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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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의 지역사회 통합돌봄(Community Care) 체계로의 전환은
민간 사회복지 현장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거로 예상합니다.
정확한 이유와 의도를 알지 못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할 수 없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경제적 논리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부가 통합돌봄을 서두르는 이유는 단순히 '복지 서비스의 질' 때문만은 아닐지 모릅니다.
'인구 감소'는 결국 '노동 인구 감소'로 이어집니다.
생산 인구 감소는 지금까지 지원해온 예산이 전과 같지 않을 거라 짐작하게 하고,
노동 인구 감소는 사회적 약자를 지원할 인력을 구하기 점점 어려워질 거라 예측하게 합니다.
커다란 시설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비용보다,
살던 곳에서 서비스를 받는 '재가 복지'가 국가 예산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짐작입니다.
<사회복지사의 고전 읽기>에서 소개한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습니다.
가족 생계를 책임지며 열심히 살아왔으나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한 청년 그레고르 잠자.
존재는 그대로인데 외형이 달라지거나 기능을 상실하였을 때, 둘레 사람이 그를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지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은 그를 정말 '벌레보듯' 대합니다.
방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가족의 상황도 이해는 갑니다.
이는 인지증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의 비극과 맞닿아 있습니다.
처음엔 효심으로 시작한 간병이 증오와 방임으로 변하는 과정은 개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는 선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돌봄의 구조적 모순’입니다.
그레고르 잠자의 닫힌 방문을 흔드는 손길이 '제도'라면,
그를 방 안 고립에서 나오게 하여, 다시 인간으로 살게 하는 일은 결국 '관계(공동체)'입니다.
이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두 열쇠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정책과 제도로 이뤄진 ‘사회적 지원’입니다.
그레고르 가족이 파멸한 결정적 이유는 돌봄의 책임을 오직 ‘가족’이라는 폐쇄된 체계 안에서만 해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공적 서비스와 경제적 지원 체계는 가족의 소진을 막고
그레고르를 ‘벌레’가 아닌 돌봄이 필요한 ‘가족 구성원’로 머물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한계가 있습니다. 정책과 제도만으로는 그레고르를 ‘생존’하게 할 뿐, 그를 다시 ‘살아가게’ 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열쇠인 공동체적 지원을 마련합니다.
가족과 애정, 친구와 우정, 이웃과 인정 같은 것입니다. 제도와 제도 사이에는 반드시 틈이 존재하며,
그 마른 틈을 메우는 건 결국 둘레 사람의 온기입니다.
그레고르가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이웃, 직장 동료가 그의 변신 후에도
여전히 그를 ‘그레고르’로 불러주며 교류를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인지증으로 언어를 잃고 ‘똥꽃’을 피우더라도, 그것을 혐오가 아닌 질병에 의해 달라진 소통 방식으로 이해해주는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 이는 결코 제도로는 이룰 수 없는 영역입니다.
사회적 제도가 물리적인 방 문을 연다면,
공동체적 환대는 그레고르를 방 밖으로 이끌어 다시 사람 속에 어울리게 합니다.
정책과 제도가 생명을 보존하는 ‘기술’이라면, 이웃과 인정은 존엄을 지키는 ‘예술’입니다.
<사회복지사의 고전 읽기>
정부가 주도하는 통합돌봄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했을 때,
일단 그가 굶지 않게 하고 최소한의 위생을 관리하는 '시스템적 지원'입니다.
노동 인구 감소 대응은 시스템의 유지(생존)를 위한 고육지책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바우처나 요양 서비스는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고 해서 그레고르가 곧바로 가족과 화해하거나 사회적 존재로 복귀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두 번째 열쇠, 민간 사회복지사의 진정한 전문성이 발휘되는 지점입니다.
생존이나 청결을 위한 재가 서비스 지원을 넘어, 그를 여전히 '우리 동네 이웃'으로 바라봐주는 인간관계를 연결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인력난과 같은 어려움을 해결할 열쇠는 결국 이웃, 친구, 종교 단체 같은 지역사회에 있습니다.
이는 국가 예산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삶'의 영역입니다.
그레고르 잠자의 비극은 가족이 그를 '돌봐야 할 짐'으로만 보았을 뿐,
'함께 살아야 할 존재'로 보지 못한 데서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 통합돌봄 을 맞이하며 우리가 준비할 건 '두 번째 열쇠'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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