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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 시대, 읍면동 복지현장을 살리는 수퍼비전 1편: “우리가 만물상인가요?” — 변화하는 복지환경과 읍면동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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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복지정책이 시작될 때마다 가장 먼저 주민을 만나고, 가장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곳이 바로 동주민센터이다. 항상 문제는 새로운 역할과 사업이 들어올 때마다 기존 업무는 그대로 둔 채 하나 더 얹히는 방식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복지업무 깔대기 병목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6327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본격 시행되면서 지역 중심 돌봄은 전국 지자체의 기본 과제가 되었다.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도록 의료, 요양, 돌봄을 통합적으로 연계하자는 취지는 분명 옳다. 그러나 제도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것은 신청 접수, 초기상담, 회의, 계획 수립, 서비스 연계, 모니터링이라는 수많은 행정 업무로 바뀐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는 동행센터, 동주민센터가 있다. 주민센터는 이미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 사각지대 발굴, 고독사 예방, 통합사례관리, 긴급복지, 안부확인과 각종 민원업무를 쉼 없이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퇴원환자와 복합돌봄 대상자 발굴·신청·점검까지 더해진 것이다. 정책은 사업별 목적에 따라 칸막이로 쪼개져 내려오지만, 주민의 삶은 그렇게 나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 속에는 만성질환과 공과금 체납, 주거 불안, 가족 단절, 우울과 돌봄 공백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현장의 혼란은 제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분절된 제도들을 한 사람의 삶에 맞게 다시 엮어내야 하는 데서 발생한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병목현상은 발굴과 방문의 중복이다. 복지플래너, 방문간호사, 노인맞춤돌봄 생활지원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읍면동 돌봄 담당자가 각자의 사업 기준에 따라 같은 대상자를 찾아간다. 어제도 왔는데 오늘도 또 왔냐고 신경질내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우리도 너무 여러사람이 와서 안부확인하고 질문을 하면 피곤하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각자의 업무가 또 있으니 또 찾아뵙거나 연락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매번 사정을 하게 된다. 이럴때마다 각각의 담당자들은 어디서 중심을 잡고 대상자를 관리해야 할지 정리하지 못한 채 서로의 전산 기록만 다시 들여다볼 수 밖에 없다. 사업별 성과관리는 촘촘해졌다고 하지만, 복지대상자 또는 주민이 만나는 복지 창구는 오히려 파편화되는 셈이다.

 

두 번째 병목은 끝이 보이지 않는 모니터링이다. 고독사 예방 안부확인, AI 안부콜 미응답 가구 확인, 사례관리 종결 후 사후관리, 퇴원 후 지역 적응 확인은 모두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확인할 것인가가 명확하지 않을 때다. 서비스는 전문기관이 제공하지만, 연락이 끊기거나 위기가 생기면 결국 읍면동으로 그 책임이 돌아온다. 통합돌봄의 모니터링은 단순히 안부전화를 몇 번 걸었는지 세는 일이 아니어야 한다. 개인별 지원계획이 잘 실행되는지, 대상자의 상태와 욕구에 변화가 없는지, 서비스 간 충돌이나 빈틈은 없는지 살피고 필요하면 계획을 바꾸는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서비스 기관의 피드백, 당사자의 체감 변화, 새로 발견된 위험 요인, 계획 수정 여부가 함께 기록되어야 한다. 단순히 이상 없음 한 줄로 끝나는 기록은 담당자 개인의 숙제로 남고, 담당자가 바뀌면 그동안 쌓아온 관계와 판단의 맥락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세 번째 병목은 보건과 복지, 행정과 실천의 관점 차이다. 간호직은 그 직렬의 특성상 대상자의 건강상태 즉, 혈당, 낙상, 복약, 욕창 같은 건강과 관련한 특이사항이나 질병 위험을 먼저 확인한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직은 어떨까? 이들은 아무래도 단절된 관계, 결식, 주거, 소득과 일상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것을 중점적으로 살필 수 없다. 어느 쪽이 더 옳다기보다 서로 다른 위험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함께 판단하는 구조가 없으면 이 차이는 전문성의 결합이 아니라 업무 간 갈등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하나의 판단으로 모으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사례회의에서 간호직은 혈당 관리가 되지 않고 복약도 불규칙하니 병원 진료와 건강관리가 우선이라고 이야기하고, 사회복지직은 며칠째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고 가족과도 단절되어 있으니 우선 식사 지원과 관계망 확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두 의견 모두 타당하지만, 회의가 각자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친다면 그래서 지금 이 대상자에게 가장 먼저 개입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누가 무엇을 맡고 언제 다시 확인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례회의에서는 정보를 나열하는 것보다 먼저 지금 가장 시급한 위험은 무엇인지, 건강·경제·주거·관계의 위험 가운데 무엇부터 개입할 것인지, 각 직렬과 기관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언제 다시 상황을 확인할 것인지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공동의 우선순위와 역할을 정할 때 서로 다른 전문성은 업무 간 충돌이 아니라 대상자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자에게 조금 더 대상자를 꼼꼼히 살피자거나,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요구를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들의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건강이 나빠진 이유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복약이 중단된 배경에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과의 단절이 있을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문제 안에 건강, 주거, 소득, 관계,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명의 실무자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통합돌봄에서 중요한 것은 실무자 개인의 역량이나 열정을 높이는 것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함께 판단하고, 역할을 나누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수퍼비전이 필요하다.


돌봄에서의 수퍼비전은 어려운 사례를 가져가면 팀장이나 선배가 해결책을 알려주는 자리가 아니다. 대상자의 상황을 함께 살펴보면서 지금 이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위험은 무엇인지, 건강과 생활의 문제 가운데 무엇부터 개입해야 하는지, 읍면동이 직접 해야 할 일은 어디까지인지, 또는 보건소나 복지관, 의료기관 등과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 누가 무엇을 맡고 언제 다시 확인할 것인가를 함께 결정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삶을 한 명의 실무자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판단과 책임을 조직과 관계기관이 함께 나누도록 만드는 과정이다.


수퍼비전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돌보는 장치이기도 하다. 폭언과 반복적인 민원에 노출되거나, 고독사 현장을 확인하고, 위기 상황에 놓인 주민을 지속적으로 만나야 하는 담당자 수퍼바이지들에게 담당자니까 감당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 주민에게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하듯 돌봄을 수행하는 실무자에게도 자신의 판단을 점검하고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다시 일할 힘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수퍼비전은 사례를 관리하기 위한 절차인 동시에 돌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실무자를 지지하는 조직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읍면동이 모든일을 다 처리해주는 만물상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민의 삶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가장 가까운 행정기관인 읍면동으로 모이는데, 이를 분류하고 조정하며 함께 책임질 구조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합 돌봄이 확대될수록 읍면동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 무엇을 직접 하고 무엇을 연결하며 무엇을 다른 기관과 함께 책임질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돌봄 시대의 수퍼비전은 실무자에게 더 잘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 사람에게 집중된 돌봄의 부담을 조직의 판단으로 바꾸고, 한 기관에 집중된 책임을 지역의 공동 책임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좋은 돌봄은 헌신적인 한 명의 실무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전문성이 연결되고 그 판단과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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