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
-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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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뒤의 진정성: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환대'의 전문성
데이터가 놓치는 당사자의 상황과 맥락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정부 복지 정책도 갈수록 데이터화되고 있습니다. 단수, 단전, 건보료 체납 등 47가지 위기 정보를 분석합니다. AI 시스템은 정보를 분석해 고립의 징후를 빠르게 발견하고 찾아냅니다.
그러나 데이터는 고립의 징후를 보여주지만 해석되지 못한 데이터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매뉴얼화된 고립의 징후가 차가운 방 안에 홀로 누운 이의 내면까지 읽어내지는 못합니다. 위기 지표로 구조화된 알고리즘은 주민 당사자의 상황과 맥락까지 포착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3개월간 전기 사용량이 급감한 70대 어르신 가구가 포착되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정작 그 이유가 극심한 우울증으로 전등조차 켜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전기요금을 아끼려는 절약 때문인지 인공지능은 구분하지 못합니다. 빠른 포착으로 주민 당사자를 한 번 더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하지만 데이터 이면의 당사자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기계적 발굴은 대상을 분류하는 행정적 계획입니다. 데이터가 정교해질수록 발굴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데이터 자체는 주민 당사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 맥락 안에서 굳게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되지는 못합니다.
조건 없는 '환대(Hospitality)'의 전문성
기계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사회복지 실천의 핵심은 환대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먼은 저서 ‘낯선자들의 도시’에서 환대를 개인 차원의 시혜적 친절을 넘어, 낯선 타자에게 심리적·물리적 자리를 내어주고 그 자리에 수반되는 사회적 권리를 조건 없이 승인하는 윤리적·정치적 연대로 해석했습니다[2].
행정 시스템은 자격 요건을 먼저 심사합니다. 자격이 입증되어야 비로소 지원 대상이 됩니다.
반면 현장의 사회복지사는 존엄성에 입각해 존재를 먼저 마주합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환대에 대하여’에서 강조한 조건 없는 환대의 실천입니다 [3].
사회복지사는 주민의 집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신발장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신발과 어두운 표정을 먼저 읽어냅니다. 자격을 묻기 전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그의 고단함을 기꺼이 들어줍니다.
환대는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당사자가 안전함을 느끼고 자기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여백을 만드는 고도의 관계 기술입니다. 이것이 사회복지사만의 독보적인 전문성입니다.
'세련된 고립'과 자기돌봄의 상실: 멕시코 할머니와 '자안소리'의 교훈
위기가구 발굴 이후의 개입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행정은 발굴 즉시 급여를 지급하거나 서비스를 기계적으로 투입하는 직선적 해결책을 선호합니다.
매일 영양 도시락이 배달됩니다. 스마트 기기가 혈압을 체크합니다. 요양보호사가 정해진 시간에 다녀갑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돌봄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정작 이 어르신이 동네에 아는 이웃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집 안에서의 세련된 고립'입니다.
아나 세실리아 레예스 우리베 교수의 연구에 등장하는 멕시코 할머니들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4]. 평생 훌륭한 살림꾼이었던 할머니들도 가족이 해체되고 혼자가 되자 가스레인지를 켜지 않고 대충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습니다.
밥상이 부실해진 원인은 요리 기술의 부재가 아닙니다.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기쁘게 나누어 먹을 '관계의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단절되면 스스로를 돌보는 '자기돌봄'의 동력마저 붕괴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통찰처럼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내 집안을 청소하고 자신을 정성껏 가꾸는 자기돌봄의 동력이 회복됩니다 [5].

스스로 통제하는 자기돌봄만이 성인의 덕목은 아닙니다. 자기조절을 넘어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안정을 찾는 공동조절이 더욱 필요해진 시대입니다. 서울청년센터 금천(청춘삘딩)의 '자안소리' 프로젝트는 이 관계적 회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6]. '자발적 안심 소리'이자 '따뜻한 잔소리'를 뜻하는 자안소리는 혼밥 청년들이 모여 한 끼를 만드는 공유주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레시피를 공유하고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던 청년들은 서로 아플 때 죽을 끓여다 주는 돌봄 관계망으로 발전했습니다. 사소한 눈맞춤과 따뜻한 잔소리가 당사자의 마음을 열고 자기돌봄의 동력을 깨우는 진짜 열쇠가 됩니다.
해방과 추앙, 그리고 관계 코디네이션
데이터 뒤의 진정성은 현장 실천을 통해 증명됩니다. 사회복지사는 결핍을 증명하게 만드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당사자의 잠재된 열망을 자극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르신, 쌀이나 생필품은 안 떨어지셨어요?"라는 결핍의 질문보다는 "행복해지려면 내일 무엇을 해보고 싶으세요?"라는 생성의 질문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주민을 낙인감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존재 자체를 조건 없이 추앙해야 합니다 [7]. 최근 복지관에서 많이 하고 있는 원데이 클래스나 작은 소모임은 훌륭한 해방과 추앙과 환대의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가난을 증명하는 수혜자표를 떼어내고 세련된 '클래스 참여자'로 대우하는 일, 미싱 기술을 가진 중장년 여성이 이웃을 위한 에코백을 만들며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 혼밥 청년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다 '자안소리'처럼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돌봄 공동체로 진화시키는 일, 이러한 일련의 서사적 추론과 관계 코디네이션은 알고리즘이 연산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입니다.
맺음말: 인공지능의 시대에 지켜야 할 사회복지 실천
정밀한 데이터 시스템은 사각지대를 찾는 훌륭한 돋보기입니다. 하지만 돋보기가 찾은 차가운 골목길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행정의 속력에 맞춰 서류만 채우는 모범생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주민의 삶을 경청하고 관계를 직조하는 주체적 기획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계가 데이터로 계획할 때 우리는 환대로 관계를 기획합니다. 이것이 기술 격변기 속에서 사회복지사가 사수해야 할 최후의 영토이자 명분입니다.
[1] 보건복지부(2026),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및 위기정보 분석 가이드라인'.
[2] 지그문트 바우만 저, 한상연 역, 『낯선 자들의 도시』(서울: 책세상, 2016).
[3] 자크 데리다(2004), 「환대에 대하여」, 동문선.
[4] Ana Cecilia Reyes Uribe (2018), 'Self-care and Relationship in Later Life'
[5] 에마뉘엘 레비나스(1997), 「전체성과 무한」, 대한교과서 참조.
[6] 서울청년센터 금천 청춘삘딩(2025), '자안소리 프로젝트 실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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