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모이는 힘 : 사회복지현장 효과적 주민조직화 지렛대 By 강정모
-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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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정원에서 얻은 사회복지의 새로운 전제
최근 에릭 리우(Eric Liu)와 닉 하노어(Nick Hanauer)가 공동 집필한 저작 《민주주의의 정원(The Gardens of Democracy)》을 다시 읽으며 여러 통찰을 재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20세기 동안 인류의 사고를 지배해 온 ‘기계적 세계관(Machine Mindset)’이 현대 사회의 양극화, 정치적 갈등, 시민의 무기력증을 초래했다고 진단합니다. 사회와 경제를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바라보며 효율성과 통제, 하향식(Top-Down) 설계만을 중시하던 기계 패러다임은 시스템의 과부하와 불평등을 낳았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들이 제시하는 비전이 바로 사회를 복잡하고 상호작용하는 유기적 생태계(Complex Adaptive System)로 바라보는 ‘정원적 세계관(Garden Mindset)’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는 윗입술과 아래입술 같은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술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온전한 발음을 낼 수 없듯, 민주주의와 사회복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민의 주체적 시민성과 민주적 의사소통 구조가 전제되지 않는 사회복지는 수동적인 시혜적 전달체계에 머무르고 맙니다. 이 책은 시민권을 단순히 권리를 행사하거나 가끔 투표하는 표 계산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시민성은 ‘공동체의 정원을 지속적으로 가꾸는 정원사로서의 적극적인 실천과 습속(Habit of Heart)’이며, 타인과 연결되고 책임감을 느끼며 공동선(Common Good)을 일구는 매일의 행동입니다. 낙수효과라는 기계적 신화에서 벗어나 토양이 기름져야 나무와 꽃이 잘 자라듯, 포용적 사회와 사회적 신뢰자본이 구축되어야 경제와 복지도 번영한다는 경제적 정원주의를 의미합니다. 결국 사회복지의 전제는 이 긴밀한 연결성을 인정하는 민주적 가치 태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정부와 공공 부문 역시 전지전능한 설계자가 아니라 잡초를 솎아내고 해충을 막아주며 토양의 영양분을 유지하는 ‘거시적 정원사’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 책이 제시한 건축가적 접근과 정원사적 접근의 비유는 오늘날 우리 지역복지 현장에 선진 사회복지를 기획하는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계도를 든 건축가와 흙을 어루만지는 정원사
공간을 다루는 전문가 중 건축가와 정원사는 다른 철학을 지닙니다. 건축가는 통제된 설계도와 정확한 계산을 바탕으로 물리적 구조물을 구축합니다. 오차 없는 구현을 지향합니다. 완공되는 순간이 프로젝트의 정점이 됩니다. 준공 이후의 변화는 노후화이며, 설계 결함이나 오차는 바로잡아야 할 대상입니다. 하향식 접근을 통해 외부 환경에 자신의 청사진을 반영합니다. 반면 정원사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생태계를 다룹니다. 통제 대신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며 불확실성을 수용합니다. 정원사에게 완공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시간이 흐를수록 식물이 자라고 계절이 순환합니다. 공간은 더욱 깊게 진화합니다. 정원사는 토양의 상태와 햇빛의 방향, 바람의 흐름을 먼저 살피는 상향식(Bottom-Up) 조율을 선택합니다. 시듦이나 병해충 같은 변수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가지치기와 보식으로 유연하게 대처합니다.
