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6-08-05
- 311
- 0
- 0
우울증도 생태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1) 슬픔을 우울증으로?
우울증을 바라보는 사회사업적 관점 역시 앞서 살펴본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와 궤를 같이합니다.
우울 또한 온전히 개인의 생물학적 결함이라기보다, 우리 사회·문화적 환경이 빚어낸 결과일 수 있습니다.
에릭 메이젤은 『가짜 우울』에서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겪는 원치 않는 골치 아픈 감정적 고통은 분명히 실재하지만, 그것을 섣불리 정신장애라고 부르는 것은 ‘이윤이 많이 남는 이름 짓기 게임’일 뿐이라고 합니다. ‘제약업계, 심리치료, 사회복지, 목회’라는 거대 산업과 대중매체가 결합하면서, 이제 우리 사회는 삶의 불행이나 불쾌한 상황에 대해 슬퍼하는 것을 ‘정상적인 반응’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일상적인 슬픔을 느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우울증에 걸렸다’고 말하곤 합니다. 설령 그 슬픔의 실체가 빚과 같은 돈 문제이거나,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위태로운 인간관계 같은 ‘상황적인 고통’일지라도 이를 감정이라기보다 증상, 즉 질병으로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언어 사용이 위험한 건, 말이 빚어낸 사회적 길들임에 의해 ‘슬픔’이라는 감정을 마주하자마자 알약과 상담을 제공하는 의료전문가를 찾아가게 만든다는 겁니다. 정신건강 산업이 마련해 놓은 진단 기준에 자기 증상을 정확히 끼워 맞추며 ‘우울증 환자’라는 딱지를 받아들이게 합니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에서도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우울증’ 개념의 모호함과 범위 확대를 경고합니다. 흔히 대중매체에서 ‘인구의 70%가 우울증을 경험하지만 정작 치료받는 비율은 낮다’는 식의 데이터를 제시할 때, 이는 모두가 치료 대상이어야 한다는 교묘한 암시에 가깝다는 겁니다. 인간 대다수는 살아가면서 언젠가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한 경험을 마주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모두 전문의를 찾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혹은 둘레 사람 도움으로 치유하고 적응하며 극복해온 사실도 함께 생각합니다. 모든 우울한 상태를 반드시 약물로 몰아내야 할 질병으로만 여기게 만드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약에 의존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감정이 요동치면 이를 병으로 보고 약 처방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2) 성과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우울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우울증과 번아웃(소진증후군)에 시달리는 이유는, 한 개인의 마음이 약해서라기보다 그가 속한 우리 사회 시스템이 보이지 않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이를 ‘성과사회’라고 했습니다. 과거는 사회가 규칙을 어기면 벌을 준다며 밖에서 억누르고 통제하던 ‘규율사회’였다면, 지금은 개인에게 자기 능력을 증명해보라며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요구하는 ‘성과사회’입니다. 규율사회에서는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개인을 압박했다면, 성과사회에서는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 따위로 개인을 억누릅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포기하지 않으면 무조건 이룰 수 있다’와 같은 긍정의 말들이 어느 때는 들어맞지만, 때로는 무서운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과업 속에서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 구조 아래에서 결국 밤낮없이 달리다 한계에 부딪힌 개인은 ‘내가 부족해서, 내가 게을러서 실패했다’며 스스로를 탓하고 무섭게 자책하기 시작합니다.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쥐어짜며 스스로와 전쟁을 벌이는 꼴입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싸움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지쳐 쓰러진 부상병. 어쩌면 이 모습이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우울증 환자들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무한히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개인이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거나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을 찾고 이를 강점으로 드러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시로 불안과 우울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임에도, 사회는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의 나약함’이나 ‘정신적 문제’로 돌리며 전문가의 치료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3) 사회사업가라면 항우울제 대신 ‘관계와 시(詩)’를 처방하기
이처럼 우울의 사회적 맥락을 짚어볼 때, 사회사업가의 접근은 조금 다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마저 조금이라도 우울해 보이는 이웃을 발견했을 때 손쉽게 전문 의료기관으로 연계하고 ‘서비스 대상자’로 이름 붙이는 실천을 사회사업 전문성이라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우울증을 위한 의료적 처방을 무조건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우울 그 자체를 기술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리는 일은 사회사업가의 정체성에도, 현장의 역할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안과 상황에 따라 의료적 처방이 긴급하게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약을 복용하는 가운데 누군가와 어울려 산책하고,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환경이 받쳐주어야만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집니다. 사회사업가는 바로 그런 구실을 찾고 자리를 주선하는 방법으로, 이 어려움을 당사자가 스스로 둘레 사람과 함께 이겨내도록 거드는 존재입니다.
사회사업가만큼은 우울을 개인의 병리적 문제로만 보지 않고, 그가 놓인 상황과 관계를 함께 살핍니다. 『행복의 기원』에서 소개한 시카고 대학 카시오포(Cacioppo) 교수팀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암이나 사고가 아니라 외로움(Social Isolation)이었습니다. 이 책 저자인 서은국 교수는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들의 결정적인 필요조건은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라고 합니다.
『선생님, 항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주세요』 저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성유미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시인들이 읊조리는 아름다운 말무리에서 뜨거운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고 합니다. 시 속 화자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시를 읽다 보면 위로와 깨달음이 동시에 찾아오고, 때론 또 다른 나를 만난 것 같은 뜨거운 공감을, 때론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날카로운 조언을 얻기도 한다는 겁니다. 저자는 그렇게 시가 가진 위대한 치유의 힘을 맛보면서 힘든 시기를 통과해왔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인간을 치유하는 힘은 의료적 접근만이 아니기도 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일하는 사회사업가들이 궁리해야 하는 우울에 대한 대응은 명확합니다. 당사자가 마음의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곁에 세우는 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자기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게 공동체 안에서 역할을 살려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행복한 개인이 많은 사회’들은 공통적으로 타인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있고, 다양한 모습(재능)을 존중했습니다. 당사자가 잘하는 일과 잘해온 일을 귀하게 여겨, 지역사회 안에서 기여할 거리를 찾아 주선하는 일이 우리 몫입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당장 열을 내리거나 일상생활을 버텨내기 위해 전문가를 만나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면역력을 높이지 않으면 병은 끊임없이 재발하고, 처방받는 약은 점점 더 많고 강해질 뿐입니다. 우울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전문가의 상담과 약물이 필요하겠지만, 평소 타자와 맺는 건강한 관계와 공동체에 기여하는 경험들이 삶의 면역력을 만들어줍니다. 마음을 튼튼하게 하여 우울이 쉽게 깃들지 못하게 하거나, 설령 찾아오더라도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근본적인 바탕은 ‘관계’에 있습니다.
우울 그 자체를 다스리는 일은 사회사업가에게 부담일 뿐만 아니라 정체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비록 마음이 어지러울지라도 이를 온전히 나눌 사람이 곁에 있다면, 내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는 공동체 속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 이바지할 수 있다면, 우울은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완화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잘해온 일들을 생동하고, 좋은 관계의 역동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돕는 일, 이것이야말로 아픈 시대를 치유하는 사회사업가의 전문성입니다.

『가짜 우울』 (에릭 메이젤, 마음산책, 2012)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충웅, 이제이북스, 2005)
『선생님, 항우울제 대신 시를 처방해주세요』 (성유미, 서삼독, 2023)
『행복의 기원』 (서은국, 21세기북스, 2021)
『피로사회』(현병철, 문학과지성사, 2012)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