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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신건강 이야기 13]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관계'는 무너지고 있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곤 합니다. 

가족 간 회복, 직장과 조직 내 회복, 건강의 회복 등 다양한 의미로 활용되며, 그 의미는 실천 현장에서는 긍정적인 신호의 결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가 만나는 노인들의 가족은 해체되고, 가족이 이웃보다 못한 존재라고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노인의 우울과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사업을 수행하였습니다. 다양한 기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의 결과가 정말 '회복'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관리'에 그쳤던 걸까요?


 관계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가짜 회복'

현장에서는 노인의 정신건강 이야기를 하면, 흔히 우울 점수의 하락, 약을 꼬박꼬박 챙겨 드시는 모습, 사고 없이 조용한 하루...등을 지표로 삼고 숫자에 머무는 경우들을 자주 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회복일까요?


증상은 완화되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섞을 사람 없이 TV 소리에 의지해 잠드는 어르신을 우리는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회복은 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관계의 틈새로 사람이 다시 들어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AI 생성 이미지]


"요즘 누구와 가장 자주 대화하시나요?"

우리가 어르신을 사정(Assessment)할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잠은 잘 주무세요?"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르신, 요즘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나요?"라는 질문일지 모릅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어르신이 처한 고립의 깊이를 알 수 있으며, 관계가 무너진 곳에서 정신건강을 논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계망은 단순히 외로움을 달래는 도구가 아니라, 정신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해결사'가 아닌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우리들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보면, 직업적으로 우리는 자꾸 문제를 '해결'해주려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세련된 상담 기법보다 투박한 '연결'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 상담실에서 나누는 50분의 대화보다, 이웃과 함께 걷는 10분의 산책


- 복 비스 연결보다, 어르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동네 상점 주인과의 인연


이와같이 무너진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모든 것을 다 해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어르신이 다시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작은 틈을 열어주는 것에서 부터 출발할 수 있습니다.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를 경계하며

현장 실천가들은 어르신의 안전을 이유로 그분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곤 합니다.


"위험하니까 집에만 계세요", "건강에 안 좋으니 하지 마세요." 이런 보호의 언어들이 역설적으로 어르신을 사회로부터 더 고립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분들을 '주체'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만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서비스 제공자를 넘어 '관계의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 다시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서 문을 열어주는 일, 그리고 그 문밖에서 누군가 기다리고 있게 만드는 일. 그것이 관계가 무너져가는 시대에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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