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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어서 더 사랑 받았고 이미 효도를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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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두 배의 힘이 듭니다. 부모가 되어서 계산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안되지만 자꾸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하나라면 교육비도 반일 것이고 집도 34평이 아니라 24평이면 족할 것이고 그러면 저도 몸과 마음이 여유로울텐데 말이죠. 몸은 하나인데 둘을 사랑하려니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아주 간혹인 것이고 아이가 둘이기 때문에 제가 받는 사랑이 더 큽니다. 근심은 두 배이지만 사랑은  두배이상이죠. 이런 생각을 하면 아이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만약 하나였다면 한 아이에게서 사랑을 받았겠지만 아이가 둘이니 두 아이에게서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사랑을 주기도 쉽지 않고 받기도 어렵습니다. 구애를 해야하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여야 하나 아이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가 제게는 둘이니 하나보다 더 없이 좋습니다.

 

어린 아이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존재로 본다면 이 아이는 매우 귀합니다. 이제 성장할 것이고 성인이 되면 어른으로서의 사랑을 제게 주겠죠. 아빠인 저는 지금 성인으로서 사랑을 주고 있지만 이제 제가 나이를 먹으면 노인으로서 사랑을 주겠죠. 서로가 성장하면서 이런 교감이 일어나는 관계야 말로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아이들은 그 존재만으로 축복입니다.

 

늦장가를 가다보니 나이가 50세를 넘었음에도 우리 아이들은 아직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한 참을 키워야 하겠지만 늦장가 덕분에 이런 어른스러운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젊고 어렸다면 어쩌다 아빠가 되었을 것이고 그냥 저냥 치열하게 살다가 어른이 되었겠죠. 만약 그랬다면 그 기간을 추억하며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고 늦게 아이들을 만났기에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덕분에 아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존중이라는 것, 인정이라는 것, 그리고 서로의 인생에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어쩌면 이것이 효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전에 효도라고 하면 지게를 지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따뜻한 아래못을 지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봉양이라고 하나요? 하지만 현 시대는 지게를 질 일도 방을 데울 일도 없습니다. 고령화로 인해 노노케어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 옛날 만큼의 봉양은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노인들도 그런 봉양을 원하지도 않죠. 그저 자식들이 탈없이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됐다' 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럼 오늘 날의 효도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이미 효도를 다했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 덕분에 웃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웃는 시절이 아이들 키울 때 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내와 결혼하면서 하루에 10번은 웃게 해준다고 했지만 살아보니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저와 아내를 하루에 10번 이상은 웃게 합니다. 그게 효도이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는 것, 아이들이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 못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아이들 다운 생각을 말할 때 저는 웃습니다. 그때 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습니다. 누군에게인가 웃음과 행복을 주는 것, 그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도리를 다하니 효도인 것이지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효도를 다했다' 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을 보면 참 다양합니다. 다 제 맘 같으면 좋겠으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직원들이 소수라면 신경쓸일도 덜 할텐데 꽤 많은 직원들과 함께 하다보니 하루가 참 다사다난합니다. 일부러 그러지 않으시지만 여러 직원들의 이벤트들이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직원이 많다는 것은 일이 많다는 것이고 일이 많은 것은 조직이 성장했다는 의미이겠지요. 많은 직원들 덕에 고민도 많지만 또 직원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도움을 받습니다.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원했던 것은 헌신이었습니다. 구성원들도 최고의 가치를 헌신이라고 보았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의 생활이 있고 가족이 있고 미래와 욕구가 있습니다. 조직은 더 이상 이런 것들을 뒷받침해주지도 못합니다. 구성원들도 조직에게 바라지 않습니다. 그럼 서로를 향한 헌신이라는 가치는 무용해진 걸까요? 비록 헌신이라는 가치는 봉양처럼 옛 말이 되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조직이 살아 움직이고 기대하는 성과들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은 고민이 들게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분들 덕분에 웃습니다. 희망을 발견하죠. 조직도 일의 의미와 자기를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구성원들의 삶에 공헌합니다. 이렇듯 부모와 자녀의 관계나 직장과 구성원의 관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 관계의 본질인 서로에 대한 존중, 인정, 공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 할 곳이 있는 곳, 일할 사람이 있는 것 모두가 서로에게는 존재자체가 축복입니다.

 

저는 지금 야근중입니다. 오늘 꽤 늦게 퇴근할 것 같습니다. 첫째 아이가 학교 캠프로 저의 사무실 근처에서 1박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거주지와 직장이 꽤 멉니다. 때문에 직장 가까이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생소합니다. 웬지 기분이 묘합니다. 이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구랑 재미있게 놀고 있을까? 나를 보고 싶어하기는 할까?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하는 이 아이는 그 존재 자체가 효도입니다. 저를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저는 이 아이가 자라서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입니다. 자유로워졌을 때 저의 곁을 떠나겠지만 그것이 제게 주어진 아빠로서의 몫입니다. 구성원들도 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비록 그들과의 이별이 있겠지만 마음 것 사유하고 자유로워졌으면 합니다. 그것이 또한 리더의 몫이겠지요. 참 고마운 날들입니다


3년전 쓰고 담아 뒀던 글입니다. 제 아이들은 올해 고1과 중2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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