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20century boy)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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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울복지교육센터 주최로 진행된 공유복지살롱 ‘1의 복지 주민편’에서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습니다.
“1의 복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사용해 온 개념을 달라진 현실에 새롭게 적용하는 것 아닐까요?”
여기서 말한 기존 개념은 개별화, 자기결정, 강점관점, 관계기반 실천 등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례관리는 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함께 보았습니다. 강점관점은 결핍보다 사람이 이미 지닌 힘과 자원에 주목했습니다. 사람중심실천은 당사자의 선택과 자기결정을 강조했고, 지역사회복지는 가족 밖의 관계와 지역의 자원을 중요하게 다뤄왔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1의 복지’라는 새로운 말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실천방법보다 먼저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봐야 합니다. 1의 복지가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기법보다 사람에 대한 해석입니다.
과거의 개인은 여러 집단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누구의 자녀이고 배우자였으며, 어느 직장의 직원이자 어느 동네의 주민이었습니다. 돌봄은 주로 가족이 맡았고 소득과 사회적 관계의 상당 부분은 직장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한 동네에 오래 살면 자연스럽게 이웃관계도 생겼습니다.
개인은 이런 관계 안에서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1/n’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족과 조직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질서는 왜 달라졌을까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족과 조직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달라졌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기준도 바뀌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그 변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경험입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조직에 충실하면 삶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국가가 나를 지켜줄 수 없고, 조직의 생존과 나의 생존이 언제나 함께 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겪었습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는 것만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워지면서, 개인은 자신의 경력과 생계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압박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개인이 조직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넓혔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사람과 자원을 만나고,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기획하고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조직에 속해야 얻을 수 있었던 정보와 도구를 개인도 활용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과 역량으로 일을 구성할 여지는 커졌습니다.
길어진 수명은 가족의 역할도 다시 묻게 합니다. 부모를 돌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녀 역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부모 부양과 자신의 생계를 오래 함께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노후를 맡기는 방식이 앞으로도 가능한지, 가족이 돌봄을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참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 선택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습니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고 싶고, 관계를 맺더라도 자신의 경계와 선택을 존중받고 싶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직업과 소비, 관계의 기준은 스스로 세우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배경입니다.
이런 변화가 겹치면서 ‘핵개인’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핵개인은 혼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조직에 속해 있더라도 자기 삶의 기준을 세우고 중요한 결정에 자신의 뜻을 반영하려는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는 자율성을 얻는 경험과 스스로 버텨야 하는 부담이 함께 있습니다. 누군가는 선택할 여지가 넓어져 독립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자신의 삶을 홀로 감당합니다. 같은 ‘1’이어도 그 자리에 이른 사정과 가진 자원은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겹쳐 나타났습니다. 가족을 우선하고 조직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가운데, 개인에게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라는 요구가 커졌습니다. 가족이 돌봄을 맡을 것이라는 제도의 전제와 실제로 돌볼 사람이 없는 개인의 삶 사이에도 간격이 생깁니다.
그래서 핵개인의 등장을 개인주의가 강해진 결과로만 읽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달라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킬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가 만나야 할 ‘1’도 그 과정에서 달라지고 있습니다.1
이 변화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에서도 드러납니다.
혼자 살지만 중요한 결정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도 직업과 소비, 관계와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가 있지만 노후를 자녀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노인이 있고, 법적 가족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서로 병원에 동행하며 일상을 살피는 친구가 있습니다. 직장과 소득은 안정적이지만 아플 때 연락할 사람이 없는 중장년도 있습니다.
이들을 1인 가구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관계를 구성하는 방식, 도움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까지 살펴야 합니다.
저는 이들을 ‘달라진 1’이라고 봅니다.
가족과 조직이 자연스럽게 제공하던 역할과 관계가 약해진 자리에서 누구와 살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지,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를 어떻게 돌볼지, 자신의 노후를 어떻게 만들지도 직접 풀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핵개인 시대의 문제는 기존의 결핍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난하지 않아도 고립될 수 있습니다. 집이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가족이 있어도 실제 돌봄관계는 없을 수 있습니다. 혼자 생활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여러 서비스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 결정할 기회는 적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복지는 소득, 주거, 의료, 돌봄, 안전과 같은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위험에 대응하는 제도적 역량을 만들어왔습니다. 생계가 어려우면 소득을 지원하고, 결식이 우려되면 식사를 제공합니다. 의료서비스와 돌봄을 연결하고 위험이 우려되면 안부를 확인합니다.
이 역할은 앞으로도 중요합니다. 사람이 굶고 있는데 관계부터 만들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공동체 참여를 권한다고 주거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전문적인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일을 이웃의 선의에 넘겨서도 안 됩니다. 공공이 책임져야 할 일은 공공이 더 단단하게 책임져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은 남습니다.
서비스가 충분하면 삶도 충분해지는가?
도시락을 받는다고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안부전화가 와도 힘들 때 내가 먼저 전화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수 있습니다. 돌봄서비스를 받는 것과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일도 다릅니다.
소득과 주거, 의료와 돌봄은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사람은 그 기반 위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일을 결정하고, 역할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며 살아갑니다.
