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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의 보편주의'와 '기존 복지의 보편주의'는 어떻게 왜 다른가?

  • 양재진
  • 기본소득
  • 보편주의
  • 복지국가
  • 사회보장

기본소득(Basic Income)이 유행이다. 유력한 대선주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정책이기도 하다

전 국민 기본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의 주창자들은 기존의 복지는 선별이라며, 기본소득으로 보편복지의 시대를 열자고 말한다

기본소득은 누구에게나 현금을 정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누구에게나 주니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보편주의 논리를 따르다 보면,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도 어느덧 선별 복지국가가 되고 만다

도대체 기존 복지의 보편주의와 기본소득의 보편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의 차이는 사회적 위험이나 욕구를 먼저 따지는지 아닌지에 달렸다.

보편주의 복지는 아무에게나 이유 없이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실업, 은퇴, 출산, 질병 치료 등 사유가 발생했는지를 먼저 따진다

이후 굳이 소득이나 재산 수준을 따지지 않고 시민이면 누구에게나 실업급여, 연금, 육아휴직급여, 의료급여 등을 지급한다. 보편주의 복지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사회적 위험이나 질병 그리고 연령 등에 따라 발생하는 특정한 욕구(needs) 여부나 경제적 능력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모든 이를 급여제공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혹자는 기본소득의 보편주의를 극단적보편주의라 부른다

필자는 욕구나 사회적 위험의 발생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무차별적보편주의(indiscriminate universalism)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은 보편주의적 제도라 할 수 있다. 아프면 누구나 병원에 가고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굳이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는다. 지난 칼럼에서 썼듯이, 만약 아픈 사람 중에 스스로 병원비를 내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만 의료보장을 해준다면 

선별주의(혹은 보다 정확히는 잔여주의)라 부르게 된다.


그런데, 기본소득의 보편주의 논리에 비추어 보면 대한민국의 건강보험도 선별주의다

아픈 사람에게만 급여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상정하는 보편주의는 매달 의료비로 쓰라고 무조건 모든 국민에게 현금이 지급돼야 한다

보편적 무상급식도 학생 여부를 따져서 주는 것이기에 선별주의가 된다

기본소득의 보편주의 논리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급식비가 현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의 보편주의가 욕구를 따지지 않고 무차별성을 띠는 이유는 그 기원을 사회권적 시민권보다는

공유부(commonwealth)에 대한 시민권적 권리에서 찾기 때문이다

공유부란 인간의 노동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사용가치가 있는 재화를 뜻한다

토지, 석유 같은 지하자원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토지소유자에게 세금을 거둬서 

전 국민에게 1/n으로 기본소득을 나눠주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밖에 온라인상에 떠다니는 데이터, 인류가 쌓아온 지식까지도 공유부라고 폭넓게 여기기도 한다.


아무튼 기본소득론자들은 공유부에 대한 권리는 남녀노소 차이 없이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공유부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기본소득이라는 배당금의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나누어 주어야 정의롭다고 본다

공유부에 대한 권리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똑같기에 배당금도 1/n 한 동일한 액수여야 한다. 극단적인 평등주의라 할 수 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도 평등을 지향하지만 획일적이지는 않다. 암 걸린 사람이 감기 걸린 사람보다 건강보험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

실업 기간이 긴 사람이 짧은 사람보다 더 많이 받아 간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생계 급여가 더 많이 지급된다.



사회보장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복지제도로 유행처럼 논의되고 있다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보편주의와 기존 복지국가의 보편주의는 원리 자체가 다르고 서로 이질적이다

보편주의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이 합을 이룰 수 있을지 좀 더 따져봐야 할 일이다. 



*)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Van Parijs와 Vanderborght의 Basic income: A radical proposal for a free society and a sane economy (홍기빈 역, 『21세기 기본소득』. 서울: 흐름출판, 2018)과 금민.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지금 바로 기본소득』(동아시아. 2020)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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