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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그동안 공유복지플랫폼에 많은 글을 썼습니다. 확인해 보니 182편의 글을 썼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공유복지플랫폼이 있어서 생각했고 썼고 나눴습니다. 다시 확인하면 감추고 싶은 글도 있습니다. 글이란 게 신기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꺼낸 것인데, 쓰고 나면 내 것이 아닌 게 됩니다. 말처럼 사라지지도 않고 다시 담을 수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것 이상으로 많은 글을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쓰면서 채우지 못한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칼럼을 쓴다고 생각하니 이번 칼럼에 더욱 애정이 갑니다.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를요. 


'읽고 쓰는 것 외에 더 좋은 행위가 있다면 알려주시오.'


작업실 벽에 붙어 있는 엽서의 문구입니다. 인공지능의 초격차가 눈앞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어디부터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측이 돼야 준비할 텐데,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모두 다 위기를 말하는데 누구 하나 대안을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지금만 위기였던 건 아닙니다. 크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류는 위기의 역사였습니다.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위기감에 분주하고 불안만 키울 게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선 읽어야 합니다. 읽는다는 건 물론 독서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읽고, 자연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습니다. 읽는다는 건 관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세상에 관심이 있어야 변화를 읽어냅니다. 자연에 관심이 있어야 자연의 위기를 읽어냅니다. 무엇보다 사회복지는 사람을 읽어야 합니다. 사람은 모든 것의 최종 목적입니다. 정책과 프로그램의 수단이 아닙니다. 사람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다는 건 대상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독서가 책과 마주 앉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과 마주해야 합니다. 마주하는 건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결국 사람을 읽는 건 사람을 아끼며 누군가와 일대일로 마주 앉는 겁니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일대일로 마주 앉으면 읽어집니다. 그 사람의 기쁨, 슬픔, 아픔, 고난, 두려움, 설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지금의 일상이 읽어집니다. 사례조사를 하지 않아도 욕구사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무엇인가를 한다면 친밀한 대화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와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그 친구와 함께 희로애락을 나누고 생로병사의 길을 함께 걷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게 삶이라면 복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복지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자원이 부족하고 정책이 미흡하고 리더십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세상을 읽지 않아서, 사람을 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읽었다면 써야 합니다. 입으로 쓰면 말이 되고, 손으로 쓰면 글이 되고, 몸으로 쓰면 실천이 됩니다. 쓴다는 건 결국 읽은 것을 나의 방법으로 쓰는 일입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그런 앎은 나를 교만의 자리에 앉게 합니다. 나보다 모르는 사람을 얕보고, 나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만을 최선으로 생각합니다. 읽어서 알되 실천하지 않았기에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지식입니다. 수영을 책으로 배워서 깊은 물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배웠다면 몸으로 익히고 시간을 투자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깊은 물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배움이 아니라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쓰는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가장 적합한 방법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쓰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내 스타일대로 못쓰게 만드는 환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내 스타일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모르니 내 스타일대로 쓸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 합니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 과거를 맹목적으로 답습합니다. 앞선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 무작정 따라 합니다. 환경이 다르고 때가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스타일을 알 수 있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써보는 겁니다. 써봐야 압니다. 어떤 실천이 맞는지는 역설적으로 실천으로만 알게 됩니다. 실천이 또 다른 실천을 부르는 실천의 선순환입니다. 그래서 일단 써야 합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방법으로 써봐야 합니다. 


이렇게 읽고 쓰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실수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닙니다. 읽으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사회복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읽고 쓰는 사회복지사가 성숙한 사회복지사입니다. 우린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늘 만나는 사람 한 명을 읽기 위해 힘쓰는 사람입니다. 읽어서 알게 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필요를 모두 채울 수는 없어도 마음 다해 힘쓰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안 될 줄 알면서도 묵묵히 내게 주어진 오늘이란 한 페이지를 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노력이 결국 갠지스강에 물 한 방울 더하는 행동일지라도 그게 자기 일이라고 했다던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마음처럼요. 


여러분은 그런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께 마음 다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공유복지플랫폼의 글로는 만나지 못하지만, 저도 저의 방법으로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갠지스강에 물 한 방울 더하는 심정으로 현장의 수고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읽어야 할 사람과 써야 할 기회가 충분합니다. 유독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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