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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7. 좋은 계획은 계획대로 하지 않는 계획입니다 - 불확실한 현장에서 다시 기획하는 사회복지사의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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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7. 좋은 계획은 계획대로 하지 않는 계획입니다.

- 불확실한 현장에서 다시 기획하는 사회복지사의 일 -

 

 

계획대로 하지 않는 것이 정말 실패일까요?

 

연초가 되면 가장 바쁜 곳은 사회복지사의 책상 위입니다.

사업계획서 초안을 작성하며 성과목표와 산출목표를 세웁니다. 일정표를 만들고 예산을 맞추고 결재를 올립니다. 조사하고, 기획하고, 결재받고, 홍보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몇 주간 이어집니다.

한 단계가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계획서가 계획대로만 된다면 꽤나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일수록 알게 됩니다.

현장은 계획서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준비한 프로그램에 주민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렵게 섭외한 강사의 강의가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사업계획서에는 정서적 지지체계 구축이라고 적혀 있지만, 정작 주민이 원하는 것은 당장 이번 달 관리비를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전년도 계획서의 날짜와 약간의 내용만 수정해서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 덕분에 계획서를 작성하는 요령도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좋아졌습니다. 몇 가지 정보를 넣으면 그럴듯한 목표와 추진전략, 성과지표까지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계획서를 더 잘 쓰게 된 것이 실제 기획을 더 잘하게 된 것과 같은 의미일까요?

계획서를 빠르고 정교하게 작성하는 것과 그 계획이 현장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획을 잘못 세운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사람의 삶을 계획서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문제는 계획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계획을 대하는 방식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계획을 출발점이 아니라 정답처럼 다루고 있지는 않을까요?

 

청년 20명을 대상으로 하는 1인 가구 요리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욕구조사를 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물을 만듭니다. 몇 주 동안 준비한 끝에 드디어 첫날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실에는 청년 10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담당 사회복지사의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떠오릅니다.

 

홍보가 부족했나?”

시간대가 잘못됐나?”

참여자 모집을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나?”

 

그런데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청년들에게 요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동네 청년 몇 명에게 먼저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요즘 밥은 어떻게 챙겨 먹어요?”

요리 모임을 하면 참여하고 싶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요리는 귀찮아요.”

차라리 전세 대출 정보가 필요해요.”

재테크를 알려주는 모임이면 갈 것 같아요.”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몇 주 동안 만든 계획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몇 주 동안 계획서를 붙잡고 고민하는 것과 주민 다섯 명을 먼저 만나보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전문적인 기획일까요?

 

여기서 애자일의 프로토타입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완성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작게 만들어보고, 실제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고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방식은 사회복지사에게 낯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사정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살핍니다. 개입해보고, 반응을 보고, 다시 개입의 방향을 조정합니다.

 

주민의 상황이 달라지면 우리의 개입도 달라집니다.

사람을 만나는 실천에서는 수정이 너무나 당연한데, 사업을 기획할 때는 왜 수정이 실패처럼 느껴질까요?

어쩌면 애자일을 사회복지에 새롭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사람을 만나면서 해오던 방식을 사업기획에도 적용해보자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면서 실행하고, 실행하면서 다시 기획하는 것.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사회복지사라면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주민을 위해 일하지.”

 

그런데 열심히 실천한 하루의 끝을 한번 돌아봅니다.

오늘 몇 명의 주민을 만났는가?

 

몇 통의 전화를 했는가?

몇 건의 결재를 올렸는가?

몇 개의 실적을 입력했는가?

몇 장의 기록을 남겼는가?

 

어쩌면 우리는 주민을 위해 일하면서도 하루의 대부분을 기관의 행정에 필요한 일을 처리하며 보냅니다.

