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경제 탐구와 생활 By 김춘광
- 20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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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의 바쁜 하루를 마치고 나면, “아~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힘들었다’는 말과 느낌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을 바꾸지 못했다는 무력감, 반복되는 요구와 변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 충분히 도와주지 못했다는 미안함, 존중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 등 “힘들었다” 한 마디로 넘겨 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쉽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감정은 복잡‧다양하지만, ‘우리는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이해하면서 처리할까?’ 생각해 보면, 대부분 그저 ‘힘들었다’는 말처럼 뭉뚱그려서 한꺼번에 처리해 버리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개는 “스트레스 받는다”, “기분이 안 좋다”, “그냥 힘들다”는 말로 이런 표현으로 한꺼번에 묶어서 처리해 버립니다. 사실 바쁜 현대인들이 자신의 감정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그 감정의 정확한 이름을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확히 모르는 나의 감정은 그것을 다루기도, 해소하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름 모를 나의 감정이 마치 정체를 모르는 소음처럼 마음 한편에서 계속 울리면서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럴 때,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그 감정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관찰하면서 각각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감정의 내용을 자세히 글로 기록하는 행위가 감정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매슈 리버먼 교수팀은 부정적인 표정을 본 사람이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 감정적 반응과 관련된 편도체의 활동은 감소하고 전전두엽 영역의 활동은 증가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단순한 행위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압도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과정에 관여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를 ‘감정 네이밍’ 또는 ‘감정 라벨링’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기분이 나쁘다”에서 멈추지 않고 “무시당한 것 같아 서운하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 불안하다”, “거절하고 싶지만 미안해서 망설여진다”라고 감정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이를 보다 세밀한 글로 표현하는 것은 적지 않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가령,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경우에는 불안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게 만듭니다. 반면 “나는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다”라고 표현하면, 불안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내가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이자 대상이 되면서 나와 불안을 분리하고, 거리를 두면서 불안의 실체와 특징 그리고 현상을 살펴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감정을 관찰하고, 그 특징을 반영해서 이름을 지었다면, 그 감정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이를 글로 정리하면 매우 효과적이면서도 감정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합니다. 글쓰기는 마음속에 흩어져 있던 경험을 문장이라는 순서 안에 놓는 작업입니다. 머릿속에서는 사건과 감정, 걱정과 기억이 뒤섞여 떠오르지만, 글로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일어났고, 나는 어떻게 느꼈으며,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를 차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글쓰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감정을 쏟아내고, 관찰하고, 연결하고, 정리하게 됩니다. 이렇게 감정에 대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감정 표현 글쓰기(Expressive Writing)’라고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감정에 대한 글쓰기는 실제로 적지 않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1999년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감정 표현 일기)를 작성하는 것이 만성 신체질환인 천식과 류머티스 관절염의 객관적 증상 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즉, 감정을 다루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신체의 면역 체계나 스트레스 반응을 긍정적으로 조절이 가능함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는 종종 “일기를 썼더니 염증과 통증이 감소했다”는 내용으로 간단하게 소개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반드시 크고 즉각적인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글을 쓴 직후보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천천히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글쓰기 간격을 1~3일 정도로 짧게 구성한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일기 쓰기가 정신건강 증상 완화에 작거나 중간 정도의 효과를 보인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따라서 글쓰기가 곧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상담이나 치료를 돕는 보조적인 자기관리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렇다면, 글을 작성할 때,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할까요? 이런 유의 글쓰기는 훌륭한 문장을 만들 필요도, 하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먼저 지금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생각해 봅니다. ‘힘들다’라는 크고 두루뭉슬한 표현 대신 서운함, 억울함, 두려움, 죄책감, 허탈함, 외로움처럼 가능한 한 구체적인 단어를 선택합니다. 하나의 감정만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서운함 60 불안함 30, 분노 10”처럼 여러 감정을 떠올리고 함께 적어도 좋습니다. 다음으로 그 감정은 어떤 색깔과 모양, 온도,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표현합니다. “짙은 회색”, “목 주변을 조이는 느낌”, “뜨겁고 뾰족”과 같이 구체적인 특징들을 표현해봅니다. 감정은 때로는 생각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 또는 증상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 감정을 불러온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과 나의 ‘해석’을 구분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끊었다”는 것은 벌어진 사건이고, “나를 무시했다”는 것은 그 사건을 내가 해석한 것입니다. 둘을 나누어서 살펴보면 감정의 출발점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내가 느낀 그 감정 뒤에는 어떤 욕구나 가치가 숨어있었는지를 돌아봅니다. 대체로 서운함의 이면에는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불안함 뒤에는 안전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욕구가, 죄책감 뒤에는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그 감정 이면에 내가 정말로 원하는 어떤 것들이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상황과 관련해서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할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오늘은 추가 연락을 확인하지 않는다”, “동료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구한다”처럼 작고 구체적인 행동이면 충분합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가면서 감정에 이름을 붙이거나 기록해 나가다 보면, 감정이라는 것이 ‘막연한 불편함’에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바뀝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단순히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평가해서 이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분노는 경계가 침해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고, 불안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으며, 죄책감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책임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감정을 오랫동안 돌보다 보면 정작 자신의 감정은 뒤로 미루기 쉽습니다.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되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처리되지 않은 감정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남아서 피로와 긴장, 관계에서의 거리감, 판단의 부담이라는 형태로 남을 수 있습니다. 감정에도 일종의 ‘미처리 비용’이 발생하는 셈입니다.
이럴 때,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짧게 글로 기록하는 일은 그 미처리 된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감정을 없애는 기술이라기 보다는 나의 감정과 내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기술일 수 있습니다. 이름을 모를 때 감정은 나를 끌고 다니지만, 이름을 알고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 감정과 대화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어느 정도 해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글로 쓰는 것, 그것이 마음을 단번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힘든 내 마음을 이해하고,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종이에 펜을 들고, 힘든 내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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