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어디에 마음을 쓰는가

  • 자유
  • 평등
  • 공평
  • 혼돈
  • 마음쓰임
  • 엥거스맥과이어


프로야구 5회말 경기가 진행되던 중 관중 한 명이 경기장에 난입을 합니다. 우산을 들고 자켓을 입은 중년의 남성은 푸른 잔디의 외야를 가로질러 1루까지와서는 경기진행 요원에게 자수를 합니다. 모두가 집중하고 있는 경기 중에 관중이 난입할 경우 눈살이 찌푸려지고 재미가 감소할 것입니다. 그런데 관중들은 이분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유쾌해 했습니다. 관중들도, 선수들도, 감독도, 해설자도 웃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공동의 룰을 위반했음에도 사람들이 유쾌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여러 대답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짜여진 삶에서 살다가 그렇지 않은 상황이 생겨서(현실에서의 탈피), 처음 등장부터 아무런 목적이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느껴져서(순수함), 누구나 한번 쯤 해보고 싶었던 것을 보는 것이 좋아서(공감)' 등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저의 마음과 같았던 답변은 '우리 아빠 같고, 남편 같고, 친구 같고, 짠 해서'였습니다.

여러 답변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 안에는 특별히 마음쓰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마음 쓰임에는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때문에 룰을 위반했지만 탓하지 않고 웃음으로 화답하는 여유가 있던 것이지요. 일을 하면서도 잘못한 구성원이 있어도 웬지 그냥 넘어가고 싶거나 웃음까지 짓게 만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이 특별히 마음을 쓰고 있던 부분입니다. 저도 야구장에 난입한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쓰이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제가 가장 마음 쓰는 지점이죠. 현실에서 자유롭게 탈피하고 싶고, 이 순간을 자유로이 느끼고 싶고, 누구나 한번 쯤 푸른 잔디를 자유로이 뛰고 싶고, 아빠이자 남편이자 친구로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쓰였습니다.

룰은 중요합니다. 룰이 복잡할 수록 경기의 재미는 더해집니다. 수영이나 육상보다 야구나 축구 등의 단체로 하는 구기 종목이 인기가 많은 이유입니다. 룰이 복잡하다는 것은 규제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그 룰이 지켜질 때 공평해지고 선수들이 다치지 않습니다. 그런 경기일 때 사람들이 더 재밌어하고 공정하게 보상을 할 수 있는 이유로 룰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룰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도 탓하지 않는 마음 쓰임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룰은 사람의 자유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룰을 어겼더라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마음 쓰임, 그 이유를 듣고 용서하는 마음 쓰임이 있었으면 합니다.

야구 이야기를 하다보니 야구장에서 룰을 안 지키는 세 사람을 묘사한 그림이 떠 오릅니다. 사회 변화를 위한 상호작용 연구소(Interaction Institute for Social Change, IISC)의 의뢰를 받아 앵거스 맥과이어(Angus Maguire)가 그린 야구장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공평과 평등을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유용합니다. 이 그림에 야구장에 난입한 중년 남성을 넣어봅니다. 앵거스 맥과이어의 그림에서 마음을 쓰는 것은 공평과 평등입니다. 야구장의 관중 난입에서는 자유에 마음을 씁니다. 자 여기, 공평과 평등, 그리고 자유가 담긴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면서 당신이 야구장의 관중이라면 어디에 마음이 쓰이시나요? 1번 공평, 2번 평등, 3번 자유, 4번 혼돈. 그 대답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저는 4번 혼돈입니다. 공평, 평등, 자유는 각각으로 보면 가치로운 것이나 함께 모이면 가치의 대립입니다. 공평과 평등이 대립하고 공평과 평등이 자유와 대립하니 혼돈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대립과 혼돈에 의해 아름답습니다. 자유가 가치로운 것은 공평과 평등이 있기 때문이고 공평과 평등은 자유와 대립하기에 가치롭습니다. 야구장에 난입한 자유로운 관중은 룰이라는 평등의 규제와 대립하기에 마음이 쓰입니다. 돈을 내지 않고 자유롭게 야구를 관람하는 세 사람 간의 평등이 난입한 관중의 자유와 대립하기에 마음이 쓰입니다. 이러한 여러 대립들에 의한 혼돈이 그 사회를 파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각자가 마음을 쓰는 곳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생각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마음 쓰임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내 마음이 자유에 있는 사람과 평등에 마음이 쓰이는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의 장면을 보고도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입니다. 마음 쓰임이 같을 수 없으니 세상은 혼돈입니다. 하나로 정돈을 시키려면 룰이 필요합니다. 룰은 우산을 쓰고 뛰어든 중년 남성을 처벌합니다. 상자를 딛고 올라선 세 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쓰임보다 룰이 더 중요해지면 자유, 평등, 공평은 사라지고 룰이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마음 쓰임이 룰에 종속되지 않는 사회, 비록 혼돈은 있더라도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가 더 나은 사회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야 각자의 마음이 쓰이는 곳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대립으로 혼돈이지만 마음 쓰임으로 세상은 너그럽습니다. 그런 마음 쓰임을 우리는 박애라고 합니다. 자유와 평등의 대립은 박애로 정립되었고 혼돈의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