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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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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뒤적여 보다가 아이들이 두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둘이 싸우다 그리된 듯 합니다. 많이 싸우지는 않다보니 귀한 기억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엄마와 아빠에게 혼난 기억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혼 내신거요? 화 내신거요? 저는 아빠가 혼낸 것보다는 화낸 것이 기억나요'

 

. 저는 아이들을 많이 혼 내지 않습니다. 밥을 늦게 먹는다거나, 방이나 책상이 어지럽거나,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혼을 내죠. 그런데 화을 낸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의 설명으로는 조용히 계시다가 어느 순간, 밑도 끝도 없이 화를 버럭 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제가 화를 낸 장면을 말해주었습니다. 너무나 창피해서 여기에는 못 적을 것 같습니다. 저의 흑역사입니다. 아이들이 두고 두고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특별히 혼이 난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첫째가 전혀 혼나지 않고 큰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무던한 아이입니다. 저희 말도 잘 따르고 이해심도 좋고 흔히 FM이라고 하죠? 그런 스타일의 아이입니다그래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곤 합니다. 너무 무던해서 자기 주장을 못하고 살것 같아서죠. 그래도 친구들이나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리더십이 있는 듯 하여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둘째는 특별히 혼난 기억을 말해주었습니다. 엄마가 챙겨준 영양제가 있는데 둘째는 알약을 삼키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러다보니 바로 못 먹고 조금씩 먹죠. 엄마는 시간을 두고 약을 먹는 줄 알았는데 둘째의 책상 여기저기, 가방 여기저기에서 영양제들이 나왔습니다. 약을 안 먹어서가 아니라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엄마는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네 저희는 회초리 문화가 있습니다.

 

특별히 혼난 기억이 없다고 말한 첫째는 회초리를 맞아 본 적이 있습니다. 회초리를 맞고서도 특별한 혼난 기억이 없다고 하니 이 아이의 포용심을 이해하실 듯 합니다. 하지만 둘째는 엄마가 회초리를 처음 들었을 때 도망을 갔습니다. 이때 첫째는 충격을 먹었습니다. 엄마가 회초리를 들면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럼 맞아야 하는 것인데 동생이 도망을 간 것입니다. '도망갈 수도 있구나! 천재데!' 첫째의 생각입니다. 엄마도 둘째가 도망을 가자 당황을 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이 너무나 웃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초리를 든 이상 웃으면 교육이 안 되는 것이기에 웃음을 꾹 참고 아이를 쫓아갔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는 할아버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방으로 도망갈 수도 있구나! 천재데!' 첫째의 생각입니다. 둘째는 결국 회초리를 맞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마도 회초리 문화는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둘째의 창의적 행동에 의해 회초리는 이제 해학이 되었습니다.

 

비록 회초리를 들었지만 아이들은 이를 받아들입니다. 엄마가 화가 아닌 혼을 내기 때문입니다. 반면 저는 혼이 아닌 화를 냅니다. 제가 화를 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제 깐에는 꽤 많이 참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 화를 내는 것이죠.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자꾸 그렇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화가 날 때면 자리를 피합니다. 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는 무엇이고 은 무엇일까요? 제 견해로는 화는 감정이 섞인 것이고 혼은 감정을 배제한 것입니다. 화는 폭력이고 혼은 교육입니다. 화를 낼 때의 얼굴과 혼을 낼 때의 얼굴 표정이 다릅니다. 화는 분노의 감정이 서려 있지만 혼은 슬픔의 감정이 서려 있습니다. 때문에 화를 내는 것보다는 혼을 내는 것이 좋겠지요. 이런 면에서 볼 때 엄마의 회초리는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만 아빠의 화는 빨리 잊혀졌으면 합니다.

 

당해스럽게도 조직에서는 화를 내지 않는 원장입니다. 또한 혼을 내지도 않습니다. 다들 저보다 연배도 높으시고 다들 알아서들 잘 하시는 분들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감정표현을 해서는 안 될 자리가 원장입니다. 조직에서 화를 내는 경우는 기대했던 제도와 정책이 아닐 때입니다. 특히 저희 직원들의 처우가 나빠지는 제도가 생길 것 같으면 대 놓고 온오프라인에서 싸움꾼이 되죠. 우리 어르신들에게 직원이 잘못을 했거나, 우리 직원들끼리 잘못을 했거나, 우리 직원들에게 보호자분들이 홀대를 할 경우에도 화를 냅니다. 이 모두가 안전과 인권에 위배되었을 경우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경우에는 원장이 바로 나서야 합니다.

저희 요양원에는 4대 적폐가 있습니다. 무시, 나태, 폭력, 뒷담화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직원이든 보호자이든 바로 제가 개입합니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도 아니고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위들을 그냥 넘어가게 되면 '아, 이 조직은 이래도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버립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편해지지만 그런 행위에 당하는 사람은 조직을 떠납니다. 조직을 떠나는 이유는 적폐에 의해 자신이 일을 하는 의미가 훼손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이런 행위들을 하는 분들이 몇 몇 계셨습니다. 지금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장담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언제 어느 순간에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행위들입니다. 때문에 조직은 때때마다 이런 행위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캠페인도 좋고 교육도 좋겠고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제가 나서서 혼을 내어야겠지요. 혼을 내는 것은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요양원 현장은 안타깝게도 구인을 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큰 단점이죠.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이런 사유로 징계위원회를 열면 바로 퇴사해 주십니다. 일할 곳이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 번도 4대 적폐로 징계위원회가 개최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혼만 내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요양사고에 대해서는 일절 직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시말서와와 비용 부담을 전가시키지 않습니다. 요양사고라는 것이 나태와 태만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심을 다해 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자기가 모시고 있던 어르신에게 사고가 일어나면 첫 번째 드는 생각이 '나 때문에, 내가 좀 더 살폈으면' 하는 자책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드는 생각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있게 하지 말아야지'하는 다짐입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 않았을 때 자책과 다짐을 하죠.

 

시말서는 그 목적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다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자책과 다짐을 한 사람에게 시말서를 쓰게 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내가 일부러 그랬나?, 드러워 못해먹겠네!' 시말서가 아닌 사직서가 올라 옵니다. 솔직히 요양사고의 원인을 보면 부족한 인력과 노후화된 장비입니다. 더 많은 인력을 보강하고 더 좋은 장비로 교체했다면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겠죠. 요양사고의 책임은 직원이 아니라 원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용부담도 기관에서 집니다. 책임자가 원장임에도 직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면 직원들은 머뭇 될 것입니다. 일을 미루고 피하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임은 원장은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두려워하지 마시고 성심껏 모시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것 단 한번도 직원에게 책임을 물은 적이 없습니다. 혼나야 하는 사람은 저이니까요.

 

저는 마음 착한 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혼을 낼 때는 내고 화를 낼 일이 있으면 화를 내야 합다. 원장이라는 사람이 무엇에 혼을 내고 또 어느 지점에서 화를 내는지 명확히 메시지를 보낼 때 사람들은 안전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불명확하다면 불안하고 두렵겠죠. 저를 피할 것입니다. 저는 마음 독한 원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행동은 착했던 원장으로요. 우리 직원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해줄까요? 제일 좋은 것은 제가 기억되지 않는 것입니다. 있는 듯 하지만 없으며 없는 듯 하지만 있는 사람이 리더가 아닐까 합니다. 흔적이야 남겠지만 제가 있고 없음에 따라 조직이 출렁인다면 좋은 리더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의 아이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해 줄까요?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행동이 착했던 아빠로 기억되길바라지만 그것보다도 화만 내던 아빠만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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