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보장의 원리 By 양재진
-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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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칼럼에서 복지의 보편주의와 선별주의, 그리고 기본소득의 무차별적 보편주의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할당 원리별로 기대효과를 몇 가지로 나누어 비교해 보자.
첫째, 사회보장이다.
보편주의가 선별주의보다 사회 보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보장제도가 보호하는 인구가 많다. 또 급여 수준도 어느 정도 적절할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제도의 급여 수준이 낮으면,
중산층은 이탈해 저축이나 민간 보험에 의존하게 된다.
실제로는 보편주의적 보장이 이뤄지지 않는다. 잔여주의 복지 국가화가 된다.
유럽 복지국가의 연금, 실업, 육아휴직급여 등 소득보장제도들이 소득비례형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중산층에게 적절한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중산층을 만족하게 해 이들을 복지국가의 품 안에 품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 같은 극단적 보편주의는 이상과 달리, 실제에서는 중산층의 이탈을 가져올 확률이 높다.
단순히 급여가 제공된다는 사실만으로 사회보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효성 있는 사회보장은 적절한 급여를 전제로 한다.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1인당 급여가 높기 어렵다.
월 1만 원 기본소득도 연 6조 원이 소요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 급여도 1인 가구 52만 원에 주거급여까지 하면 월 80만 원에 달하는데,
몇만 원 가지고 사회보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80만 원씩 주자면 연 480조 원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전체 예산을 다 투입해야 한다.
가능한 일이 아니다.
둘째, 소득재분배를 보자.
복지 급여는 은퇴, 실업, 출산 등 사회적 위험에 빠져 소득이 상실된 시민이나 근로 빈곤계층에게 지급된다.
중산층이었더라도 실업을 당하면 소득이 없다. 아이를 낳아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소득이 없다.
근로 빈곤층은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낮다.
여기에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생계급여나 근로장려세(EITC)같은 복지급여가 들어간다.
사회보장이 곧 소득재분배 효과를 불러온다.
소득상실자와 빈곤계층 전체를 급여대상으로 삼는 보편주의가 이들 소득상실자나 근로 빈곤계층 중
일부 저소득자에게만 급여를 제공하는 선별주의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다.
반면에 기본소득의 무차별적 보편주의의 경우, 소득상실자나 근로 빈곤계층 외에
소득 활동을 하는 대다수 국민에게 급여가 지급한다.
상대적으로 복지급여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동일 액수의 급여를 지급하므로,
저소득계층과 고소득계층의 소득 격차 해소에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셋째, 사회 통합성을 보자.
급여 대상자 선정이 사회적 위험 여부나 욕구에 대한 판정을 넘어서서 자산조사까지 이루어지는 선별주의는,
급여대상자 선정과정에서 낙인(stigma)효과가 발생한다.
가난이 죄는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니지만, 자랑할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금급여라면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것이 아니므로 소비 단계에서는 낙인효과가 없다.
하지만 서비스나 바우처 같은 현물성 급여인 경우, 소비단계에서도 낙인효과가 나타난다.
또 선별주의가 고소득자를 컷오프(cut off)시키는 것이 아니고 저소득자를 가르는 잔여주의 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
급여수혜자와 비용분담자(세금납부자)로 국민이 양분된다. 사회 통합성이 또 한 번 저해된다.
반면에 보편주의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동일한 사회보장 기회를 제공한다. 가난한 자를 골라내지 않는다.
낙인효과에서 자유롭다. 다 같이 내고 위험에 빠진 사람이 그때그때 받는 것이기에,
국민이 비용분담자와 급여수혜자의 두 층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사회 통합성이 저해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의 무차별 보편주의의 경우, 모든 국민이 급여 대상자다.
수혜단계에서는 낙인효과가 있을 수 없다. 최대의 장점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순 수혜자와 순 비용분담자가 명확하게 나뉜다.
이재명 지사가 주장하듯, 국토보유세 거둬서 기본소득을 준다고 가정해 보자.
기본소득 때문에 내야 하는 세금과 기본소득으로 받는 수입이 쉽게 계산된다.
늘 손해 보고 ‘주는 자’와 늘 순익이 나는 ‘받는 자’의 구분이 생긴다. ‘받는 자’가 다수일 것이다.
그래도 늘 ‘주는 자’의 손실감은 사회통합의 저해요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근로 동기를 보자. 저소득층만을 타겟팅한 선별주의의 경우, 기초보장선에서 근로 동기가 저해될 수 있다.
복지급여를 받고자 한다면 덜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급여가 모자란 만큼 채워지는 보충급여방식인 경우, 근로 동기 저해 문제는 더 커진다.
일을 더 해서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복지급여가 삭감되어 플러스마이너스 ‘똔똔(손익분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일하면 뭐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보편주의의 경우, 근로 동기 저해 문제가 선별주의보다 크지 않다.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급여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여가 관대하다면 근로 동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예컨대, 실업급여가 종전 월급의 90%를 주게끔 설계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누가 노동시장에 빨리 복귀하려 할 것인가? 실업 기간이 길어질 것이다.
기본소득의 무차별적 보편주의는 원리상 근로 저해 효과가 없다.
일하든, 소득이 높든 말든 무조건 동일한 금액의 기본소득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긴 하지만, 만약 급여가 상당히 높아서 기본소득만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경우에는, 근로 동기가 크게 저해될 것이다.
실업급여나 육아휴직급여 등 근로 연령대 인구를 상대로 하는 복지급여에는 급여 기간 제한이 있다. 또 구직활동 등을 조건으로 지급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급여 기간 제한이 없고, 구직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된다.
기본소득이 생활비가 될 정도로 높다면, 일을 안 하거나 근로시간을 크게 줄일 것이다.
사실 기본소득론자들이 꿈꾸는 세상이긴 하다. 임금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거 하고 사는 세상.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소를 키우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하는 삶을 살면서도, 사냥꾼이 될 필요도, 어부나 목동이 될 필요도 없는” 세상.
다 그렇게 살면 누가 기본소득 줄 세금을 낼지는 모르겠으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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