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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덜어내기’와 가벼운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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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어 내야 보이는 것들

 

살다 보면 가끔 책상 위를 치우고, 서랍 속을 비우고, 오래 쌓아둔 책과 자료를 한꺼번에 처분하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는 대부분 참다참다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행위입니다. 그럴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걸 왜 여태 가지고 있었을까

 

그럴때마다 때로는 버리기 아까워서, 또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할지 모른다는 다소 합리적(?)인 이유로 혹은 그냥 단지 치우기 귀찮아서(?) 등과 같이 다양한 이유로 내 주변에 촘촘히 쌓아두었던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작 전에는 귀찮고, 힘든 것 같지만, 막상 한 번씩 대대적인 정리를 하고 나면 공간은 더 넓어지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책상과 서랍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사용하던 휴대폰에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역시, 어쩔 수 없이 공간을 정리하고, 사용하지 않는 어플을 지우고, 쌓인 메시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또 저장공간 부족 메시지가 떴습니다. 급기야 연락처 중에 혹시 중복되거나 필요없는 연락처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연락처를 찬찬히 뒤지다보니까 최근 5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의 번호도 있었고, 심지어는 누군지, 어디에서 만난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의 연락처까지 있었습니다. 사진 앨범에는 중복된 사진들, 변환하거나 수정한 파일과 원본 파일이 함께 남아 있었고, 다운로드 폴더에는 한 번 열어본 뒤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던 파일도 쌓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필요도 없는 것들을 짊어진 채 살고 있던가?”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서 그 대가로 비효율과 불편을 감수한 채 익숙함 뒤에 숨어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 덜어 내면서 알게 된 것들

 

이런 디지털 공간의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한 저장공간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령, 손대지 않고 쌓아 둔 수십, 수백 통의 이메일 같은 경우는 데이터센터 어딘가에 계속 쌓이고,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 수준의 전력이 소비됩니다. 다시 말해, 내가 지우지 않은 디지털 찌꺼기가 누군가의 서버를 계속 돌리게 만들고,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와 탄소배출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AI와 클라우드가 확산될수록 디지털 저장과 연산은 더 커지고, 그만큼 정보의 과잉은 환경 부담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디지털 정리는 단순한 개인 습관이 아니라, ESG의 관점에서도 점검해야 할 생활 방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 전략적 덜어내기가 필요한 기업과 조직

 

기업이나 조직도 다르지 않습니다. 회의자료, 보고서, 메일함, 과거 사업계획서, 더는 쓰지 않는 양식과 파일들이 조직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누군가가 혹시 필요할지 몰라서”, “언젠가 다시 쓸지 몰라서남겨둔 자료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찾기 어려운 짐이 됩니다. 자료는 많아지는데 정작 필요한 정보는 보이지 않습니다. 업무의 효율은 떨어지고, 협업은 느려집니다. 하나의 자료를 찾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정리는 단순히 깨끗하게 보이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무엇이 살아남아야 하는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구분하는 일입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이 구분이 흐려질수록 비효율은 자연스럽게 커집니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정리는 꽤 실용적인 일입니다. 버리면 속도가 빨라집니다. 비우면 찾기 쉬워집니다. 정리하면 기분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큽니다. 불필요한 파일을 줄이면 저장공간이 확보되고, 검색 시간이 줄어들며, 백업과 보안 관리도 쉬워집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하던대로 하기 위해 불필요한 고집을 유지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좀 더 가벼운 일처리를 위한 실천


사회복지 현장도 늘 많은 기록과 자료 속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자료가 쌓여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사례기록, 행정문서, 안내자료, 사업보고서, 회의록, 홍보물까지 쌓이다 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흐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더욱더 정돈된 정보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자료가 많다고 반드시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정보를 제때 찾고, 당장 필요한 것만 잘 남겨두는 능력이 현장의 역량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 찌꺼기를 줄이는 일은 결국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현장의 피로를 줄이며, 실천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조직과 개인이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하지 않는 앱과 파일을 정기적으로 지우고, 메일함을 주기적으로 비우고, 연락이 끊긴 연락처를 정리하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폴더를 단순하게 나누고, 중복 자료를 줄이고, 오래된 파일은 아카이브로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대청소가 아니라, 정리의 습관을 만드는 일입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AI의 활용이 이러한 정리와 단순화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리적 공간을 정돈하듯 디지털 공간도 정돈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덜 복잡하게 일하고 더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디지털 찌꺼기를 비운다는 것은 단순히 파일 몇 개를 지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습관을 정리하는 일이고, 삶의 구조를 다시 보는 일이며,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서 쌓아두었던 것들을 덜어내면, 불편은 줄고 여백은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 여백을 토대로 효율도, 만족도, 성과도 다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 속 찌꺼지도 비워보고 싶습니다. 덜어내야만 보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덜어내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있구요.

 

겨우 디지털 파일 몇 개 지운 것 뿐인데, 마치 책상위의 무거운 책들을 치워버린 것처럼 스마트폰이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손에 쥔 감각도 달라지고, 메일함을 정돈해 두니, 뭔가 마음의 압박도 줄어든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버리고 비워내는 일을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선제적이고, 우선적으로해 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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