복지 현장에 투영된 건축가적 한계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사회복지 현장은 건축가적 패러다임이 지배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내려보낸 사업 지침은 거대한 설계도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그 설계도에 맞춰 정해진 기간 내에 정확한 수량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공자와 다름없었습니다. 사업 계획서상의 목표 수치와 예산 집행률이 평가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계획에서 벗어난 주민의 자발적 요구나 예측하지 못한 현장의 변수는 제거해야 할 오류나 실패로 취급되었습니다. 완공된 건물처럼 한 번 세워진 복지 사업 구조는 유연하게 개편되기 어려웠습니다. 사업 결과는 단기적인 실적 집계에 갇겼습니다. 이러한 건축가적 방식은 과거 빈곤을 퇴치하고 기본적 사회안전망을 속도감 있게 구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주민 자치와 복지 공동체를 다루는 오늘날의 현장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두 리더십의 차이와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실천적 대조를 직관적으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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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철학 |
통제와 예측, 오차 없는 청사진 구현 |
자율과 상호작용, 유기적 생태계 조성 |
지침 중심의 사업인가, 주민 중심의 생태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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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의 |
완공(준공) 시점이 프로젝트의 정점 | 완공은 시작일 뿐, 지속적인 진화 지향 | 단기 실적 중심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로 전환 |
| 작업 방향성 | 하향식(Top-Down) 통제 및 설계 | 상향식(Bottom-Up) 소통 및 맥락 조율 | 실무자·주민에게 자율성과 결정권 부여 |
| 주민을 보는 관점 |
수동적인 수혜자, 계획된 동원의 대상 | 자발성을 가진 주체, 협력하는 시민 정원사 | 주민의 강점과 잠재력을 발견하는 퍼실리테이션 |
| 갈등과 변수 | 제거해야 할 치명적인 설계 오류 | 공동체가 거름을 얻는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 | 시행착오를 집단지성의 학습 비용으로 수용 |
개발도상국형 자원 배분자에서 선진국형 생태계 가꾸기로
과거 자원이 부족했던 개발도상국형 사회복지 체계에서 사회복지사의 주된 역할은 자원의 평등한 배분이었습니다. 물품, 기부금, 자원봉사자 등 현장의 모든 요소를 자원(resources)으로 취급했습니다. 복지관은 시혜적 자원을 모아 필요한 곳에 공정하게 나누어주는 전달체계에 머물렀습니다. 이를 위해 조직은 경직된 상명하복 구조와 지시·이행 중심의 문화를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 사회복지 현장의 요구는 생존의 지원에서 삶의 질과 행복의 증진으로 이동했습니다. 현대의 복지 문제는 투입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고립과 외로움, 공동체 해체와 같은 복잡한 사회적 위험은 정형화된 공장형 사업으로 풀어낼 수 없습니다. 이제 사회복지사는 전달체계의 기술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자생력을 갖추도록 돕는 정원사적 존재로 전환해야 합니다. 복지 현장의 성과물 역시 단단한 건축물적 시각에서 움직이는 정원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 성과물의 본질 | 고정된 제도, 시설, 단기 사업 실적 | 자생적 관계망, 공동체 회복력, 주민 주체성 | 결과 중심에서 유기적 관계 형성 중심으로 전환 |
| 평가 및 검증방식 | 예산 집행률, 이용자 수, 건수 | 사회적 신뢰, 삶의 질, 복지 자생력 | 투입·산출 지표를 넘어 주민의 삶과 만족에 집중 |
| 시간의 경과와 가치 |
완공 후 노후화 진행 (유지·보수 관리 필요) |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생태계 | 지속 가능하고 자발적인 복지 공동체로 자람 |
| 위기 및 변수 대응 | 계획 탈선 및 오류 (제거·수정 대상) |
공동체를 성숙시키는 자양분 및 거름 | 실패와 시행착오를 집단지성의 학습 기회로 수용 |
| 주민의 상태 | 혜택을 수혜받는 수동적 이용자 (관광객) | 정원을 함께 가꾸는 자율적 시민 | 주민을 시혜 대상이 아닌 복지 생태계의 주체로 배양 |
삶의 방식을 바꾸는 혁신: 국내외 선진 사례의 증명
