같은 스타일의 삶의 양식과 시대가 있을 것 같아서다. 보통 대한민국 노인세대라고 하는 65세 이상 세대는 아마도 관광같은 삶의 스타일을 살아냈고,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에 진입한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20대는 여행같은 삶을 요청받고, 선호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관광같은 삶은 예측이 가능하고, 반복적이고, ()으로서 태도를 필요로 한다면, 여행같은 삶은 예측이 어렵고, 정답이 없고, 매번 다르며, ()로서 태도를 요청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여행같은 삶의 방식이 더 심화되어 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흐름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이슈가 아니라 모든 선진사회가 보편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되어가며, 그에 따라 개인의 선택의 기회가 많아지는 반면에 선택에 따른 개인의 책임의 정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선택과 책임을 위한 사고(思考)의 피로도도 증가하고, 그에 따라 이러한 두려움과 피로도를 회피하고자 자발적 사회적 고립의 현상이 많아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즉 노인세대의 사회적 고립과 고독사의 원인은 경제적 원인과 아울러 관광같은 삶의 스타일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사회는 급격히 여행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압박받음에 따른 부적응의 원인도 있을 것이다. ‘정답이 있는 사회에서는 나이가 중요했다. 정답은 나이와 권력, 남성성을 많이 가질수록 독점기회가 높았다. 정답을 독점하고, 반복할 시간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 생존에 유리했다. 하지만 정답없는 사회, 매번 예측을 해야하는 사회에서는 나이가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않게 된다. 나이가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않는 것은 한반도에 인간사회가 유래한 이래 최초의 상황일지도 모른다.

   

주민조직 사업을 기획할 때 정답있는 사회에 익숙한 중노인세대를 위해서는 정답없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토론과 토의, 수평적 논의과 결정, 목적지가 없으나 일단 가보는 근육을 기르도록 안내하는 요소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제공하는방식의 사회복지 사업은 관광같은 삶에 익숙한 노인들을 오히려 더 관광같은 삶에 천착시키는 형국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제공하는 서비스 프로그램에서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보며, 잘 되기도 하지만, 잘 안되기도 하는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는 상황에 꾸준히 노출되도록 안내하는 기능에 가장 적합한 분야는 바로 주민조직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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