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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떠나보낸 사람들- 나는 왜 아직 그 시간에 멈추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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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라우마
  • 디브리핑
  • 전문가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을 했다. 

늘 변함없이 아침은 행정 서류들이 정신없이 오가며, 대책이 논의된다


한 청소년이 스스로 삶을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온 이후 사무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 자리에는 그 청소년을 오랫동안 상담해온 상담자도 함께 앉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침묵 속에서 무너지고 있었지만

회의 안건 어디에도 ' 그녀의 마음'은 없었다. 

출처: GPT(AI) 생성 이미지


자살은 늘 남겨진 사람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기며, 풀리지 않는 숙제를 준다

특히, 그중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반복적인 질문을 받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 그 사람을 돌보던 선생님은 위기상황을 인지했었나요?"

" 위험성 평가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나요?"

이 질문들은 질문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은 책임을 묻고 싶은 이야기다

그들의 슬픔은 공적 체계 안에서 '보고'와 '대책'이라는 절차로 전환되며, 누군가의 죽음은

기록이 되고, 그 곁에 있었던 사람의 아픔은 늘 생략된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경험하는 상처

그중에 제일 큰 떠나보냄 '자살'

현장의 실무자들은 내담자의 절망을 매일 함께하고, 공감으로 절망을 버티고 있다

때로는 공감이 너무 깊어져,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스며지기도 하고, 공감으로 인한 상처에 현장을 떠나기도 한다. 

전문가들을 만나면, 2차 외상, 트라우마, 공감피로 등 다양한 용언들을 쏟아내지만

사실 나에게는 용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에게 다가온 일상의 균열

한숨, 불면, 무기력, 그리고 "그 때 내가 더 잘했어야 한는건데...."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되묻는 죄책감과 자기반성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날 또 다른 내담자를 맞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고통이 개인의 회복 문제로만 남고 있다. 

기관은 사건 발생 이후 회의를 열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한다

그러나 실무자의 심리적 회복 과정은 마련되어 있지않다. 정부 및 지자체에서도 "실무자에게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결국, "실무자의 마음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구조적 선언을 함께 외치고 있다 


예산은 늘 " 대상자 중심"으로만 움직이고

"상담자 보호"는 어떠한 예산항목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관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정신건강분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 전문가니깐 흔들리면 안된다"

" 5년 차인데 그정도가지고....나때는 더했어"

" 선생님이 정신 바짝 차리셔야지 안그러면 다른 내담자들까지 혼란스러워져요"


위로의 말처럼 들리지만 감정을 금지하는 무언의 압력이다. 

슬퍼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조직의 문화 

그들은 조용히 무너지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터로 돌아간다

공감 피로의 무력감에 쌓여도, 그 누구도 그들의 눈빛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

출처: GPT(AI) 생성 이미지


자살은 '예방'의 문제라고 하지만 

자살이후에도 돌봄은 계속되고 있다. 

남겨진 사람들. 특히, 그들을 지켜보던 전문가들을 위한 돌봄이 필요하다. 

디브리핑과 심리정서적 지원체계는 실무자들의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건 실무자의 복지나 처우개선의 일환이 아닌 " 삶을 지탱하는 시스템" 이다. 


현장을 떠나가던 실무자가 이렇게 말했다

" 그 일 이후에 제 상담 말투도 달라졌어요. 더 조심스럽고, 더 사람답게요"

그의 말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상처받은 실무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회복의 힘은 또 다른 삶을 일으키는 손이 된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의 마지막'을 막는 일뿐 아니라 

'그 마지막을 지켜본 사람들'을 지키는 일에도 마음을 돌려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회복될때 , 비로소 진짜 예방이 시작된다. 


누군가 아직도 그 시간에 멈추어 있다면, 조용히 손을 내밀 용기를 가지길 희망한다

그 손을 잡을 동료들이 아직 현장에 있으니 오늘도 나는 현장을 지킨다


위의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우리주변에 '나의 이야기'로 고통받고 있는 동료들이 있는지 다시한번 그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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