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민주주의 By 승근배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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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의 변수
2026년 의료 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의 본격적인 시행은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이 ‘지역사회 거주(Aged in Place)’로 전환됨을 의미합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사회복지관 등은 역할 모색에 분주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법적·구조적 체계 내에서는 이들 주체가 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몇 가지의 결정적인 걸림돌이 존재합니다. 특히 서비스의 질을 결정짓는 정보접근성의 한계는 통합돌봄의 핵심적인 변수입니다.
통합돌봄의 핵심은 대상자의 보건, 의료, 요양, 복지 정보를 통합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복지관 등이 사용하는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과 공무원이 사용하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기술적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연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민관 간의 정보 격차를 발생시키고 서비스의 지체와 질적 저하를 초래합니다. 사회복지관 등이 통합돌봄의 전문 기관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역량 부족이 아니라 정보접근성의 한계입니다. 이미 이러한 한계에 의해 현장의 전통적인 전문 영역인 사례관리의 발전이 더딥니다.
제한된 정보접근권
사례관리의 출발은 정보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례관리는 대상자의 과거 이력, 보건의료 정보 등 '질 높은 정보'가 핵심입니다. 하지만 정보 접근이 차단되면 파편화된 정보만으로 서비스를 설계해야 하므로 맞춤형 지원이 어려워집니다. 정보가 제한되면 빠른 개입이 불가능하며, 결국 문제를 공무원에게 이첩해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아무리 지역의 자원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의 욕구를 파악해 낼 수 있는 정보가 미비하다면 자원과 욕구간의 미스 매칭이 발생합니다. 20년 전 만해도 공공의 영역에서 사례관리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사례관리는 지역사회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사회복지관 등의 주된 실천기술이었습니다. 정보의 한계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례관리는 공공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회복지관 등은 사례관리에 있어서 주체가 아니라 공공의 자원입니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현행 법령상 사회복지시설은 5년 주기의 위수탁 계약 체계로 운영됩니다. 3~5년마다 운영 주체가 바뀔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에서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포함한 데이터 접근권을 부여받기 어렵습니다. 짧은 위수탁 계약 기간은 사업의 연속성을 저해하고 서비스의 단절을 야기합니다. 이는 지역사회복지의 장기적 플랜 수립과 민간 파트너십 강화를 가로막는 요소입니다. 자연스럽게 책임도 부여될 수 없으니 서비스의 책임성도 약화됩니다. 짧은 위수탁 기간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전문 지식이 필요한 휴먼서비스가 아닌, 언제든 교체 가능한 단순 기술이나 연계 자원 중의 하나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공공의 데이터는 쌓여가는 반면 사회복지관 등이 확보한 정보는 파편화된 것들 뿐이니 제대로 일할 수가 없습니다. 정보는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조직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하나의 권력입니다. 정보권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준위탁(영구위탁)제도라는 대안
대안은 위수탁제도의 개선으로써 정보접근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준위탁제도(영구위탁)’입니다. 준위탁제도란 중대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운영권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사업의 영속성이 확보되면 자연스럽게 정보접근권 허용의 명분이 생기고, 시스템 간 연동도 가능해집니다. 서비스의 영속성을 보장받는 대신, 인권 침해나 회계 비리 등 결정적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즉각 계약을 취소하는 강력한 통제 장치를 병행함으로써 민간의 책임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선정되면 장기 운영이 가능할 수 있으므로, 최초 선정 단계에서 부터 투명성과 품질을 엄격히 검증하는 문화가 정착될 것입니다. 운영 과정 중에서도 책임성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제도의 설계를 제안하면 이렇습니다. 최초 위수탁 계약에서 5년의 경영권을 확보합니다. 계약 만료 5년이 도래 하기 전에 재수탁 입찰을 합니다. 여기에서 통과하면 준위탁 계약이 체결됩니다. 초기 5년을 검증의 시간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사회복지관 등이 통합돌봄의 중심이 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사회복지관 등에게 국가와 개인의 소중한 정보를 믿고 맡길 수 있느냐"라는 신뢰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준위탁제도'를 통해 운영의 안정성과 책임성을 법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준위탁제도를 통해 사회복지관 등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영속성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민간 파트너십’이자 ‘거버넌스’의 실현입니다. 정보의 흐름이 막히지 않고 실천 현장의 전문성이 장기적으로 축적될 때, 비로소 시민의 욕구에 부응하는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논의의 번외일 수 있겠지만 정보권력과 사업의 영속성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전문성의 인정이자 진정한 처우개선입니다.
운영주체의 다양성이라는 추가 과제
그러나 여기에도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사회복지관 등을 위수탁하고 있는 운영 주체의 다양성 문제입니다.사회복지관 등을 운영하는 주체는 사회복지법인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사단법인, 지역재단, 종교단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민간의 역동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공공의 입장에서 볼 때는 '표준화된 신뢰'를 담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다양성에서 오는 장점도 있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신뢰와 책임성의 격차라는 단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해관계라면 의사결정이 빠르고 쉽습니다. 반면 다양할수록 의사결정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결정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정보접근성에서 비롯됩니다. 하나의 정보를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정부는 민감한 공적 데이터를 각기 다른 운영 주체에게 동일하게 개방하기를 주저합니다. 운영 주체의 다양성으로 사회복지관 등은 매우 빠른 시간 동안 영역을 확장하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관 등이 전문기관이 아닌 통합돌봄 관련기관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신뢰의 문제로 인한 정보접근성의 한계입니다. 현재로서는 정보접근성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사회서비스원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법령으로 사회서비스원이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이유입니다. 그들은 정보권력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서비스원이 설립될 당시에 사회복지관 등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설립에 찬성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당초 사회서비스공단으로 계획되었다가 사회서비스원으로 전환되면서 노인의 장기요양 분야를 타겟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통합돌봄의 전문기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체가 될 것이고 사회복지관 등은 자원이 될 것입니다.
통합돌봄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
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20여 년 동안 고착화된 위수탁 구조 속에서는 통합돌봄의 주체가 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운영 주체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통합돌봄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준위탁제도'로의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다양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사회복지관 등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보다 엄격해야 합니다. 최초 선정 시 공정성을 기해 자격이 없는 운영 주체의 유입을 막고, 운영 과정에서 인권이나 회계 비리가 발생할 경우 즉시 계약을 파기하는 강력한 통제 장치를 두어야 합니다. 다시는 진입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합니다. 우수한 운영 주체들에게 운영권을 장기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사업의 영속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엄격함을 기반으로 한 운영의 영속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다양한 운영 주체들이 정보접근을 허용받을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얻게 될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민관 거버넌스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인권 이슈가 터지는 기관에 사회적 약자들의 정보를 넘겨주지 않습니다. 회계와 인사 비리가 만연한 기관에 신뢰를 보내지 않습니다. 5년 계약직 관장이 운영하고, 입퇴사가 빈번한 이직율이 높은 기관에 권력을 주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자원이 아니라 주체가 되고 싶다면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사회에 증명해야 됩니다. 조직의 생존, 복지관의 정체성, 시민들의 복지를 위해 사회복지관 등이 변모하게 때 비로소 우리 현장이 복지국가 건설에 공헌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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