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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이의 죽음, 분노의 다음을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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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왕이의 죽음, 분노의 다음을 묻습니다

혐오와 처벌을 넘어 기억과 변화로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왕왕이(旺旺)’ 사건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 광둥성의 한 마을에서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던 어미 개 왕왕이는 지난 6월 말 세 마리의 어린 강아지, 그러니까 아직 어미의 돌봄이 필요했던 아기들과 함께 잔혹한 학대를 당해 죽었습니다. 그 과정이 촬영된 영상까지 온라인에 퍼지면서 충격은 중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저 역시 이 사건을 접한 뒤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관련 내용을 더 알아보기 위해 사진과 글을 찾아보는 일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왕왕이를 위한 우리의 분노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중국을 미워하는 것이 답일까요?

 

왕왕이 사건 이후 중국에 동물학대를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여전히 반려동물을 포함한 동물학대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법률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왕왕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분노가 중국이라는 국가와 중국인 전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중국 제품 불매운동을 주장하거나 중국을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경계가 필요합니다.

왕왕이에게 가해진 폭력에 분노하는 것과 중국인을 혐오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 가장 먼저 분노한 사람들도 중국 시민들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SNS를 통해 연결되었고 작은 모금을 모아 왕왕이의 죽음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움직임은 국경을 넘어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의 전광판과 버스 광고로 이어졌습니다. 일부 도시에서는 왕왕이와 세 아기를 기억하기 위한 추모 벤치 조성도 시민들의 참여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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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왕왕이를 추모하는 한 외국 유튜버의 추모음악과 글을 담은 영상 Stay With Me, Little Guardian — A Song for Wang Wang | Rhythm for Hope - YouTube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으로 이어집니다)



동물학대는 특정 국가나 민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동물에 대한 학대와 방치, 착취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왕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중국은 왜 저런가가 아니라 또 다른 왕왕이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입니다.

 

분노에는 그다음이 필요합니다

 

동물의 고통을 보고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고통받는 생명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감수성이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하느냐입니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부당한 일을 마주했을 때의 분노가 저 사람도 고통받아야 한다는 보복에 머물지 않고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미래의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전환적 분노라고 합니다.

왕왕이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처벌만으로 또 다른 왕왕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처벌이 이미 일어난 폭력에 책임을 묻는 일이라면, 예방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폭력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사회복지가 할 일이 보입니다.

동물학대를 몇몇 잔혹한 사람의 일탈로만 바라보지 않고 폭력이 발생한 환경 전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생명존중교육을 강화하고 반복적이고 심각한 동물학대 행동을 단순한 장난으로 넘기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동물학대가 발견된다면 다른 가족 구성원의 안전도 함께 살펴야 하며,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현장에 반려동물이 있다면 그 동물의 안전 역시 확인해야 합니다.

학대 신고 이후 동물을 신속하게 분리하고 보호할 수 있는 체계, 재학대의 위험을 판단하는 절차, 학대 행위자에 대한 교육과 상담도 필요합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기관뿐 아니라 학교와 사회복지기관, 정신건강 분야가 함께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물학대를 나쁜 사람을 처벌하는 문제로만 바라보면 처벌 이후 사회가 할 일은 사라집니다. 예방의 문제로 바라볼 때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왕왕이 학대 장면을 본 사람들의 마음은 누가 돌볼까요?

이번 사건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또 하나가 있습니다. 왕왕이와 아기 강아지들의 고통을 접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오늘날 동물학대는 현장에 있던 몇 사람만 목격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잔혹한 영상과 사진이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폭력을 간접적으로 목격합니다. 특히 동물을 사랑하거나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그 장면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꾸 생각나고, 잠을 이루기 어렵고, 슬픔과 분노가 오래 지속되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을 모두 임상적인 의미의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고통까지 가볍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생명의 극심한 고통을 목격하고 마음이 아픈 것은 지나친 예민함이라기보다 고통에 감응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피해 동물을 보호하는 일과 함께 그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정서적 안전도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학대를 알리겠다는 좋은 뜻으로 잔혹한 영상과 사진을 반복해서 공유하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동물학대를 알리는 데 반드시 학대 장면을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사전에 충분한 경고를 하고 잔혹한 장면의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동물학대를 알리는 것과 동물의 고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영상을 보지 않거나 관련 콘텐츠에서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은 왕왕이를 외면하는 일이 아닙니다. 계속 찾아보고 계속 아파해야만 왕왕이를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이 힘들다면 주변 사람과 슬픔을 나누고 일상으로 돌아와 쉬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래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도 지켜야 합니다.

 

동물보호 활동가와 구조자의 마음은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이들은 학대와 방치, 죽음을 반복해서 마주합니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슬픔과 무력감, 소진을 개인이 알아서 견뎌야 할 문제로 남겨두어서는 안 됩니다. 상담과 동료 간 지지, 충분한 휴식과 같은 돌봄 역시 지속 가능한 동물보호 활동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마음을 돌보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혼자 화면을 바라보며 감당하던 슬픔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죽은 생명을 함께 기억하며, 그 슬픔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왕왕이의 추모공간에 눈길이 갑니다.

 

사람들은 왕왕이의 모습을 전광판과 버스에 싣고,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중국 당국에 동물보호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왕왕이와 세 아기의 이름을 남길 추모 벤치를 만드는 일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벤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벤치에 앉아 왕왕이의 이름을 읽고 잠시 그 생명을 생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추모의 공간은 개인의 슬픔을 공동체의 기억으로 옮기는 장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추모공간은 개인적 애도를 넘어 공공의 기억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추모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고,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슬픔을 혼자 감당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기도 합니다.

이번 왕왕이 사건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거대한 조직이 움직이기 전에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였습니다. SNS에서 만난 사람들이 작은 돈을 모으고 광고판을 빌리고 추모공간을 만들며 한 생명의 죽음을 사회가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추모가 시민행동이 되고, 시민행동이 다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왕이가 살아 있었다면

왕왕이를 기억한다는 것은 중국을 더 미워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가해자가 더 큰 고통을 받기를 바라는 것으로 끝나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 왕왕이의 마지막 모습을 반복해서 바라보며 우리 자신까지 계속 상처 입는 일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고통받는 동물을 한 번 더 바라보고, 학대를 발견했을 때 지나치지 않는 것. 처벌과 함께 예방과 교육을 요구하고, 동물을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문화를 바꾸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을 함께 목격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보는 것. 그것이 왕왕이를 기억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왕왕이를 위한 우리의 분노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힘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지키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다른 왕왕이가 생기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왕왕이를 가장 오래 기억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P.S. 
왕왕이가 어떻게 죽었는지만 기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왕왕이는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신나게 쫓아다니고, 세 마리의 아기를 돌보며 살아가던 평범한 강아지였다는 것도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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