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속동물 By 김성호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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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밥그릇과 노키즈존
― 금지와 허용 사이, 함께 살아가는 기준을 묻다
요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다 문득 ‘노키즈존’ 논쟁이 떠올랐습니다.
전혀 다른 문제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하게 닮은 점이 있습니다.
길고양이 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를 싫어하거나 굶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무 곳에나 밥그릇을 놓고 남은 먹이를 치우지 않거나, 배설물과 주변 위생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서 주민의 불편을 외면하는 방식의 돌봄을 문제 삼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키즈존도 비슷합니다. 아이들이 무조건 싫어서라기보다 매장 안을 위험하게 뛰어다니거나 다른 손님에게 계속 방해가 되는데도 보호자가 적절히 제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된 불만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어디까지가 아이의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어디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일까요. 어디까지가 길고양이를 위한 돌봄이고 어디서부터 주변에 부담을 주는 무분별한 돌봄일까요.
그 선을 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도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기준을 만들고 서로 조정하기보다 훨씬 간단한 방법이 등장합니다.
‘노키즈존.’
‘길고양이 급식금지.’
하지만 우리가 정말 막고 싶은 것은 아이와 고양이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과 책임 없는 돌봄일까요.
최근 길고양이 급식을 제한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이에 반대하는 청원 역시 5만 명을 넘겨 나란히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한쪽에서는 굶주린 생명에게 밥 한 끼를 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길고양이가 몰려들면서 생기는 소음과 배설물, 냄새 등의 피해를 왜 주민들이 감수해야 하느냐고 합니다. 최근에는 길고양이가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사냥한다는 생태계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사실 각각의 주장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눈앞에서 굶고 있는 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길고양이로 인해 실제 생활상의 불편을 겪는 주민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야생동물과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 역시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논쟁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을 ‘캣맘’이라 부르며 비난하고, 반대하는 주민을 ‘동물혐오자’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밥그릇을 놓으면 누군가 치우고 다시 가져다 놓는 일이 반복됩니다. 때로는 고소와 고발, 폭력과 동물학대로까지 이어집니다.
저는 여기에서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줘도 되는가?”가 아니라 “우리 동네의 길고양이를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고 말입니다.
길고양이는 이미 우리와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밥을 주지 않는다고 당장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길고양이에게 아무 곳에서나 먹이를 주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되기 어렵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사유지나 공공장소 어디에나 마음대로 밥그릇과 겨울집을 설치할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설치한 급식시설을 마음대로 훼손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애매한 공간에서 갈등이 반복됩니다.
누군가는 자기 돈으로 사료를 사고 매일 고양이에게 밥을 줍니다. 중성화 수술을 돕고 아픈 고양이를 치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민원이 발생하면 그 해결 역시 돌보는 사람과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의 몫이 되기 쉽습니다. 결국 길고양이를 둘러싼 공공의 문제가 개인과 개인의 싸움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선의만으로 풀기에는 길고양이 문제가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다른 나라와 도시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어왔습니다. 이들이 찾고 있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밥을 주는 사람을 무조건 막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밥을 주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 것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조금 들여다보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를 무조건 허용하거나 금지하기보다 어디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돌볼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먹이를 주고, 남은 사료와 밥그릇을 치우며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하도록 합니다. 단순히 먹이만 주는 데 그치지 않고 TNR을 돌봄의 조건으로 두거나,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을 등록해 일정한 기준과 책임 아래 돌보도록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른바 ‘캣맘 등록제’입니다.
반대로 큰 공원이나 자연보호지역, 철새도래지처럼 야생동물과 생태계 보호가 중요한 곳에서는 길고양이 급식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도 합니다. 고양이를 보호하는 것만큼 그곳에서 살아가는 새와 다른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곳에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택가와 공원은 다르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또 다릅니다.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떤 책임을 요구할 것인지, 그에 맞는 돌봄의 기준을 정하는 것입니다.
공통점은 있습니다.
돌봄을 인정하되 책임도 함께 묻는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먹이를 주고, 남은 사료와 밥그릇을 치우고, 주변을 깨끗하게 관리합니다. 중성화와 개체수 관리에도 참여합니다. 주민에게 피해가 생기면 급식 장소를 옮기거나 생활 공간을 분리하는 방법도 찾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준이 필요합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일정한 책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 역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적절한 곳에 공공급식소를 마련하고, 급식과 위생관리 기준을 정하고, TNR과 연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민과 돌봄자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개인끼리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조정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모든 곳에 같은 기준을 적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택가와 공원은 상황이 다르고, 철새도래지나 섬처럼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은 또 다릅니다. 실제로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이 확인되는 지역이라면 급식을 제한하거나 다른 관리 방법을 적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막연한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그 지역의 상황에 맞는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림설명: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시한 2026년 개정한 길고양이 돌봄 가이드라인 수정본(첨부파일 참조)
생각해 보면 길고양이 밥그릇을 둘러싼 싸움은 고양이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서로 다릅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돌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자기 집 앞에는 고양이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밥을 주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생명을 돌본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의 불편을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저는 외국을 다니다가 종종 흥미로운 장면을 보곤 합니다.
식당이나 카페는 물론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처음에는 저도 궁금해서 주변을 둘러보곤 했습니다. ‘여기는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곳인가?’ 그런데 의외로 ‘반려동물 동반 가능’이나 ‘반려동물 출입 금지’라는 표시를 찾기 어려운 곳도 많았습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곳에 있는 반려동물의 모습이었습니다. 보호자의 발밑이나 의자 곁에 조용히 앉아 있어 한참 동안 그곳에 반려견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모든 것을 ‘허용’과 ‘금지’로 나누어야 할까?
물론 안전이나 위생 때문에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 장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허용과 금지의 문제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같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행동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함께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노키즈존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아이들이 없는 공간일까요? 오히려 아이와 어른이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며, 함께 있어도 누구나 편안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아이도 그 공간에서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보호자에게도 필요한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런 불편이나 피해를 일으키지 않았는데도 단지 아이라는 이유로, 혹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공간에서 배제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불편을 조정하는 문제를 넘어 배제와 차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에서도 이 지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임 없는 급식이나 관리되지 않는 돌봄을 비판하는 것과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나 고양이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불편에 대한 문제 제기가 특정 대상에 대한 적대와 비난으로 향하는 순간, 문제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최근의 길고양이 논쟁에서는 이미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활상의 불편에서 시작된 갈등이 어느새 길고양이와 그들을 돌보는 사람에 대한 적대와 혐오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책임 있는 돌봄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책임 있는 돌봄의 문제와 혐오의 문제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돌봄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 그 행동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개선하면 됩니다. 그것이 길고양이나 돌봄자 자체를 비난하고 배제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노키즈존과 길고양이 급식 논쟁은 우리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조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존재 자체를 배제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아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면 그 행동을 바로잡으면 됩니다. 길고양이 돌봄에 문제가 있다면 급식 장소와 시간, 위생관리, 중성화와 개체수 관리 등에 대한 기준을 세우면 됩니다. 문제가 되는 행동과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은 채 아이의 출입을 막거나 길고양이 급식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가장 간단한 방법일지는 몰라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를 정하기 전에, 어떻게 함께 지낼 것인가를 먼저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한 것은 수많은 ‘허용’과 ‘금지’의 표시가 아니라, 그런 표시가 없어도 서로를 배려하며 같은 공간을 편안하게 나누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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