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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에 대한 나름의 개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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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에 대한 나름의 개똥철학


김승수(똑똑도서관 관장)



30여년 현장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운좋게 여러 기관의 자문을 갈 때 나름의 지키고자 하는 철학이 있다.  


첫째. 아는 건 아는 만큼 말하되 아는 척하지 않는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한다.

실형연구자(Action Researcher)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며 꼭 지키는 것 중의 하나가 해보지 않은 것을 한 것처럼 말하려고 하진 않는다. 가끔 해본 것처럼 폼잡고 싶을 때는 있으나 그런 폼냄은 전혀 남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 학습에 근거한 경험 또는 경험 후 학습을 통해 이해한 이론 등에 대해 묻는 자의 조건과 환경에 따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간다.  


둘째. 기관의 상황을 함부러 폄하하거나 일하는 사람을 질책하지 않는다. 

한 번의 기관 방문과 자문으로 모든 것을 끼어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신 기관에 들어설 때부터 보이고 느끼는 것만 전달하며 자문의 시간 동안 대화를 하며 느껴지는 실무자의 태도에 따라 대화의 주제와 질은 달라진다. 묻지 않는 사람과의 이야기는 흥미를 갖지 못한다. 대화를 통해 잃어버렸던 동기 또는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실무자를 만나면 반가울 뿐이다.  


셋째. 자문을 요청한 실무자의 말에 끼어들지 않는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다른 질문을 해가며 답을 찾는 실무자가 답을 찾게 돕고자 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뢰자는 반가울 뿐이다. 같이 변화에 대한 상상을 만들어가며 시간 가는지 모를 때가 있다. 형식적 질문과 답이 아닌 본인의 상황에 접목해 가며 이해하고, 스스로 말을 많이하며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돕고자 한다. 


넷째. 자문이 익숙해졌다고 느껴질 때 가장 조심하고 앞서 말하지 않는다. 현장은 늘 다양하고, 똑같은 상황은 1도 없다. 아는 척 이래라. 저래라는 꾸짖는 태도, 다 알고 있다는 듯 지적하는 태도는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기에 더더욱 조심하고자 한다. 현장은 늘 변화하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자문자로서의 변화는 더디게 된다. 그럴 때 더욱더 다양한 경험과 학습이 필요할 때다.  


다섯째. 다른 영역의 전문가, 실천가들을 꾸준히 만난다. 비정규직의 형태로 야생에서 일하는 실천가들을 만나면 나름의 신남이 있다. 뻔한 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길을 가지만 그들의 길은 선명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는 뚜렷해 보여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그들의 경험을 사회복지사들에게 전하려 많은 애를 쓴다. 사회복지의 영역 또한 나름의 야생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에. 


여섯째, 사회복지영역에서 몇 십년 공부하고 일했다고 해서 지금의 실천가 보다 우월할 수는 없다. 나이가 드는 것, 시간이 흘러 그 영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존경받을 일은 아니다. 어떤 노력없이 숨만 쉬어도 나이는 드는 것이기에. 과거의 경험과 학습은 늘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 배웠지만 안 배운 것처럼. 그럴 때 또 다른 호기심이 생기고, 그런 호기심을 자문에서 많이 풀어간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또 다른 할 꺼리를 만나고 오는 이유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현장의 모든 실천은 수 천 수 만 가지로 해석될 수 있고, 수 천 수 만 가지의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해 기계적으로 매뉴얼로 모든 것들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현장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며칠 밤을 새울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누군가를 만나 자문을 하고자 할 때 옳든 그르든 나름의 개똥 철학을 다시금 새기고 그들을 만난다. 그래서인지 자문을 하러 갈 때면 설레고, 실무자와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이 얻어오는 기분이 들어 뿌듯할 때가 많다. 변화를 위해 애쓰는 많은 실천가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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