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관 사회사업 By 김세진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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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에서 '전문가'란 누구인가?
“우리 현장에서 당사자와 인간적 만남이 가능할까요?
또 그렇게 감정에 치우치고 감정에 호소하는 건 비전문가적인 온정주의 아닐까요?”
당사자와 인간적 만남이 비전문가적인 온정주의라는 말씀… 글쎄요.
사무적인 만남을 넘어 서로 인간적 관계를 맺는 이야말로 진정 전문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비전문가적 온정주의 반대쪽에는, 인간성이 사라진 차가운 복지 서비스만 떠오릅니다.
사회사업에서 ‘당사자’는 우리 복지사업을 위해 존재하는 이가 아닙니다.
사회사업가 쪽 기술과 자원으로, 효과와 효율을 좇는 일이 전문성이라면 거부합니다.
당사자를 여럿 가운데 ‘하나쯤인 사례’가 아닌 이 세상에 유일한 ‘하나뿐인 사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한 끝까지 자기 삶을 살게 돕고 싶습니다.
전문가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사회사업가로서 마땅함을 좇아 일할 뿐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현란한 재주에는 질리고, 진정한 마음에는 끌립니다.
사회사업가를 만나는 당사자의 마음도 그러할 겁니다.
이미 만들어진 정답을 들고 와 일방적으로 진단·사정하고 최적의 지점을 처방하는 전문가 앞에서,
당사자는 숫자로 전락할 뿐입니다.
나를 돕겠다는 사람이 모르는 것 없고 항상 올바른 선택만 내리는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당사자에게는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겁니다.
어느 미국 노숙인 현장 연구(구인회 외, 2012)가 떠오릅니다.
노숙인을 ‘개인의 병리적 장애를 감지하고 진단하며 치료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맞추어져’ 있는 지원 방식 아래에서
당사자는 노숙인 쉼터를 ‘자신들을 숫자로 보고 애들처럼 대하는 기관’으로 여기며 입주를 거부했습니다.
또 다른 미국 노숙인 지원 기록(최영아, 2015)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노숙인들은 서비스 제공자나 실무자에 대하여 ‘자신이 공개적으로 대상화되고 무능력한 존재로 취급받았다’고 느끼며
이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결국, 이런 수치스런 복지 서비스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도 이런 반응은 동일합니다.
미국 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도움을 받았던 경험을 소개하는데,
전문가들은 언제나 자신들을 아이처럼 대했다며 불쾌하게 여깁니다.
이 같은 일방적인 지도의 폐해는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에서도 나타납니다.
농업 전문가들이 찾아와 농부를 지도하는 일화에서,
농부를 돕겠다는 전문가들은 이미 정해진 답을 들고 와 일방적으로 전달합니다.
정작 그 땅에서 오래도록 농사를 지어온 농부들 이야기는 한마디도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 전문가 앞에서,
힘없는 농부는 그저 수용하기만 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피에르 라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전문가들의 그런 행동에 반대합니다.
나에게는 사람들을 알아 가는 것이, 그들을 만나 차 한 잔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정해진 기한 내에 함께 우리의 계획들을 진행시킬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전문가의 자리는 이처럼 당사자를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사자와 ‘함께’ 일하는 사람입니다.
전문가라면 나의 지식과 편견을 당분간 내려놓고,
겸손하고 애정 어린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해와 공감의 과정을 바탕에 둡니다.
전문가의 목소리를 낮추는 대신 당사자가 말하게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일,
당사자와 상의하여 그가 스스로 자기 삶을 궁리하고 계획할 수 있게 의논 상대가 되는 일,
이런 태도가 전문가로서 사회사업가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심리 상담가 칼 로저스는 ‘심리치료’라는 말보다는 ‘상담’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고,
‘환자’라는 말보다는 ‘내담자’라는 말로 부르기를 선호했습니다.
로저스는 무엇보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상호 간에 어떠한 치료적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상담치료의 성공적 결과 여부가 달려 있다(칼 로저스, 2007)”고 했습니다.
상담을 그 어떤 이론이나 검사나 심리기법도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여긴 겁니다.
즉, 전문가라면 먼저 상대의 처지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회사업가도 이처럼 ‘내담자’나 ‘대상’을 넘어 ‘사람’으로 관계를 맺으려 애쓸 때,
당사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깊이 알게 되고, 이로써 근본적 해결을 위한 실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인공지능이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최적의 해법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할수록, 인간 사회사업가에게 요구되는 건
차가운 돌가슴과 이성적인 진단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온기입니다.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함석헌, 2016)”는 말처럼,
어려움 속에 놓인 당사자의 자리에 서보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사회사업가를 진정한 ‘전문가’라 부를 겁니다.
구인회 외. (2012). 『한국의 노숙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최영아. (2015). 『질병과 가난한 삶』. 청년의사.
칼 로저스. (2007). 『칼 로저스의 사람-중심 상담』. (오제은 번역). 학지사.
사울 D. 알린스키. (2016).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 (박순성 번역). 아르케.
장 피에르 카르티에 외. (2007). 『농부철학자 피에라 라비』. (길잡이 늑대 번역). 조화로운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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