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속동물 By 김성호
-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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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고통의 뒤를 감당하는가 — 외부불경제가 만든 불공평과 동물복지의 과제”
최근 몇 년간 동물 유기, 학대, 대량 번식, 애니멀 호더 문제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론에는 충격적인 사진과 영상이 쏟아지고 사람들은 분노를 표하지만. 사건의 뒤편을 끝까지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동물의 생명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의 긴 여정입니다. 구조, 치료, 보호, 임시보호, 입양까지 이어지는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비용, 정서적 고통이 동반됩니다. 그럼에도 정작 문제를 일으킨 유기범이나 학대범, 애니멀 호더는 거의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사건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는 오늘도 또 다른 구조 현장에서 돌아왔습니다. 한 지자체에서 발생한 대형 애니멀 호더 사건이었습니다. 수십 마리의 강아지들이 좁은 공간 안에 뒤엉켜 있었고, 바닥은 이미 배설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신발이 미끄러질 만큼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활동가들과 함께 종일 똥을 치우고, 배변패드를 깔고, 물과 사료를 새로 채워주고, 겁에 질린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현장에서 느낀 냄새, 공기의 무거움, 그리고 구조된 아이들의 떨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뒤처리의 무게는 고스란히 지자체 공무원, 보호소 직원, 동물보호단체, 개인 활동가, 자원봉사자에게 돌아옵니다. 어떤 분은 오늘도 사비를 들여가며, 어떤 분은 연차를 내가며 현장에 가서 봉사를 합니다. 저 역시 수많은 구조 활동과 치료, 임시보호, 입양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반면 그 많은 고통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조사 이후 별다른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손끝에서 떠나지 않던 냄새와 무게는 그 현장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설명 : 필자가 봉사다녀온 애니멀 호더로부터 구조한 동물보호소의 한 장면
그곳에서 저는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현장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존재는 바로 학대자 당사자입니다. 동물을 학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유기하거나 길에 버리거나, 수십 마리를 감당할 능력 없이 모아놓는 호더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 뒤처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무책임이 남긴 빈틈은 언제나 ‘선의’가 대신 채우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비슷한 사건이 또 반복됩니다.
이런 현상을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y)”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피해와 비용을 그 사람이 아닌 제3자가 떠안는 구조입니다. 동물 유기·학대·방치는 전형적인 외부불경제입니다. 문제를 만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는 동안, 공동체는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오늘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복지와도 깊이 연결됩니다. 악취, 감염 위험, 이웃 갈등, 행정 부담, 주민 불안 등은 동물복지와 사회복지가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동물 문제를 다루는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위한 복지”가 함께 논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해외 여러 나라가 도입한 제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예를 들어 미국 여러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Cost of Care Legislation은 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해 구조·치료가 필요한 경우, 그 비용을 가해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단순히 “가해자에게 돈을 내게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보호소가 구조 비용 때문에 안락사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줄이고, 보호 기간 동안 필요한 진료·격리·중성화·재사회화 비용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유기·학대 행위에 대해 경제적 책임을 명확히 해 재발을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동물의 구조와 보호는 사회가 부담할 수 있지만, 문제를 만든 사람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 단순한 원칙이 법의 형태로 구체화된 것입니다.
뉴질랜드의 Animal Welfare Act 1999도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법은 고의적 학대나 대량 번식업자의 위법행위가 있을 경우 형사 처벌과 별도로 민사적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기업·업자가 개입된 사건은 단순 벌금이 아니라 구조·치료·관리 비용 전반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가해자나 당사자가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는 구조는 지속될 수 없다”는 공감대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동물복지를 단순한 자원봉사나 선의의 영역으로만 두지 않고, 사회적 책임과 제도로 연결한 것입니다.
한국도 이제 이런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단순히 비용 청구 제도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만든 사람이 문제 해결에서 빠져 있는 구조”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매번 사비를 들이고, 지자체 예산과 후원금이 반복해서 뒤처리를 담당하는 구조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사회정의나 상식적 형평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동물복지는 결국 사람의 문제와 이어지고, 사람의 문제는 다시 지역 공동체의 건강과 연결됩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지에 대해 사회복지의 언어가 기여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책임, 돌봄, 공동체, 공정성이라는 오래된 가치가 지금 이 문제에서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오늘도 구조 현장에서 만났던 강아지들이 배고픔과 무서움에 떠는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현장에 있던 분들이 함께 건네던 조용한 말들도 생각납니다.
“이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의 방향을 바로 세우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한 다음 단계라고 느꼈습니다.
해외 사례 출처
ASPCA — Cost of Care Legislation
https://www.aspca.org/improving-laws-animals/public-policy/cost-care-legislation
뉴질랜드 Animal Welfare Act 1999 (해외법령정보센터)
https://world.moleg.go.kr/web/dta/lgslTrendReadPage.do?A=A&AST_SEQ=3891&CTS_SEQ=5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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