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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와 언저리의 어느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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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제권
  • 권한위임
  • 화이트홀연구


'미저리'라는 공포영화가 있었습니다. 근래 제가 가장 무서운 말이 '언저리'입니다. 요양원의 외벽 리모델링과 피난로 공사를 준비하며 설계를 뽑고 있습니다. 설계사들이 보내오는 공사 예정금액이 몇 억 '언저리'입니다. 당초 계획했던 그림에서 몇 천 씩 깍아내고 있습니다. 최종 공사금액은 과연 몇 %'언저리'에서 낙찰될까 미저리합니다. 사람은 통제할 수 없으면 두렵습니다. '언저리'라는 말이 '미저리'보다 무서운 이유입니다.

 

비행기가 목적한 곳으로 가려면 수없이 균형을 깨뜨려야 합니다. 전투기가 공중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균형을 깨뜨려야 합니다. 균형을 깨뜨린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미저리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두렵지 않습니다. 조종사가 비행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 사라집니다.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 끊임없는 훈련을 합니다. 능숙능란하게 조정이 가능해 질 때 조종사는 자기효능감을 얻습니다. 비로소 비행기를 완전히 통제가능하게 된 조종사는 훈련기에서 전투기로 갈아탑니다.

 

사회의 고위층에 있는 사람, 부유한 사람이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좋은 음식, 주기적인 건강검진, 건강한 생활습관 덕일까요?' 1960년대 영국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사회계층과 건강사이의 역학관계를 연구했습니다. 1차 조사는 18,000명 정도의 남성공무원을 대상으로 10년 간의 추적조사였습니다. 연구의 결과는 직급이 낮을 수록 심장병 사망률이 높았습니다. 최하위 직급은 최상위 직급보다 3배 이상의 발병률을 보였고 조기 사망률은 4배였습니다. 연구진은 흡연, 콜레스테롤, 혈압 등의 건강 위험 요인을 보정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층 간의 건강격차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화이트 홀(White hall)' 이라 불리우는 이 연구의 결과는 조직내에서의 직급 차이에서 오는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직급 차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영향 요인은 권한의 정도입니다. 자신의 직무, 직무를 수행하는 방식, 결정의 권한 등이 많을수록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았습니다. 직무 난이도가 높은 고위층일수록 스트레스도 높을 것이라 가정했지만 사실은 하위층보다 스트레스가 적었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꺼리들이 하위층보다는 많기 때문에 생물학적 손상을 덜 입은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고위층일수록 보상이 큽니다. 보상의 차이는 삶의 질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 더 좋은 음식과 건강한 수면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현장을 보면 승진을 꺼려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직무 난이도가 높은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권한이 커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양한 규정과 규제에 의해 리더들이 내릴 수 있는 권한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승진을 해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는 여전히 통제를 받아야 하는 신분입니다. 리더가 되면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고용기간에 리스크가 생기는 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으니 승진이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승진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일하는 유익이 더 낫다'라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들의 선택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노동에 대한 적정하지 않은 보상 속에서 생존하는 길은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덜 일하는 것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수동적 선택을 하니 조직의 리더는 그들을 더 통제하려고 합니다. 자신도 통제당하는 상황에서 직원들까지도 본인이 통제를 하여야 하니 일이 즐거울 수 없습니다. 당연히 이런 조직에서는 생산성이 높을 수 없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조직의 언저리함에 의한 미저리에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권한과 자율성을 부여해야 하는지,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언저리들 뿐입니다. 사람은 예측할 수 없으면 통제할 수 없게 되고 통제할 수 없으면 통제받게 됩니다. 통제를 받는 사람은 미저리한 두려움에 갇히게 됩니다. 모순적이게도 통제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비행기가 목적한 곳에 가기 위해 균형을 깨야 하는 것처럼 리더는 조직을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통제하려고 하다보니 권한을 위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권한을 위임하는 순간 균형을 잃게 되면서 조직의 통제권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처 보아도 리더의 통제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가하는 규정과 규제는 리더들의 통제권 밖의 일입니다. 통제권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권한을 위임하면서 조금씩 균형을 깨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현대사회는 급변하는 환경 변화와 규제들로 인해 리더가 완벽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리더의 통제권으로 직접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당신이 직접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기 보다는 구성원들이 해낼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며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스마트 폰은 잡스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도 최태원 회장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과물들은 리더가 아니라 엔지니어들이 만들었습니다.

 

근래의 비행기들은 첨단화된 자동항법장치에 의해 움직입니다. 조종사가 하나하나 통제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변수가 있을 경우, 적이 나타났을 경우에는 조종사가 개입합니다. 근래의 조직도 그러합니다. 리더는 권한을 위임하면서 균형을 잡아주고 균형을 잃으면 다시 또 균형을 잡아 줍니다. 오늘날 리더의 역할은 권한으로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한을 내어주며 균형을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권한을 위임받은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다합니다. 조종사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은 적어졌지만 비행기는 더 잘 날아 가듯이, 리더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도 조직은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씩 내어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경험의 동의어입니다. 균형을 잃었다는 것은 시련과도 같습니다. 그렇다고 시련의 경험을 일부러 찾아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조직 자체가 시련입니다. 조직에서 균형을 잃게 되는 경험이 찾아 왔을 때 피하지도 떠넘기지도 시간에만 맡기지 맙시다. 시련은 당신의 것이 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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