이와 같은 정원사적, 여행자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복지 현장에서 이상론이 아님을 증명하는 실제 국내외 사례가 존재합니다. 국내의 대표적인 선진 사례는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의 '철암어린이도서관'을 중심으로 일어난 마을 복지 실천입니다. 탄광 산업의 몰락 이후 철암 지역은 급격한 인구 감소와 경제적 쇠퇴를 겪었습니다. 초기의 외부 지원 사업들은 전형적인 건축가형, 개도국적 자원 전달체계였습니다. 외부에서 공급하는 물품을 기준에 맞춰 평등하게 배분하고 관리하는 경직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주민들은 복지의 수동적인 수혜자, 즉 관광객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실천가들은 이 문법을 과감히 파괴했습니다. 그들은 복지관이 중심이 되어 통제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신,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공간의 주인이 되어 삶을 기획하도록 판을 깔았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역사적 자산을 조사했습니다. 스스로 필요한 커뮤니티 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와 성취의 경험을 통과하게 했습니다. 정답이 없는 환경 속에서 주민 스스로가 여행자가 되어 생각의 근육을 키우도록 지지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안내자의 권위를 내려놓고 묵묵히 토양을 다지는 정원사로 기능하자, 철암동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자생력을 갖춘 복지 생태계로 진화했습니다. (출처: 철암어린이도서관 마을복지 실천 기록 및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우수사례집)
해외의 사례로는 영국 위건(Wigan) 시가 단행한 혁신적인 복지 패러다임 전환인 '위건 딜(The Wigan Deal)'을 들 수 있습니다. 2010년대 초반, 위건 시는 재정 긴축으로 인해 기존의 상명하복식 복지 전달체계를 유지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관이 주도하여 자원을 배분하던 기존의 건축가적 방식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위건 시 공공 부문은 역할을 재정의했습니다. 사회복지사들을 제도적 급여를 심사하고 보급하는 행정 기술자에서, 주민 개개인의 강점과 가능성을 찾아내고 연결하는 생태계 정원사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들은 주민을 만날 때 부족한 급여나 물품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계적 접근을 내려놓고, 대신 "당신이 평소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무엇이며, 이웃과 어떤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적 역량과 내면의 힘을 신뢰하며 수평적으로 협력하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회적 고립 가구들이 스스로 연결되어 상호 돌봄을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복지 예산은 획기적으로 절감되었습니다. 통제와 지시 중심의 관료적 문화를 상호 공존과 유기적 적응의 문화로 바꾼 이 사례는 선진국형 복지가 나아가야 할 정원사적 리더십의 표준을 보여줍니다. (출처: 영국 위건 시의회 'The Wigan Deal' 공식 성과 보고서 및 힐러리 코텀 저 '라디칼 헬프')
또 다른 국외 대표 사례는 네덜란드의 방문 간호·돌봄 전문 비영리 기업인 '뷔르트조르흐(Buurtzorg)'입니다. 뷔르트조르흐 창립 이전 네덜란드의 홈케어 서비스는 건축가적 표준화 체계였습니다. 중앙 관리자가 간호사의 방문 시간, 주사 놓는 시간, 드레싱 교체 시간 등을 분 단위로 통제하고 실적을 관리했습니다. 뷔르트조르흐는 이 관리 통제 시스템을 바꾸었습니다. 12명 안팎의 자율적인 소규모 팀이 지역 주민, 이웃, 지역 의사들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자율적으로 서비스를 디자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간호사들은 처치 기술자가 아닌, 환자의 삶 전체와 지역사회 관계망을 가꾸는 정원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환자 만족도가 향상했고, 의료 비용은 오히려 절감되는 성과를 입증했습니다. 이는 중앙집권적 통제 체계를 전환하여 현장 주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할 때 생태계가 스스로 회복력을 얻게 됨을 보여줍니다. (출처: Buurtzorg Nederland 공식 모델 보고서 및 Frederic Laloux 저, '조직의 재발명')
민주주의라는 정원과 주민조직의 본질
민주주의와 마을복지는 정원과 본질을 공유합니다. 완성된 상태로 고정되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변화하는 진화형 시스템입니다. 주민조직과 지역복지는 법과 제도로만 구동되지 않으며, 주민 간의 생명력 있는 관계망을 먹고 자랍니다. 주민참여 현장에서 발생하는 의견 충돌과 시행착오는 바로잡아야 할 오류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원의 낙엽이 썩어 기름진 거름이 되듯, 공동체의 민주적 내공을 키우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주민조직 담당 사회복지사는 정원사의 10가지 역할을 현장에 적용해야 합니다.
- 토양 가꾸기: 주민이 안전하게 발언하는 공론장을 조성합니다.
- 씨앗 뿌리기: 지역사회의 숨은 필요와 의제를 발굴합니다.
- 물주기와 영양 공급: 신참 주민 활동가의 역량을 강화하고 격려합니다.
