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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붉은 말의 속도에 정관자득(靜觀自得)의 방향을 더하여

  • 2026
  • 병오년
  • 속도
  • 방향
  • 붉은 말
  • 성과
  • 전문성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라고 불리는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은 속도와 역동성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새해 초반부터 세상은 빠르게 달리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는 코스피 5000을 향한 기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과 AI의 확장으로 인한 기술과 산업의 성과, 경제 회복에 대한 낙관적 전망까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앉고, 붉은 말의 등에 올라탄 듯 요란하게 앞을 향해 달려 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새해 특유의 설렘과 기대가 붉은 말의 해라는 상징에 맞닿아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역동성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과 소음이 가득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중 갈등은 구조적 대립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내 ICE 단속과 그에 대한 시위의 확산, 트럼프의 무차별적 관세 정책과 그린란드 영유권 분쟁 문제까지, 세계는 성과와 성장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동시에 갈등과 충돌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말이 빠르게 달리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많은 소음과 혼란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요즘입니다.

 

그런 연초의 어느 평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제가 사는 지역에 있는 구립도서관을 찾았습니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바깥 세상의 소란과는 전혀 다른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낮은 숨소리, 넘겨지는 책장 소리, 간간이 울리는 의자 끄는 소리뿐인 공간, 열람실은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사람 숫자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평일 아침부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소리 없이 각자의 공부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공부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진지한 태도만으로도 이 공간에 가득한 학습열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른함을 달래려 기재개를 켜던 순간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벽면에 걸린 액자였습니다. 그 안에는 마치 붉은 말의 질주와도 같이 굵고 힘 있는 필체로 네 글자의 한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정관자득(靜觀自得)

사물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깨달아 얻는다.’

 

시끄럽고 빠른 세상 한가운데서, 저마다 연초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시끌벅적한 복판에 서 있던 나에게 이 문장은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정관자득은 사전적 의미에 따라 단순히 조용히 바라보라는 말이 아니라 감정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더 빨리 판단하고, 더 크게 주장하고, 더 많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건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충분히 바라보고, 충분히 관찰하고, 충분히 생각해 봤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쩌면 붉은 말의 해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속도에 휩쓸려 관찰과 성찰을 놓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삶에서 속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라는 말이 떠 올랐습니다.

 

사회복지 및 사회적경제 현장 역시 이런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SG, 성과지표, 사업 결과 등 숫자로 환산되는 성취가 중요해진 시대일수록, 사람과 상황을 깊이 바라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복지사나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은 항상 즉각적인그리고 성과있는대응을 요구받습니다. 급하게 서두른 판단은 관계를 놓치고, 충분하지 않은 관찰은 본질을 흐린다는 것을 자주 놓치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사회복지사나 사회적경제 활동가들에게 정관자득이라는 문구는 단순한 사자성어가 아니라 전문직으로서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용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빠르게 변하는 제도와 환경 속에서 내가 만난 사람의 삶을 고요히 바라보고, 조직의 흐름을 차분히 관찰하고, 직무의 성격을 찬찬히 살펴볼 시간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속도와 성과를 요구하는 요란한 세상 속에서 사회복지사나 사회적경제 활동가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전문가로서의 실력이자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불현듯 도서관 열람실에서 마주한 정관자득이라는 네 글자는 소란한 세계 속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살아가고 싶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가 마주하는 사람과 사건, 조직과 관계만큼은 고요하고 깊게 바라보라는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야말로 사회복지사에게, 사회적경제 활동가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붉은 말이 힘차게 달려 나가는 해입니다. 달려나가야 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말에서 내려,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잠잠히 바라보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조용하지만 뜨거운 도서관 열람실처럼
, 고요 속에서 면밀하고 세심한 관찰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되는 바로 그 힘!

   

병오년 새해, 정관자득의 태도로 사물과 현상을 마주하면서 속도에 올바른 방향을 더하는 그래서 방향과 속도가 바르게 나가는 전문성을 갖춘 한 해가 되기를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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