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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이 아니라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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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류 작성법 좀 알려줘.” 

이 말을 부모님이 하셨다면 아마 우리는 기꺼이 도우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민원인이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먼저 부담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가족이 말하면 부탁으로 들리지만, 직장에서 들으면 그 말은 민원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말에 ‘민원’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이 갑갑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리 안에 저장된 ‘민원’이라는 기억 창고에는 고통을 호소하던 사람, 감정이 격해진 사람, 반복해서 항의하던 사람, 

쉽게 해결되지 않는 요구를 하던 사람에 대한 경험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친절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민원인’으로 인식되는 순간 몸은 먼저 긴장합니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아는 것입니다. “또 무언가를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을 ‘민원 처리’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일을 빨리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쉽습니다. 

물론 그래야 할 때도 많습니다. 현장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하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청을 접수하고, 분류하고, 확인하고, 처리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요청은 처리할 수 있지만, 사람까지 처리의 대상으로만 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한 사람의 사연을 너무 빨리 접어 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복지현장의 언어는 중요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민원인’이라고 부르면 처리해야 할 대상이 먼저 보입니다. 

반면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지나온 시간이 조금 보입니다. 

두 표현 중 하나만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장에는 민원이라는 업무의 언어도 필요하고, 사연이라는 인간의 언어도 필요합니다. 

민원이라는 말은 일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사연이라는 감각은 사람을 놓치지 않게 해 줍니다. 

문제는 민원이라는 말만 남고, 사연이라는 감각이 사라질 때입니다. 그때 복지는 조금씩 차가워집니다. 


AI는 앞으로 민원을 더 빠르게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복되는 문의를 정리하고, 적합한 제도를 찾아 주고, 필요한 서류와 절차를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도움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나 AI가 민원을 더 빠르게 분류할수록, 사람은 더 조심스럽게 사연을 보아야 합니다. 

분류는 빠를 수 있지만, 삶은 늘 분류보다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복지사의 일은 모든 사연을 다 해결하는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사실 그럴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오래된 삶을 한 번의 상담과 하나의 제도로 모두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연을 너무 빨리 민원으로만 접어 버리지 않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민원이 아니라 사연입니다. 그 사연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도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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