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사유(思惟) By 이두진(20century boy)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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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을 바꿔도 조직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
-‘실행 취소’가 가능한 조직으로-
복지관이 삐걱거릴 때 가장 먼저 바꾸는 것
복지관 운영이 원활하지 않고 직원들이 지쳐갈 때, 관리자들이 흔히 내리는 처방이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업무자동화가 안되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업무 매뉴얼이 허술해서 사고가 반복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업무 자동화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도구와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다만 이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소통이 막힌 조직에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요. 직원들은 그것을 업무를 돕는 도구보다 또 하나의 감시와 통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매뉴얼이 정교해질수록 책임을 피하기 위한 절차만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조직 안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리더는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지, 직원들은 왜 입을 닫았는지, 서로 도움을 청하기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사람과 관계가 지쳐 있는데 새로운 도구만 쥐여준다고 조직이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옆 동네 ‘슈퍼스타’를 데려오면 달라질까
조직이 침체되면 외부의 뛰어난 인재에게 기대를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이직한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한 직원이 되거나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실력이 과장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전문성은 혼자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가 있었고,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주민과 지역 자원이 있었습니다. 의견을 내도 괜찮다는 믿음과 실패했을 때 함께 수습해 줄 상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기관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관계와 신뢰의 상당 부분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뛰어난 사람도 협력할 동료가 없고 질문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한 사람의 탁월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평범한 구성원들이 서로 묻고 돕고 책임을 나눌 수 있을 때 개인의 전문성도 살아납니다.
그래서 인재를 영입하기 전에 물어야 합니다.
우리 조직은 유능한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인가.
새로 온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고 동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가.
“그것도 몰라요?”라는 한마디
좋은 조직의 토양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심리적 안전감’입니다. 구글의 조직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진 개념이기도 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을 무조건 편하게 해주는 복지 혜택이 아닙니다.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업무상 실수를 인정해도 조롱받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가깝습니다.
이 믿음을 무너뜨리는 말은 의외로 짧습니다.
“입사한 지가 언젠데 그것도 몰라요?”
질문했다가 핀잔을 들은 직원은 다음부터 묻지 않습니다. 모르는 법령을 아는 척 넘기고, 확신이 없는 서류도 조용히 처리합니다. 처음에는 1분만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질문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작은 혼란이 오랫동안 방치됩니다.
그 결과는 몇 달 뒤에 나타납니다. 감사에서 지적받거나 예산을 환수해야 할 수도 있고, 민원이 커진 뒤에야 잘못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팀원의 질문을 무능의 증거로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고가 생기기 전에 확인하려는 책임감일 수도 있습니다.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저도 바로 단정하기보다 규정을 함께 확인해 봅시다.”
이 한마디는 질문을 이어가게 합니다. 질문이 이어지는 조직에서는 작은 오류를 일찍 발견하고, 필요한 정보를 함께 확인하며, 더 나은 판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실수를 숨기는 조직이 더 위험하다
조직의 안전망을 만들려면 실수를 대하는 태도도 살펴야 합니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조직은 겉으로 보기에 엄격하고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보다 실수를 들키지 않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질책과 징계가 두려우면 보고를 늦추거나 상황을 축소하고, 때로는 기록을 바꾸기도 합니다.
숨겨진 실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큰 문제로 자랍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다가 문장을 잘못 입력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Ctrl+Z’를 누릅니다. 방금 한 행동을 되돌리는 실행 취소 기능입니다. 잘못 입력해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문장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조직에도 이런 장치가 필요합니다.
직원이 실수를 발견했을 때 “제가 이 부분을 잘못 처리했습니다”라고 바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는 먼저 잘못을 보고한 행동을 인정하고, 피해를 줄이는 방법과 재발을 막을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물론 모든 실수를 가볍게 넘기자는 뜻은 아닙니다. 반복되는 무책임과 고의적인 은폐에는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다만 실수 자체와 실수를 숨기는 행동은 구분해야 합니다. 실수를 솔직하게 드러낸 사람까지 먼저 처벌한다면 다음 사람은 입을 닫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직의 안전은 실수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빨리 발견하고, 함께 되돌리고, 그 경험으로 일하는 방식을 고칠 수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거창한 혁신보다 아픈 곳 하나부터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때 조직은 자주 큰 계획부터 세웁니다.
혁신 선포식을 열고 전 직원에게 두꺼운 지침서를 나눠줍니다. 새로운 회의 방식과 절차를 일괄적으로 도입하기도 합니다.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고 느낍니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서서 회의한다고 해서 조직이 곧바로 유연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는 지금 직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 양식을 절반으로 줄여볼 수 있습니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결재 단계를 하나 없앨 수도 있습니다. 회의에서 바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을 며칠 동안 문서로 돌리는 관행부터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조직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변화에 열려 있는 한두 팀에서 먼저 실험해 보면 됩니다. 작은 변화가 실제로 업무 부담을 줄이는지 확인하고, 효과가 있다면 다른 팀으로 넓혀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자일해 보이는 형식을 갖추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조직의 흐름을 막고 있는 구체적인 병목을 찾아 조금씩 해결하는 일입니다. 작은 문제를 함께 해결한 경험은 구성원에게 새로운 믿음을 줍니다.
“말해도 달라질 수 있구나.”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직접 고칠 수 있구나.”
그 믿음이 쌓일 때 조직은 조금씩 움직입니다.
오늘 우리 일터의 공기는 어땠을까
퇴근길에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과 지침서만 뒤적였을까요.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의 마음과 관계도 함께 살폈을까요.
동료가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을 귀찮다는 표정으로 흘려보내지는 않았을까요. 실수를 먼저 말한 직원에게 핀잔을 주어 다음에는 숨기는 편이 낫다고 느끼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조직의 변화에는 제도와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입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함께 되돌릴 수 있으며, 작은 불편을 말하면 실제 변화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복지관에는 ‘실행 취소’ 버튼이 살아 있었을까요.
긴장한 후배에게 건넨 “괜찮아요. 같이 살펴봅시다”라는 한마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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