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1화] 발견의 기술 ― 복지사각지대는 자료가 아니라 징후속에 있다(2)

  • 복지사각지대
  • 관심
  • 일상의 대화

비슷한 경험은 다른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주민센터에서 후원품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후원품 수령을 위해 온 복지 대상자가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평소에도 워낙에 친분이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였기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막 생각났다는 듯이 혹시 옆집에 사는 분의 후원 물품도 나왔냐고 하시며 본인이 대신 받아가도 되겠냐고 물어보셨다. 신분이 확실했고 두 분이 가족처럼 의지하고 사셨던 기초생활 독거 노인과 중장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턱대고 남의 후원품을 대신 전달할 수는 없기에 무슨일이 있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이웃에 사는 독거노인 수급자분이 건강이 매우 안 좋아져서 거동도 불편하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기력도 없다고 내방한 수급자분이 이야기 해 주셨다.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연락도 하고 안부를 물었을 때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는데 그 이웃 지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냥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아 후원품은 직접 동에서 방문해서 가져다 주겠다고 하고 방문 간호사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가보기로 했다. 물품을 전달하러 가서 확인해 보니 수개월째 건강의 이상을 느끼기는 했지만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렵고 귀찮아 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선생님과 함께 설득해 병원에 가보니 이미 암이 몸의 여러군데 퍼져있었고 수술과 항암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하셨다. 기초생활수급자분들이 의료급여 대상이지만 일부 비급여 검사나 치료에 대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병원 가는 것을 많이 부담스러워 하시면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 경우도 딱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친 대상자를 위해 사례관리, 암환자의료비지원, 돌봄SOS서비스, 장기요양등급신청 등을 일괄적으로 연계하여 마음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만일 내가 그 후원품을 대신 받아주겠다고 한 수급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 독거노인 수급자분은 병을 더 키워 회복이 매우 더뎌졌거나 아니면 이미 너무 병이 진행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그림: AI Chat GPT AUTO 이미지 생성)

 

몇 해 전에는 이웃 주민의 신고를 계기로 한 가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신고 내용은 매우 단순했다. 최근 들어 해당 집의 불이 잘 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행복e음 상담내역을 확인했을 때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체납 정보도 없었고 수급 대상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방문해 보니 집 안에는 생활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중년 남성이 혼자 거주하고 있었고, 최근 실직 이후 외출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공과금은 밀리지 않았지만 식사는 불규칙했고, 집 안에는 술병이 쌓여 있었다. 행복e음의 데이터는 아무런 경고를 보내지 않았지만 삶의 균형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복지상담의 기본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문제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의 징후를 읽어내는 일이다. 행복e음으로 연계되는 자료들은 대부분 과거의 결과를 보여준다. 체납이나 단전, 단가스 등의 정보는 이미 어려움이 상당히 누적된 이후에 나타나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위기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외출이 줄어드는 변화, 식사가 불규칙해지는 모습,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과 같은 것들은 데이터로 기록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야말로 위기가 시작되는 초기 단계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신호이기도 하다.

 

결국 읍면동 복지상담에서 중요한 것은 자료를 확인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삶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들을 읽어내는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방문 상담을 갔을 때 우편함을 확인하거나, 대문이나 현관 주변의 청결 상태 등 분위기를 살피는 일, 냉장고 속 음식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 최근 외출 여부를 자연스럽게 묻는 질문과 같은 것들이 모두 그 과정에 포함된다. 이러한 관찰과 대화는 특별한 기술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복지사각지대는 많은 경우 참 의외의 상황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내방 상담의 짧은 질문에서, 이웃의 사소한 신고에서, 전입자 명단을 정비하면서 하는 전화 통화의 과정에서, 그리고 주민센터를 방문한 민원인이나 통장님, 직능단체장님들과 나누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복지사각지대는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묻고 조금 더 오래 듣는 순간 비로소 드러나는 삶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