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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을 처벌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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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벌어지고 있어, 누군가 말려야 돼' '

 아니야. 끝날 때까지 놔둬. 못 본척 해. 괜히 끼어들었다가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몰라.'

 '무능해도 괜찮아. 오래 일할 수 있잖아.'

 

어느 교사의 이야기이도 하고 어느 사회복지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느 경찰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적법하지 않은 결재가 올라왔습니다. 논란이 있을 만한 사안이었지만 결재만 해주면 리더의 권한 밖에 일이 됩니다. 눈감고 도장을 찍습니다. 이제부터 리더와는 무관한 일이 됩니다. 그들은 무능함을 선택했지만 싸움에 휘말리지 않았기에 오래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잘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중재의 실패 또는 과도한 중재로 송사에 휘말려 고초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사람은 뛰어난 능력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더 나은 선을 위해 무엇인가를 도모하려고 하는 사람은 법과 규정의 외줄 위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외줄 위에 올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자는 안전하겠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자 자는 위험합니다. 이 지독한 역설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은 처벌할 수 없는가?'

 

최근 치러진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그로 인한 선관위원장·사무총장의 동반 사퇴를 봅니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기존 60%에서 50%로 축소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제대로 된 위원회 의결조차 거치지 않았습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유독 유급휴직 신청자가 많았다는 사실은 높아질 업무 강도도 이유였겠지만 선거업무의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위험을 예측하고 불편을 감수하려는 적극적 행정보다는, 기존 관행의 그늘 아래 숨어버리는 무능의 의도적 선택의 대가는 참혹합니다.

 

무능한 사람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인식은 지나치게 관대합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착하니까, 적어도 대형 사고는 안 치니까'라며 묵인하여 줍니다. 때문에 무능한 사람은 오래 일할 수 있습니다. 오래 일하다보니 인내와 꾸준함으로 포장되었고 이런 사람들이 조직의 리더가 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무능이 조직 전체의 무능이 되어 버렸고 마침내는 조직과 사회의 시스템마저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리더의 무능을 확인하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현상만 유지하고 발달된 SNS로 잘 만 포장하면 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일 뿐입니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은 필연적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각지대의 틈새를 메우고, 처음 마주하는 위기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규정을 위반하게 됩니다. 결과가 좋으면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규정 위반이라는 무거운 책임이 칼날처럼 돌아옵니다. 현장에서는 일 안 하면 칭찬은 못 받아도 징계는 안 먹는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러다 보니 조직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능력을 발휘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곧 잠재적 범법자가 될 위험을 떠안는 일입니다. 반면, 법과 매뉴얼 뒤에 숨어 현상의 유지만 고집하는 것은 완벽한 안전지대입니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무능을 기술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안내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만큼, 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위기를 못 본 척한 사람에게도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능은 지탄을 받을 지언정 처벌받지 않습니다.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지도 실수하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처벌할 근거도 없습니다. 무능한 리더 곁에는 무능한 구성원들이 남습니다. 리더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으니 일에 대한 구성원들의 스트레스가 낮아집니다. 심리적 정서적으로 안정되니 이직률도 낮아지고 직원 만족도도 높아집니다. 오늘도 어느 학교 복도에서, 어느 복지관의 문앞에서, 어느 지구대의 순찰차 안에서, 결재판을 마주한 유능한 이들은 침묵을 고민하고 무능을 연습합니다. 이들이 "버티면 그만"이라는 차가운 현실에 길들여질 때, 사회의 안전망은 안에서 부터 썩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6.3 선거 사태가 남긴 진짜 상처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하면 나만 손해'라는 냉소의 확산입니다. 무능은 조직과 사회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가장 비겁한 태만입니다. 하지만 무능은 버티면 그만이지 처벌받지 않습니다. 일을 거부한 것도 아니며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무능은 법으로 처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에서 보호해주며 복무규정으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오히려 법과 복무규정은 무엇인가를 나아지기 위해 도모한 자의 실패와 실수에 대한 처벌의 근거가 되어 줍니다. 이렇게 무능의 선택은 사회적 병리 현상이 되어 갑니다.

 

무능을 처벌하기 위해 법을 강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무능을 선택하는 이유는 외줄 위에서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법의 공포 대신 신뢰의 밧줄을 쥐여주는 보호장치가 필요합니다. 적극적 행위에 의해 송사에 휘말렸을 때 보호해 주는 법과 제도, 그 배경과 취지를 고려하여 결과가 아닌 과정을 볼 수 있는 사회적 규범이 필요합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법과 규정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도적으로 선택된 무능이 도덕적으로 심판을 받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사회와 조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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