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WISH지기
- 2026-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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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접근성을 위해 이미지의 내용을 텍스트로 함께 제공합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들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종종 지인들의 핀잔 섞인 웃음과 함께 이 말을 듣곤 합니다.
오지랖은 원래 몸을 감싸고 여미는 역할을 하는 옷의 앞자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앞자락이 필요 이상으로 넓어지면 자기 몸만 감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자락까지 덮게 됩니다.
이런 모습에서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까지 지나치게 끼어드는 사람을 두고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오지랖이 나쁜 것일까요. 물론 상대의 경계를 무시하고 밀고 들어가는 관심은 부담이 됩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내 방식대로 돕겠다고 나서는 일은 때로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내 일이 아니어도 한 번 더 돌아보는 마음까지 모두 참견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오지랖을 조금씩 내어 주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각자 자기 집으로 가면 될 것을 굳이 친구네 집 쪽으로 더 걸어가며 바래다주던 일,
배고프다며 허겁지겁 식사하는 동료에게 말없이 물 한 잔을 가져다주던 일,
빠듯한 형편 속에서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금을 떼어 내던 일.
우리는 그런 마음을 배려라고도 부르고, 헌신이라고도 부르고, 사랑이라고도 불러 왔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을 AI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조금 더 합리적인 답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집에 가고, 다음에 컨디션이 좋을 때 친구를 바래다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니 기부는 나중으로 미루는 편이 낫다고 조언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손익으로만 본다면, 오지랖은 꽤 위험한 선택일지 모릅니다.
내가 내어 준 시간과 마음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계산만 놓고 보면 거의 손해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늘 계산대로만 살지는 않습니다. 손해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일이 있습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야 하고, 조금 더 피곤해지고, 조금 더 마음을 써야 하는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추는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복지현장이야말로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업무 매뉴얼에 모든 것이 다 적혀 있지는 않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놓치고 있는 도움은 없는지, 다른 기관과 연결할 방법은 없는지,
지금 이 말 뒤에 더 급한 사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복지제도는 기준과 절차를 통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 제도가 사람에게 실제로 닿는 순간에는 언제나 사람의 얼굴이 있습니다.
서류를 확인하는 손길, 다시 설명해 주는 목소리, 다른 부서로 연결해 주는 수고, “혹시 더 필요한 것은 없으세요?” 하고 한 번 더 묻는 마음이 있습니다.
복지제도는 결국 이런 오지랖의 얼굴을 통해 사람에게 가 닿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안에는 이런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사람을 돌보는 일에는 때때로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
누군가의 삶이 내 앞에 잠시 머물렀을 때, 그 삶을 함부로 외면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 마음이 있기에 복지는 제도에 머물지 않고 사람에게 향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살리는 많은 순간은, 바로 그 작고 다정한 오지랖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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