 

물론 행정은 필요합니다. 기록도 필요하고 실적도 필요합니다. 예산을 집행하려면 증빙도 있어야 합니다. 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라면 행정적 책임을 피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행정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일과 주민에게 만들어진 가치를 어느 순간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도시락 100개를 배달했다는 것은 분명한 활동입니다. 필요한 일이고, 기록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숫자만으로 주민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까지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100개의 도시락을 배달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주민 한 사람의 어려움을 발견하고 다음 개입의 방향을 바꿨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종류의 성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일(Activity)과 주민에게 남은 가치(Value)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행위가 가치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다시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큰 목표는 왜 우리를 지치게 할까요?

 

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목표는 대개 크게 작성됩니다.

 

고독사 위험가구를 발굴한다.”

지역사회 공동체를 회복한다.”

주민의 사회적 관계망을 강화한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보고 책상 앞에 앉으면 조금 막막합니다. ‘고독사 예방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오늘 오후 2시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목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큰 목표를 오늘 실행하고 관찰할 수 있는 크기까지 내려보면 어떨까요?

 

고독사 예방이라는 목표를 오늘 오후 2시에 김 어르신 댁에 방문해 어제 가져다드린 반찬이 입에 맞았는지 묻는 일로 바꿔보는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망 강화라는 목표를 오늘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는 것으로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목표의 미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목표를 단순히 잘게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추상적인 목표를 오늘 실행하고, 그 결과를 관찰하고, 다시 수정할 수 있는 크기로 바꾸는 것입니다.

 


목표가 작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행할 수 있는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작은 실행에는 중요한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수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민을 만나보니 생각과 달랐다면 내일 바꾸면 됩니다.

프로그램 한 회기를 진행해 보니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다음 회기에 바꿔볼 수 있습니다. 작게 시작하면 실패의 비용도 작습니다.

 

반대로 1년짜리 사업을 완벽하게 설계한 뒤 마지막에야 주민의 반응을 확인한다면, 그때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한 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안전한 기획은 무엇일까요?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는 계획일까요? 아니면 작게 시도하고, 빨리 확인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계획일까요?

 

 

베테랑은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잘 고치는 사람

 

사회복지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험이 쌓인 사람일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합니다.

 

주민을 만나기 전에는 주민의 반응을 알 수 없다는 것.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이 실제로 작동할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

계획서에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써도 사람의 삶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경험 많은 사회복지사는 계획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우되, 현장에서 다시 봅니다. 주민을 만나고,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실행해 보고, 반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수정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애자일이 사회복지 현장에 던지는 가장 현실적인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계획을 얼마나 잘 세웠는가?”가 아니라 계획을 얼마나 빨리 현실에 맞게 고칠 수 있는가?”

 

기획과 실행을 서로 다른 단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획하면서 실행하고, 실행하면서 다시 기획합니다.

 

그렇다면 계획을 수정하는 것은 실패일까요? 오히려 현실을 만나고도 계획을 수정하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하루를 다시 생각해 본다면

 

퇴근길에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면 어떨까요?

오늘 나는 몇 건의 업무를 처리했는가?”

 

필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오늘 나는 몇 명의 주민을 만났는가?”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내가 한 일 가운데, 누군가의 삶에 실제 유익함을 준 것은 무엇일까?”

 

답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주민의 표정을 한번 더 살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하는 대신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회기의 내용을 바꾼 것일 수도 있습니다.

100명을 만나려던 계획을 잠시 내려놓고, 오늘 만난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완벽한 계획이 현장을 통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현장은 끊임없이 계획을 다시 쓰게 만듭니다. 그래서 좋은 기획이란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해 놓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현실을 만나면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것. 그것까지 포함하는 것이 좋은 계획 아닐까요?

인공지능으로 계획서를 빠르고 그럴듯하게 작성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럴수록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은 계획서를 빈틈없이 완성하는 능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집니다.

 

주민을 만나기 전에 무엇을 계획할 것인가.

주민을 만난 뒤 무엇을 바꿀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끝까지 가져갈 것인가.

 

어쩌면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은 계획을 잘 만드는 능력보다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바꿀지 판단하는 능력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퇴근하면서 마지막으로 던져야 할 질문도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오늘 계획대로 잘했는가?”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중요한 질문.

 

오늘 만난 현실이 내일의 계획을 바꾸게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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