- 잡초 뽑기: 독단, 배제, 편견을 소통장에서 제거합니다.
- 가지치기: 과도한 사익과 대립을 대화로 조율합니다.
- 울타리 치기: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보호합니다.
- 해충 방지와 치유: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회복적 대화로 풀어냅니다.
- 계절 변화 읽기: 시대적 흐름과 주민 요구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 시민과의 동행: 현장에서 주민과 손잡고 일상을 실천합니다.
-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 지속 가능한 복지 생태계의 유산을 남깁니다.
여행적, 정원사적 실천으로의 대전환
선진사회에서 복지 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서비스 제공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행복을 탐색하는 여행적, 정원사적 가치태도를 형성하도록 돕는 작업입니다. 정원사적 사회복지는 민주적 태도 및 기술과 직결됩니다. 주민을 수혜자나 사업 동원 대상이 아닌, 자기 삶과 지역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시민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 현장, 사업 운영 방식, 그리고 조직 문화는 세 가지 축에서 과감한 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첫째, 사업 운영 패러다임을 하향식 결과 중심에서 상향식 과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정해진 실적 수치에 맞춰 주민을 끌고 가는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토양의 상태를 먼저 살피듯 주민의 욕구와 지역의 맥락을 세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주민 스스로 대안을 만들도록 기다려주는 호흡이 필요합니다.
둘째, 조직 문화를 통제와 지시에서 신뢰와 자율로 전환해야 합니다. 수직적 경직성은 현장의 유연한 대처를 방해합니다. 실무자가 현장 변수와 주민의 자발성에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조직 내부의 권한을 이양해야 합니다.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실패를 결함이 아닌 학습 비용으로 흡수하는 안전한 조직 환경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셋째, 사회복지사의 역량을 행정 기술에서 민주적 퍼실리테이션 기술로 전환해야 합니다. 공론장 설계 능력, 회복적 갈등 조정 기술, 주민의 강점을 찾아내는 질문 기술, 소수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세심한 배려가 핵심 역량이 되어야 합니다.
선진사회 사회복지와 민주적 조직 패러다임의 결합
선진사회에서 사회복지를 수행한다는 것은 복지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개별 사회복지 현장의 사업 운영 방식과 조직 운영 패러다임을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작업입니다. 과거 전달체계의 역할에 머물렀던 개발도상국 시절, 우리는 모든 요소를 배분 가능한 자원으로만 보았습니다. 그 결과 조직 문화는 경직된 위계질서와 지시, 이행 중심에 머물렀습니다.그러나 선진사회의 사회복지는 주민의 존재 자체를 자율적 주체로 인정하는 민주적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민주적 대화 기술과 경청의 자세, 그리고 수평적 협의 구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원사적 사회복지는 불가능합니다. 상명하복의 관료적 조직 문화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현장의 사회복지사와 조직 리더는 사업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고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민과 함께 토양을 일구는 민주적 정원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윗입술과 아래입술이 맞물려 소리를 내듯, 민주주의의 가치 체계와 사회복지 실천이 하나로 맞물릴 때 비로소 선진사회형 복지가 완성됩니다.
현장의 활동가와 사회복지사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혜의 수렴
현장을 지키는 시민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사, 그리고 주민조직·지역복지·마을복지 담당자 여러분. 우리가 일구는 지역사회와 주민조직은 콘크리트 건물이 아닙니다. 세심하게 가꿔야 할 거대한 정원입니다. 눈앞에 당장 화려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물을 주는 매일의 작은 노력이 토양을 바꿉니다. 우리가 민주적 태도와 소통 기술로 현장을 마주할 때, 주민들은 서비스 대상을 넘어 스스로 지역을 가꾸는 정원사로 성장할 것입니다. 통제에서 적응으로, 지시에서 공존으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시선을 옮깁시다. 현장에서 매일 축적되는 여러분의 집단지성과 민주적 역량이야말로 대한민국 사회복지의 체질을 바꾸는 단단한 자양분입니다. 여러분이 일군 복지 생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풍성해져, 다음 세대까지 지탱하는 거대한 숲이 될 것입니다. 그 길에 서 있는 여러분의 지혜와 역량을 신뢰하며, 매일의 위대한 여정을 깊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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