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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구나 좋아하는 현금으로 주지 않을까

  • 사회보장
  • 양재진
  • 복지급여

복지 급여를 크게 현금과 현물로 나눈다현금은 말 그대로 돈(cash)이고, 현물은 쌀, 의복 등 물품을 말하지만공보육이나 요양처럼 서비스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근래에 사회서비스가 압도적으로 확장되면서 현물 하면 서비스를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복지 수요자들은 현금 형태를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금으로 받아야 자기가 원하는 물건도 사고 서비스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각기 다른 효용함수를 가지고 있다. 누구는 사과를 좋아하고, 누구는 참외를 선호한다. 같은 돈 3만 원을 쓰더라도 사과를 사 먹겠다는 사람이 있고, 참외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참외를 4만 원어치 받는 것보다 현금 3만원이 더 반갑다. 또 누구는 3만 원을 가지고 사과 2만 원, 참외 1만 원어치를 사겠다고 하고, 다른 이는 반대로 사과 1만 원에 참외 2만 원 어치를 사 먹겠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각자 알아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해야 효용이 커진다. 각자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장 큰 총효용을 얻게 된다. 분명히, 현금이 현물보다 효용이나 만족도 측면에서 훨씬 우월한 급여 형태다.




그런데, 복지국가는 현금을 확대하기보다는 서비스를 늘린다. 아이 기르라고 아동수당도 주지만 공보육을 제공한다. 현재 아이 한 명이 태어나면 정부는 아동수당으로 매달 10만 원을 지급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면 공보육비로 1인당 매달 약 90만 원을 지출한다 (0세 아이의 경우). 현물에 돈을 더 쓰는 것이다. 보육비로 90만 원을 어린이집과 바우처로 주는 대신에, 그냥 아동수당 10만 원에 보육비 90만 원을 더해서 100만 원씩 현찰을 부모들에게 주면 어떨까? 그 돈으로 자유롭게 아이 키우는 데 쓰면 좋겠다. 어린이집에 보내든, 놀이학교에 보내든, 베이비시터를 쓰든, 아이 돌보미를 쓰든, 알아서 지출하면 효용이 극대화 될 텐데 말이다.

국가 입장에서도 현금으로 송금하면, 행정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어 좋다. 어린이집을 짓고, 사고할 필요도 없고, 어린이집에서 아이 숫자를 부풀려 신고하지 못하게 감시·감독 하느라 공무원 채용해서 인건비 나가게 할 이유도 없다. 현금으로 지급하면 이체 수수료 정도만 든다. 그런데도 국가는 가족 정책으로 현금보다는 현물에 돈을 더 많이 쓴다. 왜 그런가?




현금의 높은 전이 가능성(tranferability) 때문에 그렇다. 현금은 어디에 지출하느냐에 따라 사과가 되기도 하고 참외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효용이 극대화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오남용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이 키우라고 100만 원씩 주었는데, 꼭 그렇게 쓴다는 보장이 없다. 술을 사 먹을 수도 있고,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날릴 수도 있다. 정부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고, 애들하고 뛰어놀며 배우고, 책 이야기도 듣고, 한글도 배우고 ABC도 깨우치길 바랐는데, 멀뚱히 집에서 시간만 보낼 수도 있다. 현금에는 눈도 꼬리표도 안 달려 있기에, 아동수당 100만 원이 아이들을 위해 쓰이는지 모니터링하고 통제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아이 돌봄과 교육이라는 정책목표를 세웠으면, 정부는 현금보다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고자 한다. 아동수당으로 100만 원을 주지 않고, 10만 원만 준다. 나머지 90만 원은 보육비로 지출한다. 관료제 비용이 들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 선거 때마다 현금성 복지를 주겠다는 정치가들이 줄을 선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현금을 뿌리겠다고 한다. 현금의 장점이 분명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그런데도 정치가들은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현금복지에 꽂혀 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사회 복지적 성과를 높이는 데 정책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당장의 표를 동원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데, 점점 꽃향기를 맡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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