서비스는 삶을 지켜줍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자산기반접근에서 Service Land와 Real World를 구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Service Land에서는 문제를 발견하고 욕구를 사정합니다. 자격을 판단하고 전문가와 서비스를 연결합니다. Real World에서 사람은 이웃과 친구, 동료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도움을 받으며,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두 세계는 모두 필요합니다. 문제는 Service Land가 Real World까지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관계가 약해질수록 우리는 관계를 서비스로 만들려고 합니다. 안부전화 사업과 말벗 서비스, 고립가구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모두 필요한 대응입니다.
그런데 사업이 끝날 때 관계도 함께 끝난다면 어떨까요. 사회복지사만 그 사람에게 연락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남는다면 어떨까요.
1의 복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1의 복지는 강점관점과 자기결정, 사례관리, ABCD와 지역사회조직화 등 기존의 실천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방법을 적용하는 사람에 대한 해석입니다.
강점관점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사람에게 어떤 강점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다만 그 사람이 전통적인 가족과 조직에 안정적으로 속한 1/n이 아니라 자신의 관계를 직접 구성해야 하는 ‘달라진 1’이라면, 강점을 활용하는 방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한 사람의 강점을 발견한 뒤 자립이나 가족기능을 강화하는 데 활용했을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를 회복하고 부모와 자녀의 역할을 조정하며, 가족이 다시 돌봄기능을 수행하도록 돕는 방식입니다.
지금도 필요한 실천입니다.
여기에 몇 가지 질문을 더해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기존 가족이 모든 기능을 다시 수행해야 할까? 친구와 돌봄을 나누거나 이웃과 병원 동행, 비상연락 관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신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눌 수는 없을까?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서로 선택한 사람들과 노후를 설계할 수는 없을까?
강점관점은 그대로지만 강점을 연결하는 대상과 관계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능을 회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온전한 1이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어떤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지까지 살피게 됩니다.
혈연이 아니어도 서로를 가족처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활을 공유하지 않고 필요한 기능만 나누거나 일정한 시기에 서로를 돌보는 관계도 가능합니다. 저는 이런 관계를 선택가족, 간헐적 가족, 구독형 가족이라는 언어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관계의 기본값을 다시 묻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가족을 돌봄과 부양의 기본단위로 생각해왔습니다. 가족이 있으면 먼저 가족에게 역할을 요청하고, 가족이 기능하지 못할 때 친구와 이웃, 지역사회 자원을 보완적으로 연결했습니다.
개인에서 가족으로, 가족이 부족하면 지역사회로 이어지는 순서였습니다.
달라진 1의 삶에서는 이 순서가 항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을 수도 있고, 친구가 가족보다 더 중요한 돌봄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몇 명의 이웃이 서로 다른 기능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병원 동행은 친구가 하고, 비상연락은 이웃이 맡습니다. 정서적인 이야기는 다른 친구와 나누고 여가는 취미모임에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한 관계가 삶의 모든 기능을 담당하기보다 여러 관계가 역할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보면 친구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친구를 정서적으로 친한 사람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친구는 위기 때 병원에 함께 갈 수 있고, 어떤 친구는 노후의 생활을 의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에 특정한 기능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며칠 보이지 않으면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늘 1인분을 감당하던 사람이 어느 날 0.8인분밖에 해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부족한 0.2를 잠시 채워줄 수 있습니다. 모든 삶을 책임지는 가족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조금씩 서로를 챙기는 느슨한 상호돌봄의 관계입니다.
직장관계도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핵개인 시대의 직장관계는 오히려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평생직장은 약해지고 직장동료와 사생활까지 공유해야 한다는 기대도 줄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가족 같은 직장’을 복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직장동료와 친구가 되거나 사생활을 모두 공유하지 않아도 됩니다.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어려운 판단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며, 실패했을 때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관계는 필요합니다. 친밀하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고, 가깝지 않아도 존중받는 관계입니다.
달라진 1은 주민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사회복지사 역시 자신의 전문성과 판단을 가진 1입니다.
주민에게는 자기결정을 말하면서 사회복지사에게는 순응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주민은 온전한 1로 보면서 직원은 정원표의 1/n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핵개인 시대에는 사회복지 조직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을 ‘영입’한다고 생각하면 채용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빈자리를 채우는 데 더해, 고유한 경험과 판단을 가진 한 사람이 조직에 들어온다는 점을 보게 됩니다.
‘5분의 존경’도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조직에 충성한 사람만 인정하기보다 지금 만들어낸 작은 기여를 그 순간 알아보는 것입니다.
‘상호허겁’의 관계도 필요합니다. 모두가 가족처럼 가까워질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순간에는 돕는 정중한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관리자는 구성원 각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실패의 부담과 행정소음을 줄여주는 가림막이 될 수 있습니다.
1/n에서 1로. 그리고 1에서 다시 1+1+1로.

그 사람을 여전히 가족이나 대상집단의 1/n으로만 읽는다면 해법도 익숙한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달라진 1’로 읽기 시작하면 같은 강점관점에서 새로운 질문이 나오고, 같은 사례관리에서 다른 관계가 보이며, 같은 지역사회실천으로도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저는 1의 복지를 핵개인 시대에 등장한 ‘달라진 1’을 설명하고, 그 1을 기준으로 기존 사회복지 실천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 읽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이미 달라지고 있다면, 어떤 새로운 방법을 배울 것인지에 앞서 먼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1’을 만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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