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캉이는 불쌍하고, 샥스핀은 맛있다?
동물을 향한 우리의 공감은 어디에서 멈추는가
최근 부산 북항에 나타난 흑상어 '부캉이'가 전국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세 번째 유도작업 끝에 인공수로를 벗어났지만, 몇 시간 만에 다시 차단막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부캉이의 행보에 시민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캉이를 보기 위해 북항 친수공원을 찾은 방문객은 16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주변 상권의 매출이 늘고 관련 상품이 출시되는가 하면, 부캉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업의 주식까지 '테마주'로 주목받았습니다. 상어 한 마리가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인기 콘텐츠가 된 것입니다. 물론 부캉이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은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열광 속에서 정작 부캉이의 삶과 안녕이 얼마나 중요하게 고려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사진설명 : 수로안에 갖힌 부캉이와 부캉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 (출처: 노컷뉴스 10월 4일)
https://www.nocutnews.co.kr/news/6586917
부캉이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을 지켜보면서 문득 샥스핀 요리가 떠올랐습니다. 상어의 지느러미를 재료로 하는 샥스핀은 여전히 고급 음식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지느러미를 얻기 위한 무분별한 포획과 불법 거래, 동물의 고통이라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부캉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과 샥스핀을 즐기는 식문화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요?
물론 부캉이를 걱정하는 사람과 샥스핀을 먹는 사람이 반드시 같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동물에게 보내는 우리의 관심과 동물을 소비하는 방식 사이에는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의 모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늑대 '늑구'의 생존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사연에 관심을 가지면서 마치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걱정하듯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푸바오에게 보내는 애정이 다른 동물원 동물들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늑구의 생존을 바라는 마음이 야생동물을 가두고 전시하는 동물원의 역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별개의 질문입니다.
심리학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식별 가능한 희생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한 존재의 어려움에 익명의 여러 존재가 겪는 고통보다 더 크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동물에게 적용한 흥미로운 연구도 있습니다. Cohen Ben-Arye와 Halali(2024)는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도살 위기에 놓인 송아지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이름과 사진이 제시된 송아지 한 마리가 익명의 송아지들보다 더 많은 보호 행동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실제 청원 서명과 기부 행동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부캉이와 늑구의 사례를 떠올리게 하는 연구입니다. 수많은 상어와 늑대 중 특정한 한 마리가 이름과 이야기를 갖게 되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름이 붙었다고 그 동물의 생명이 더 소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 동물이 더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의 고통에는 왜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심리학적 개념이 '육식의 역설(Meat Paradox)'입니다. 사람들은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육식을 즐깁니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생각과 행동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Bastian과 동료들(2012)은 사람들이 이런 갈등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식용 동물의 정신적 능력을 낮게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동물이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수록 그 동물을 먹는 행동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도 연결됩니다.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생각이나 태도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연구는 Bratanova와 동료들(2011)이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동물을 단지 '음식'으로 분류하는 것만으로도 그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능력에 대한 평가가 낮아지고 도덕적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부캉이와 샥스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상어는 보호해야 할 생명으로 인식되지만, 식탁에 오른 상어는 음식으로 인식됩니다.같은 동물이라도 어떤 이름과 범주로 우리 앞에 등장하는가에 따라 도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도 발견됩니다. 반려묘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도 루왁커피를 마실 때는 사향고양이의 삶을 떠올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루왁커피는 사향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커피 열매의 씨앗을 가공하여 만듭니다.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배설된 씨앗을 수거하는 방식도 있지만, 상업적 생산 과정에서 사향고양이를 좁은 우리에 가두고 사육하는 문제가 지적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Carder와 동료들(2016)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루왁커피 관련 시설 16곳에서 사육되는 사향고양이 48마리의 복지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부적절한 사육환경과 동물복지 문제가 확인되었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동안 그 생산 과정에 있는 동물의 고통은 쉽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다른 동물이 겪는 고통을 충분히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익숙한 소비문화 속에서 그런 문제를 깊이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애정을 느끼는 동물의 고통에만 공감하는 것일까요?
앞서 살펴본 심리학 연구들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도덕성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어떤 동물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소개되는지, 어떤 동물이 음식이나 상품으로 분류되는지, 그 생산과 소비 과정이 얼마나 드러나는지에 따라 우리의 공감과 도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태도를 넘어 사회적 구조와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관광자원이나 전시 대상으로 활용하기도 하며, 음식과 상품으로 소비하기도 합니다. 부캉이에게 쏟아진 관심과 경제적 열풍 역시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보여줍니다. 동물을 향한 애정이 관광과 소비로 이어지는 동안, 정작 그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과 복지에 대한 관심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정 동물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마음은 소중한 출발점입니다. 부캉이에게 보내는 관심이 상어의 생태와 해양환경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수 있고, 늑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동물원의 역할과 사육환경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공감이 특정한 동물에 대한 애정에서 멈추는가, 아니면 다른 동물들의 삶을 돌아보는 관심으로 확장되는가에 있습니다. 공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동물복지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행동과 사회적 제도를 돌아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사회복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이나 언론에 소개된 어려운 사연에 쉽게 공감합니다. 반면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은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가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은 관심과 지원이 잘 알려진 특정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살피는 일과도 연결됩니다.
동물복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 우리의 관심 밖에 놓인 동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고통을 만들어 내거나 보이지 않게 하는 생산과 소비의 구조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캉이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반가운 일입니다. 이름을 알게 된 한 마리 상어를 걱정하는 마음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부캉이가 하루빨리 건강하게 바다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마음이 부캉이 한 마리에게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캉이에게 보내는 연민이 샥스핀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상어들에게도 향할 수 있을까요? 푸바오와 늑구에게 보내는 애정이 이름 없는 동물들의 삶에도 닿을 수 있을까요?
제 생각으론 동물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회는 특별히 사랑받는 동물이 많은 사회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동물의 고통까지 외면하지 않는 사회일 것입니다.
원고에 활용한 주요 학술자료
- Cohen Ben-Arye, R., & Halali, E. (2024).Giving farm animals a name and a face: Eliciting animal advocacy among omnivores using the identifiable victim effect.Journal of Environmental Psychology, 93.
- Bastian, B., Loughnan, S., Haslam, N., & Radke, H. R. M. (2012).Don't mind meat? The denial of mind to animals used for human consumption.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8(2), 247–256.
- Bratanova, B., Loughnan, S., & Bastian, B. (2011).The effect of categorization as food on the perceived moral standing of animals.Appetite, 57(1), 193–196.
- Carder, G., Proctor, H., Schmidt-Burbach, J., & D'Cruze, N. (2016).The animal welfare implications of civet coffee tourism in Bali.Animal Welfare, 25(2), 199–205.
댓글
댓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