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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와 대중의 무도덕(Amor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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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왈츠(나무위키 제공)


20년은 넘은 정말 오래 전의 일입니다.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때였는데 기관장이 변경되었습니다. 호봉책정을 해야했고 새로 부임하시는 기관장님이 제출하신 여러 경력증명서를 검토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두 민간 경력이었습니다. 최종 호봉 인정 경력은 16개월 정도, 2호봉이었습니다. 관련 하여 여러 일들이 있었으며 민간 경력이 모두 인정되어 최종 20호봉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원칙상 공공이나 사회복지시설 경력이 아닌 이상은 경력인정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죠.

 

이 결정에 유독 반대하는 사람은 저 하나 였습니다. 상부에서는 20호봉을 지급하라는데 말단 직원이 안된다며 2호봉이라 주장하니 모두가 난처해했습니다. 기관장을 공석으로 둘 수는 없으니 안 된다고 끝까지 버틸 수많은 없는 처지였습니다. 결국 제가 내린 결정은 '회계담당자로서 20호봉에 대한 채용 절차는 끝내겠다. 그리고 급여지급 사무도 하겠다. 그러나 해당 업무에 필요한 내부기안이나 품의서에서 나의 이름은 없다. 그러니 결재도장도 나는 찍지 않겠다'였습니다. 그리고 몇달 간 그 일을 하고 그 직장을 퇴사했습니다. 좋은 직장이었기에 아쉬움도 컸습니다.

 

다른 직장에서 겪은 또 다른 일화입니다. 입사서류를 접수했습니다. 단기계약직 채용이었고 채용공고문에 2년 이하 경력자라는 조건이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서류를 검토하여 부적격자를 거른 후 면접심사 대상자를 기관장에 보고했습니다. 몇 일이 지난 후, 기관장이 저를 부르더니 서류 탈락한 지원자 한 명을 면접 대상자에게 넣으라고 했습니다. 그 대상자는 7년차 고호봉임에도 면접을 보았고 합격을 했으며 이후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7년차 호봉끼리 경쟁했으면 탈락했을 사람이 2년차 미만의 저연차들과 경쟁하여 합격을 했고 1년 만에 내부승진으로 8호봉의 정규직이 되었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기관장과의 갈등이 있었고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옳음이란 무엇일까요?' 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신의 신념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때문에 자신의 옳음이란 반듯이 정의로운 것이며 언제나 선합니다. 이런 이유로 옳음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내가 옳다면 나와 대척하는 상대는 그르고 악하며 부정의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문제는 상대방도 자신이 옳고 선하며 정의롭다고 믿습니다. 제가 경험한 기관장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 신념을 기준으로 제 주장이 틀렸고 부정의하며 악하다고 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옳고 그름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옳음과 옳음의 싸움입니다. 누구도 자신이 틀렸고 부정의하며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 2009)에서 '한스 린다'라는 나치 장교 역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Christoph Waltz)는 가장 독창적인 소름돋는 연기로 오스카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악한 장교의 연기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연기한 독일 장교는 악하지 않습니다. 그는 악인이 아닙니다. 그 자신은 스스로를 선하다고 믿고 있으며 자신이 행한 일을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주의자이며 기회주의자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젊은 시절이었기에 제가 고려해야 될 상황과 처지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50이 넘은 지금의 나이에서는 여러모로 고려할 것들이 많습니다. 저의 결정에 의해 제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 말고도 가족들까지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 불편함이 언제 해소될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현실을 고려한 독일 장교와 같은 기회주의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결정을 옳다고 믿을 것이며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 최선이란 상대가 틀렸고 부정의하며 악하다고 몰아 세우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격렬하게 부딪칠 것이니, 진짜 도덕은 증발해버린 진공상태가 됩니다. 그 빈 곳에 기회주의와 현실주의가 채워집니다. 이를 '무도덕 상태'라 합니다.

 

무도덕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 질문과 경청을 제안합니다. 결정에 앞서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친한 사람보다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여러 타자들의 이야기가 더 유익합니다. 결정을 한 이후에도 타자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봅니다. 진공상태의 무도덕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묻고 들음으로써 연결되는 '관계'에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관계가 편협하거나 단절될수록 무도덕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질문과 경청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묻고 듣는것 만으로 무도덕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타자의 이야기를 자신 스스로에게도 물어봐야 합니다. 자신에게 묻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질문을 들어주고 답을 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공정한 관찰(Impartial Spectator)를 이야기 합니다. 나의 결정을 제3자의 관점에서 판단해주는 '마음 속의 재판관'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공동'의 관찰자('Common' Spectator)로 변형하고자 합니다. 내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관찰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소수가 아닌 다수의 타자에게 물어보고 듣는 것이 유익하듯이 내 안의 관찰자도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어야 유익합니다. 더 많이 관계되어야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무도덕의 해결은 '관계''묻고 듣는' 행위에 있습니다. 타자의 이야기와 내 안의 이야기 모두는 '관계'에 의해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들을수록 무도덕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덴트 검사도 그런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신념'을 가졌던 인물이었지만 조커에 의해 설계된 '도덕적 진공상태'에 빠지면서 무도덕 상태가 됩니다. 신념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정의라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는 고담시의 정의와 신념의 화신이었습니다. 바로 옳음이죠. 조커라는 인물도 옳음이었습니다. 고담시의 세상은 옳음과 옳음의 싸움이었으며 그렇게 도시는 도덕의 진공상태가 되어갔습니다.

 

근래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리더들을 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옳다고 믿는 무도덕 상태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그들이 누구와 관계하고 있으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면 됩니다. 그들은 대중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며 대중이 물어봐도 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옳은 결정을 최선을 다해 행동을 할 뿐입니다. 하비 덴트나 한스 린다는 결코 묻지 않았으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잘못된 판단을 내린 리더의 곁에는 쓴 소리를 하는 대중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도 옳음입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신념입니다. 타자와 자신에게 묻고 답하지 않는 대중의 목소리라면 이제 옳음과 옳음의 싸움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옳음에 의해 자신도 무도덕 상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옳은 일을 하려는 자와 옳은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자는, 타자와 자신에게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답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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