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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단위 현금급여로 소득재분배를?

  • 소득보장
  • 기본소득
  • 양재진


복지급여의 대상은 개인이기도 하고, 가구이기도 하다. 실업급여는 개인이다. 연금도 그렇다. 그런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개인이 아니라 가구 단위로 지급된다. 근로장려세제(EITC)도 그렇다. 왜 지급 대상의 단위가 달라지는가? 실업급여나 연금처럼 소득보장 프로그램 중에 기여금 납부를 통해 수급권이 발생하는 경우, 가입자 개인이 급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저소득층 혹은 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급여의 경우, 가구 단위로 지급된다. 왜 그런가?


소득재분배의 역전 현상을 막기 위해서이다. 개인 단위에서는 저소득 혹은 아예 소득이 없는 무소득자가 되지만,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닌 자들이 많이 있다. 중산층 가정의 전업주부나 대학생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소득이 없다. 한국인 5000만 명을 소득 수준에 따라 일렬로 줄을 세우면 이들 전업주부와 대학생들은 맨 밑에 놓인다. 이들이 저소득/무소득자라고 생계급여가 들어가고 각종 복지급여가 지급되면, 사회적으로 소득재분배가 일어나고 사회적 형평성이 높아지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진적인 소득재분배가 발생한다.




그런데, 최근 기본소득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개인 단위 급여지급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좌파 버전의 전국민기본소득론자들뿐만 아니다. 최근 전직 고위 관료 다섯 명이 저소득층을 상대로 무조건 현금을 지급하는 역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방식의 우파 버전 기본소득을 제안하고 나서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의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사회에 만연한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개인 단위 기본소득으로 소득 양극화를 이룰 수 있나?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기존의 가구 단위 복지급여 방식보다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클 수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개인 단위에서는 저소득/무소득으로 보여도 가구 단위에서는 전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그러하다. 나는 연세대학교 정교수로 상당히 높은 급여를 받는다. 그런데, 전 국민 30만 원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LAB2050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나에게는 기본소득이 이득이다. 고소득자로서 세금을 더 내도 말이다. 전업주부인 아내, 대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이 받는 기본소득 때문에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받는 게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 결과를 보고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정의고 형평인가?


고위경제관료 5인이 주장한 역소득세 방식은 연 소득 1,2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자에게 최대 50만 원씩 기본소득을 주자는 안이다. 내 아내와 아들과 딸은 연 소득이 0원이므로 세 명이 매달 50만 원씩 총 150만 원을 받는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어려워 파트타임이라도 뛰어야 하는 저소득 가구의 아내나 학비와 용돈 때문에 편의점에서 공부해야 할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을 둔 가정은 내 가족보다 적게 받거나 하나도 못 받을 것이다.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게 무슨 정의고 형평인가?




소득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 저소득 가구의 자녀들이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게 하고자 한다면, 개인 단위의 현금급여로는 안 된다. 가구 단위로 대상자를 정하고, 엉뚱하게 중산층 이상에 돌아갈 자원을 모아서 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지금의 복지급여 방식대로 말이다. 그리고 사족 하나 더. 사후적으로 현금을 쥐여주면 양극화는 다소 완화되겠지만, 소득 계층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계층은 그대로 남는다. 사후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을 좀 줄이고 이 돈으로 중산층 자녀가 향유하는 높은 수준의 보육과 교육을 저소득층 자녀도 받을 수 있게 공보육과 공교육을 강화하면 어떨까?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는 아이들이 생길 것이다. 이게 정의고 형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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