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이타카로 가는 길,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가

  • 사회복지
  • 오디세이
  • 이타카
  • 통합돌봄
  • 당사자

최근 영화 《오디세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수많은 모험과 사건이 등장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돌아갈 곳은 분명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며 오랜 시간을 돌아가야 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 ‘돌아간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질병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전의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가족과의 갈등이나 학대로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 더 이상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돌봄이 필요하지만 가족에게 의지하기 어려운 분도 있고,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분도 계십니다. 결국 우리가 돕고자 하는 것은 서비스 하나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그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시행된 통합돌봄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의료가 필요하면 의료를, 돌봄이 필요하면 돌봄을 각각 찾아다녀야 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필요한 지원을 지역 안에서 함께 살피고 연결하여 가능한 한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향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오래전부터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온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도가 실제 현장에 자리 잡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대만큼 걱정도 생깁니다. 통합돌봄 업무를 맡았지만 사회복지 업무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해당 지역의 기관과 자원, 지역이 오랫동안 만들어 온 관계를 새롭게 파악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행정에서 판단하는 지원의 필요성과 실제 현장에서 바라보는 당사자의 상황 사이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상으로는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가 분명히 있는데도 당사자의 상황 때문에 이용하기 어려울 수 있고, 반대로 현장에서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판단하지만 기존 기준으로는 적절한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문제를 담당 공무원 개인의 전문성이나 노력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통합돌봄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시작하면서 담당자가 지역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지, 사회복지 실천현장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행정과 공유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관계와 경험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현장에서의 ‘통합’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삶은 행정적인 기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서비스를 거부한다고 해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가족이 있다고 해서 돌봄이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집이 있다고 해서 그곳이 안전한 생활공간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반대로 전문가의 눈에는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평생 살아온 집을 떠나는 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사회복지 실천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통합돌봄에서 말하는 ‘통합’ 역시 여러 서비스를 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것보다 조금 넓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온 기관의 경험과 행정의 역할이 만나야 하고, 의료·요양·돌봄·복지가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면서 한 사람의 상황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다시 《오디세이》를 생각해 봅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누군가가 정해준 목적지가 아니라 자신이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사회복지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이타카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살아온 집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목적지를 정해 그곳으로 데려가는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당사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먼저 듣고, 그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면서 필요한 사람과 제도를 연결하는 데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통합돌봄 역시 그런 과정이 지역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이름 그대로의 ‘통합’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통합돌봄은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제도가 얼마나 많은 서비스를 갖추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그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삶이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정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현장이 이야기하고, 현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것을 행정과 제도가 뒷받침하면서 각자의 역할이 조금씩 맞물려 가는 것, 저는 그 과정이 통합돌봄의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오랜 항해 끝에 찾아가고자 했던 것은 거창한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이 있는 이타카였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지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긴 항해일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생성형 AI(GPT)>


그 항해에서 사회복지가 해야 할 일은 목적지를 대신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고 싶은 곳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지역 안에 있도록 만드는 것, 저는 그것이 지금 통합돌봄을 시작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사회복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