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속동물 By 김성호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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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알고 계시듯 고령사회를 맞아 새로 등장한 사회현상 중 하나가 노노케어입니다. 최근에는 뇌졸중 환자인 아버지를 간병하다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이 존속살인죄 혐의로 4년 형을 선고받은 사연을 계기로 ‘영케어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기존 노인, 장애인, 그리고 아동 돌봄에 이어 새로운 영역의 사회적 돌봄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야말로 “사회적 돌봄 사회”입니다. 이러한 현상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인구나 가족구조, 혹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사회경제구조의 변화가 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즉, 오늘날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고용 불안정, 저출산,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등은 제조업 위주의 근대 산업사회가 끝나고 새로운 사회가 열리는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 변화의 물결에 반려동물 양육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추가된 것이라고 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관련 통계는 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15%에서 많게는 25%의 가정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서구 여러 나라의 경우는 반려 인구가 60~70%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반려인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창하게 사회구조의 변화를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이 반려인에게 주는 이익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구 결과도 증명하듯이 반려동물은 인간에게 건강상, 심리·정서상, 사회관계상 수많은 혜택을 주며,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모두의 삶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려동물을 잘 돌보지 못하면 잠재적 위험이나 부정적인 결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반려인 가구를 넘어 사회의 문제로 이어지고, 그 비용은 오롯이 모두의 세금으로 청구된다는 것이죠. 따라서 반려동물로 인한 문제는 예방하고 긍정적인 효과는 늘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줄곧 주장해온 것으로, 반려동물로 인한 혜택은 반려인과 반려견이 건강한 유대(human animal bond)를 형성하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의 수가 급증한 것에 비해 건강한 반려동물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반려동물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사회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반려인들이 반려동물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제도와 프로그램(서비스) 개발이 절실합니다.
‘반려동물 돌봄 취약계층’의 개념을 정의하면 “반려동물을 잘 돌보고 건강한 인간-동물 유대(HAB)를 유지하는데 일상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거나 특별한 위기 상황을 맞이한 개인이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분들은 경제적, 신체적 제약이 있는 독거 어르신들일 것입니다. 특히 나이 든 독거 어르신과 나이 든 반려동물이 서로에게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반려동물 노노케어’ 문제도 심각합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독거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서 미용, 산책, 병원 방문 등등 필수적인 케어를 하지 못하는 것과 자신이 먹는 음식을 반려동물에게 급여하는 사례입니다. 이외에도 반려동물과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입원이나 요양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분들, 반려동물과 사별을 앞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분들, 그리고 물건저장 강박증에 더해 애니멀 호더가 될 위험에 처한 분들까지 다양합니다.
이 글에서는 여러 사례를 통해 반려동물 노노케어의 필요성과 실천방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어르신들에게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 제공하기" 입니다.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 중에 자신이 먹는 음식을 반려동물에게 나눠주는 경우가 많습니다(사실은 대부분입니다). 나눠준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맛있는 반찬은 자신은 안 먹고 반려동물에게 양보합니다. 반려동물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는 것은 왜 문제일까요? 반려동물이 사람이 먹는 짜고 매운 음식을 섭취함으로 인해 질병 발생의 위험이 있는 동시에 독거 어르신 역시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해 모두 건강상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이 든 반려동물이라면 여러 가지 질병에 더욱 취약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아무리 말리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복지가 발달한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제공할 때,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에는 반려동물의 사료와 간식을 함께 배달하는 서비스가 일반적입니다. 저소득 노인들에게 반려동물의 사료까지 지원함으로써 재정 부담을 덜고 균형 있는 사료공급을 통해 반려동물이 건강을 유지하여 노인과의 유대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사례를 소개하면, 미국 Dallas 주에 위치한 The Seniors Pet Assistance Network (SPAN)은 자원봉사자들이 67세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개, 고양이, 심지어 새들을 위한 사료를 배달하며 SPAN의 동물병원을 통해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수의학적 지원을 제공합니다. 수의학적 지원은 당장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료와 간식 지원은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료 제조 업체니 유통업체의 후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후원이 필요하신 분은 제게 개인적으로 알려주시면 후원을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사진 설명: 아빠와 딸이 이웃 어르신에게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을 전달하는 자원봉사 활동(출처: Senior paws for pet 웹사이트 )
둘째, 어르신들이 평상시에 겪는 어려움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반려동물 양육은 먹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보살피고 각종 욕구를 해결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거동이 불편한 데다가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어르신들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미국 뉴욕의 노인복지기관인 JASA(Jewish Association Serving the Aging)이 시행하는 Pets and Elder Team Support (PETS) Project를 모범사례로 소개합니다. 1997년부터 시작된 PETS는 노화, 질병, 비용부담 등의 이유로 반려동물을 잘 돌보기 어려운 노령 반려인에게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고 연결하여 노인과 반려동물 모두에게 필요한 지원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외에도 동물병원 방문을 돕거나 반려인이 입원할 경우 반려인의 집이나 임시위탁 보호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돌보는 일과 입양이 필요한 경우에 적절한 지원을 제공합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에게는 반려동물 사료와 간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일 년에 최대 250달러(약 30만 원)의 반려동물 돌봄 지원비를 지급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서비스는 반려동물 돌봄 경험이 있으며 임상 사회사업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사회복지사의 관리와 감독하에 진행됩니다.
