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복지재단

프로그램이나 교육 과정이 종결될 때면, 우리는 관성처럼 참여자들의 소감을 묻고 듣는 시간을 가진다. 이때 으레 나오는 소감은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와 같은 정형화된 언어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겠지만, 듣는 이에게도 말하는 이에게도 획일적이고 반복되는 언어는 성찰의 깊이를 얕게 만들고, 피로감을 안겨주기 쉽다. 그러면 어떻게 프로그램의 마무리를 ‘수고’라는 진부한 소통을 극복하면서 성찰적, 내용적으로 풍성하고, 윤택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긴다.

형식적 언어의 한계를 넘어, '이미지'로 말을 걸다: 포토 스탠딩의 작동 원리

주민조직 사업은 본질은 지역문제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성찰의 과정이 핵심성과중에 하나이다. 지역의 변화만큼 참여하는 주민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참여 과정에서의 변화'를 깊이 있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언어는 종종 이 깊은 성찰을 담아내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그 사람의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맥락, 깨달음이 '좋았다'는 단순한 한마디로 축소되어버리곤 한다. 이러한 상황을 재미있게 극복하고, 나도 몰랐던 나의 언어와 표현력의 가능성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 '포토 스탠딩(Photo Standing)'이다. 포토스탠딩은 형식적인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심층적인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현장활동과 사업에서 적용가능한 효과적인 소통 및 성찰 방법이다.

포토 스탠딩의 진행 단계는 다음과 같다.

①주제 및 질문 설정: 지역 사업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제시한다.
예: “우리가 함께한 '골목길 개선 사업'은 현재 우리 마을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요?”, “사업을 진행하며 내가 느낀 '지역 주민의 힘'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②이미지 선택과 자리 잡기: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 감정, 깨달음, 또는 사업의 결과와 과정의 의미를 가장 잘 상징하는 '사진' 한 장을 고른다. 그리고 그 사진을 앞에 놓고 각자 자리에 위치한다.(Standing).

③깊이 있는 성찰과 공유: 단순히 “만족한다”가 아니라, 자신이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와 사진 속 이미지가 사업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좀 더 창의적이고, 반전의 묘미를 위해서는 위의 방법을 역으로 응용할 수 있다. 직관적인 사진 카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다. 아무런 질문 또는 주제를 제기하지 않고, 참여자들에게 그냥 마음에 들고, 왠지 끌리는 사진을 2~3장 고르라고 한다. (이 때 내가 고르고 싶은 카드를 다른 사람이 먼저 고르게 되면, 자기 차례일 때 빌릴 수도 있다고 해도 좋다) 모든 사람이 카드를 선택한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주제 또는 질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주제와 질문을 카드를 이용하여 표현하라고 하면, 참여자들은 당혹스러워 하지만 호기심과 창의적 표현을 위한 노력의 밀도는 배가 된다. 참여자들의 수준을 고려하여 선 질문, 후 그림 선택 아니면 그 반대를 해도 된다.

상징과 은유가 이끌어내는 '인간적인 해석'의 순간

포토 스탠딩의 진정한 힘은 '느낌'을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경험을 해석'하도록 촉진한다는 데 있다. 사진이라는 시각적 매개체는 참가자를 단순한 감상자에서 자신의 내면과 지역 변화를 들여다보는 해석자로 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사례를 구성하여 포토 스탠딩의 적용을 현장감 있게 상상해보면 한 지역에서 수개월간 진행된 ‘공동체 텃밭 조성 및 운영 사업’의 평가회에서 포토 스탠딩을 적용한다. 한 어르신은 ‘단단한 뿌리를 내린 나무’ 사진을 선택했다. 이를 활용하여 “처음엔 텃밭이 잡초투성이처럼 보였어요. 모이는 사람도 몇 없었고요. 그런데 꾸준히 물 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이제 우리 텃밭이 이 나무뿌리처럼 단단하게 이웃 간에 연결된 모습 같아요. 눈에 보이는 텃밭 작물보다 마음의 뿌리를 내린 게 제일 큰 수확입니다.”라고 소감을 표현하셨다. 다른 젊은 주민은 ‘다 함께 땀 흘리며 웃는 아이들’ 사진을 골랐다. “저는 사업 성과로 텃밭의 수확량이나 운영 매뉴얼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사진을 보니, 아이들이 흙 만지면서 함께 놀 기회가 없었는데, 텃밭 덕분에 온 동네 아이들이 같이 땀 흘리는 모습을 보며 ‘사라졌던 마을의 생기’가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생기가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소감을 나눈다.

단순히 “수고하셨고 텃밭 잘 만들어졌네요”라는 평가와 소감은 ‘관계의 변화’, ‘정서적 회복’, ‘마을 생기 회복’과 같은 질적인 성과들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질적성과는 ‘언어’라는 그릇에 담기는 것이다. 참여자들의 ‘언어’가 다양하고, 질높고, 밀도가 단단하면 더 많은 질적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포토 스탠딩은 이러한 언어를 끄집어내고,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나게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다음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주민의 내적 욕구와 성과와 변화 목표를 좀 더 선명하게 반영할 수 있게 한다.

교육의 본질을 되찾는 성찰 도구: 관계를 디자인하다

우리가 시민 교육 또는 복지 교육에서 지향해야 할 바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을 넘어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경험이 곧 콘텐츠가 되는 교육이며, 특히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참여자들이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지역복지에 참여하는 주민들을 교육할 때 포토스탠딩을 활용하면 교육내용에 대한 의미를 심화시켜 효과적 가치 내재화를 도울 수 있다. 즉 경험을 단어(감정)로 끝내지 않고 이미지(상징)로 확장시켜 의미를 심화시킬 수 있다. 두번째는 참여자간 관계를 촉진한다. 각기 다른 삶의 영역에서 참여했던 주민들이 서로의 관점과 성찰을 깊이 이해하며 공동체 의식과 구심력을 형성하는 출발점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활동을 상상할 때 이야기를 형성하게 돕는다. 그래서 단순히 나열된 활동 프로세스가 아닌 주민들의 생생한 내러티브(Narrative)가 담긴 비전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사업실행과 참여의 동기 부여 자료로 만들 수 있다.

교육, 활동과정, 평가, 성과보고 등 활동의 마디마디 포토스탠딩을 적용여 현장은 “우리가 무엇을 해냈는가?”라는 기능적 질문에서 “우리에게 이 경험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으며, 우리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질문으로 이동하게 할 수 있으며, 지역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모든 현장 사회복지사와 교육활동가들에게, '포토 스탠딩'은 단어의 반복 없이 의미의 깊이를 더하고 주민 간의 단단한 연대를 이끌어내는 강력하고 ‘인간적인’도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