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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통역사 페터 볼레멘의 <나무 다시보기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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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학자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고 있는 걸까?’ 남들보다 빨리 앞서가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누군가의 서툰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심지어 지쳐 있는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채찍하고 있지는 않는가?

 

독일의 세계적인 생태작가 페터 볼레벤의 나무 다시보기를 권함은 그렇게 마음이 메마르고 지쳐갈 때 조용히 위로로 다가온 책입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자연 통역사'라고 부르는데, 과학의 언어를 따뜻한 감정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숲속 나무들의 세계가 우리 인간 사회와 너무나 닮아 있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나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에 남았던 다정한 삶의 지혜들을 몇 가지 나누고 싶습니다.

 

가장 울림이 컸던 건 아카시아 나무 이야기였습니다. 기린 같은 초식동물들이 나뭇잎을 뜯어먹기 시작하면, 아카시아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몸속에 쓴맛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동시에 에틸렌 가스라는 위험 신호를 공기 중에 뿜어 주변 나무들에게 천적이 나타났음을 알립니다. 신호를 받은 이웃 나무들이 일제히 잎을 쓰게 만들면, 기린조차도 배를 다 채우지 못하고 50~100미터 밖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닫거나 날카롭고 거칠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는데 그건 상대를 무작정 거부하거나 미워해서가 아니라, 상처받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뿜는 우리만의 에틸렌 가스(방어기제)였던 것입니다. 기린이 나무의 쓴맛을 인정하고 조용히 거리를 두며 존중해 주듯, 우리도 타인이 그어둔 마음의 경계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억지로 다가가려 하지 않고 잠시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이 진짜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거센 폭풍을 견뎌낸 나무들의 뿌리 이야기 역시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한 방향에서 강풍이 불어오면,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그 반대편 땅속에 아주 굵은 버팀뿌리를 내립니다. 그것도 모자라 거대한 천막을 지탱해 주는 지지대처럼 나무의 균형을 잡아주는 수축근이라는 특별한 뿌리까지 만들어 냅니다. 돌풍에 줄기가 찢기고 균열이 생기는 혹독한 고통을 통과한 나무만이 가질 수 있는 튼튼한 닻인 셈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저마다 인생의 크고 작은 폭풍우를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삶이 비스듬히 기울어 위태롭고 상처만 가득해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삶의 밑바닥에는 그 세월을 버티기 위해 필사적으로 뻗어 내린 저마다의 버팀뿌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러진 가지만 보고 안타까워하거나 지적하기보다, 흙 속에 가려진 그 강인한 회복력을 발견하고 지지해 주는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책 속에는 유독 일찍 단풍을 틔우는 벚나무나 단풍팥배나무 이야기도 나옵니다. 유독 햇빛도 좋고 비도 많이 내려서 영양분을 가득 채운 해에는, 겨우 8월 말인데도 벌써 나뭇잎을 붉게 물들이고 겨울잠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은 여전히 푸른 잎을 달고 일하는 와중에 혼자 시들어 가니까 언뜻 보기엔 병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 이제 배 터지겠네!” 하면서 만족스럽게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라는 저자의 다정한 통역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늘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곤 합니다. 조금만 쉬어가면 게으르다고 눈총을 주고, 남들과 속도가 다르면 뒤처졌다고 다그치곤 합니다. 하지만 나무들은 말해줍니다. 모든 존재가 같은 계절에, 똑같은 속도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각자가 가진 삶의 리듬과 성장의 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나무에게서 배웁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부터 무려 9,55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스웨덴의 고목 이야기도 참 뭉클했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이 나무는 1년에 고작 몇 밀리미터씩 자랐다고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였겠지만, 나무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자라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오늘의 몇 밀리미터가 모여 내년의 변화가 되고, 수년 뒤에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성과를 빨리 내라고 재촉하기보다, 그 작은 성장의 순간들을 믿으며 묵묵히 응원해 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숲속의 나무들은 향기로 위험을 나누고, 땅속 뿌리를 서로 엮어 영양분을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거대한 고목은 죽어 썩어가는 순간까지도 평생 모아둔 양분을 토양에 내어주며 어린 후손들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숲의 세계에서 생존이란 경쟁이 아니라 철저한 연대이자 소통이었습니다. 외롭게 홀로 서서 거친 바람을 맞고 있는 이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함께 기대어 살 수 있는 따뜻한 숲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 섣부른 판단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품고 싶은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에 지쳐 마음에 가뭄이 찾아온 모든 분께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여름휴가를 떠날 시기입니다. 잠시 일상을 내려놓고 나무 다시 보기를 통해 푸른 숲이 우리에게 건네는 다정한 메시지를 들어 보길 바랍니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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