사진 설명: JASA Pets and Elder Team Support Project를 소개한 Mayor's Alliance for NYC's Animals의 사진 (출처: http://www.animalalliancenyc.org/media/ootc/2006-09/aao.htm)
셋째, 반려동물과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입원이나 요양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어르신의 경우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경우, 남겨진 반려동물은 어떻게 될까요? 영국의 사례에서 그 해결책을 빌려봅니다. 영국 웨일스에 위치한 시나몬 트러스트에서는 노인과 말기 환자들이 반려동물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마지막 생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들과 반려동물을 함께 보살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는 동물을 잠시 이용하는 동물 매개 치료 방식이 아니라 24시간 보살핌을 제공하기 위해서 반려인들과 자원봉사자가 함께 노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를 위해 시나몬 트러스트에서는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약 1만 8천 명의 교육받은 자원 봉사자를 활용합니다. 그들은 요양원이나 가정을 방문하여 거동이 어려운 환자나 노인을 대신해서 반려견을 목욕시키거나 산책 시켜 주며 필요에 따라서는 반려동물의 병원 진료를 대신해 주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고양이를 돌보거나 새장을 청소하는 등의 봉사활동을 수행하죠. 한편 시나몬 트러스트는 어르신이 사망할 경우 반려동물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돌볼 수 있는 계획을 사전에 수립하여 반려인이 안심하고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넷째, 반려동물이 먼저 사망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려동물의 죽음과 장례는 외면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반려인의 대다수가 반려동물의 사후 처리와 장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반려동물과의 사별의 아픔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이후 펫로스 증후군 등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이 사망하기 전에 준비할 사항을 미리 숙지하고, 자신에게 맞는 장례 절차를 준비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반려동물과의 사별을 앞둔 노인을 위한 지원은 국내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노원구 자원봉사센터는 독거 어르신들의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장례비용 지원을 포함한 반려동물 장례식장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반려동물 장묘업체와 협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반려동물의 장례 과정에 함께하며 정서적인 지원과 이동을 도울 자원봉사자를 확보해 두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를 참조하여 반려동물 장례지원 봉사단을 꾸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진 설명: 반려동물 장례지원 등 노원구의 취약계층 어르신 반려동물 돌봄 지원 사업을 소개한 한국일보 기사 (다음 URL을 클릭하면 기사와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01315340004125
이상 소개한 사례들을 실제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 적용하고 시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벽은 “왜 능력도 안 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냐?” 혹은 “사람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반려동물 지원이냐?”는 비난입니다. 물론 반려동물을 맞이하는 것은 신중한 결정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무턱대고 독거 어르신에게 반려동물 입양을 권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죠. 그러나 이런저런 경유로 이미 반려동물과 함께 살게 되고 깊은 유대를 맺은 경우에는 어르신과 반려동물을 따로 떼어놓고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은 어떤 사람보다 귀중한 존재이고 삶을 유지하는 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분들이 반려동물을 잘 돌보며 정서적·신체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유익한 가성비 높은 복지 활동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반려동물 노노케어 지원을 공론화해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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