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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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한 해 동안 사회복지 현장의 최전선에서 주민조직화 사업을 이끄는 부서장, 팀장들의 노고에 깊은 공감과 응원을 보낸다. 사회복지 주민조직사업 담당 팀장 여러분은 복지 서비스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팀원, 공무원, 자원봉사자, 지역 주민,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유관기관 협력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이해관계를 조율해 왔다. 그 책임감 속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빨리, 더 많이 달려가려는 조급함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치열한 활동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정지(停止)’가 주는 위로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싶다.
리더의 미덕, 멈추어 서는 용기
사람의 뇌는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빠른 변화와 즉각적인 성과를 좋아한다. 진화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침묵 속에 앉아 기다리기보다는 즉각 행동함으로써 생존해왔기에,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는 ‘행동 편향(Action Bias)’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주민조직 사업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장기적인 호흡이 필요한 일조차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실무자 시절의 미덕이 ‘부지런함’이었다면, 리더가 된 지금 연습해야 할 것은 역설적이게도 ‘멈추기’와 ‘관조하기’이다. 혹시 높은 직급이 되었음에도 실무자 때처럼 쉴 새 없이 활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나의 리더십이 헛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불안함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더의 역할은 ‘어떻게 빨리 달릴까’가 아니라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이 선택과 책임의 역량은 바쁜 몸짓이 아니라, 잠시 일을 내려놓고 깊이 생각하는 사유의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느림이 이끄는 역사적 승리의 지혜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아이들에게 인생의 대부분은 지루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려한 베스트셀러보다 수십 년간 묵묵히 사랑받는 <성경>이나 <어린 왕자> 같은 ‘롱셀러’가 출판사를 지탱하듯, 우리 사업도 매일 반복되는 주민과의 소박한 만남과 평범한 일상이 든든해야 비로소 빛나는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느림의 미학’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승리의 전략이다. 영국의 사회복지 발달사에서 현대 복지국가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한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가 있다. 이들은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혁명 대신, ‘페이비언(Fabian)’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로마 장군 파비우스(Fabius)의 전략을 따랐다. 파비우스는 당대 최강의 적, 한니발을 맞아 성급한 전면전 대신,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완만한 지구전(war of attrition)을 펼쳐 결국 로마를 구해냈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은 이처럼 ‘서서히, 꾸준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사회에 스며드는 방식을 택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저명한 극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는 급진적 혁명보다는 "따분하지만 확실한 성공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라고 선언하며 오늘날 사회복지 사상에 많은 기여를 했다. 급하고 빠른 것은 종종 관계를 해치고 인간적 존중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지만, 느리고 꾸준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주민조직사업 담당 팀장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지구전’의 지혜다.
리더십의 핵심, 비전의 내재화
특히 팀이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서는 주민조직에 대한 기관의 ‘사명과 비전’을 내재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 년에 몇 번이라도 업무를 잠시 유보하고,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우리의 땀방울이 지역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팀원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해 보기를 권한다. 이 과정이 없다면 팀원들의 활동은 고된 노동으로 전락하고, 조직은 ‘가성비’만 따지는 피로한 곳이 될 수 있다. 워렌 버핏의 파트너 찰리 멍거는 “뛰어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조금만 더 영리하게 지치지 않고 나아가면 된다”라고 우리를 위로한다. 소크라테스도, 칸트도, 다윈도 위대한 업적 뒤에는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규칙적인 삶이 있었다. 산만함과 성급함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과열된 마음을 식히는 치유의 순간이며,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내적 정비의 시간이다. 팀장들이 먼저 고요히 멈추어 설 때, 팀원들도 안심하고 자신의 호흡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느리고도 착실하게 다져진 조직의 리듬은, 훗날 폭풍처럼 몰아쳐 오는 기회를 단단히 움켜쥘 수 있는 강력한 ‘악력’을 팀원과 부서에게 선물할 것이다. 분주함이라는 압력을 잠시 내려놓고, 지루하지만 위대한 꾸준함의 길을 걷는 팀장들의 발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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