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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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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전쟁으로 온 국토가 황폐해졌다. 공장과 집은 말할 것도 없이 나무도 없었다. 그 시절에 복지는 당연히 가난을 채우는 ‘주는복지'였고 대상은 사회 전체였다. 반세기 만에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양적 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고 세상도 변했다. 여전히 주는복지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회문제가 생겼다. 사회적 고립은 대표적으로 새로운 사회문제이다. ‘주는복지’로 대표되는 양적 대응으로만 어려운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진 관성은 좀처럼 변화를 어렵게 만든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데 새로운 사회문제를 과거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새로운 사회문제는 일단 ‘모집’이 통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모집만 하면 대상자는 차고 넘쳤다. 오히려 심사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한된 자원으로 넘쳐나는 대상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모집이 사회복지에 매우 익숙한 방법이 된 이유이다. 새로운 사회과제는 모집이 통하지 않는다. 사회적 고립 대상자를 모집하지 못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모집하기 어렵다. 고독한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모집하지 못한다. 사람이 없는데 사업이 시작된 이상한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과거의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 잘못하고 있고 문제가 있으니 바꾸라는 말이 아니다. 상황이 변했으니 바꾸자는 말이다. 더 정확한 표현은 바꾸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과제에 새롭게 대응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장마가 일정한 기간에 집중되었다. 지금은 환경의 변화로 장마가 지엽적 집중호우로 변했다. 초여름 장마에 맞춘 수해 대책으로는 안 된다. 집중호우 대책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힘은 힘대로 들고 문제는 문제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회복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응도 자연히 변해야 한다. 사회문제에 무작정 투입되어 땀을 흘리기 전에 우리의 운영방식이 적합한지 돌아봐야 한다.


둘째, 선택과 집중이다. 가난한 시절에는 사회 전체가 복지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가난했고 문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대상과 지역을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문제가 터진다. 외로운 지역이 따로 있지 않다. 고독사와 자살의 위험군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역과 대상을 특정해서 대응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지역과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에서 실행하는 지역밀착 복지관 사업은 적합하게 방향이 설정되었다. 지역의 모든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기보다는 중년 남성에게 집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다.


셋째, 유연한 대응이다. 민간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정부 보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공성이 높은 재원인 보조금은 높은 수준의 책임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 현장에 증빙 문서가 많고 지도점검과 평가의 비중이 높은 이유다. 행정은 혁신과 도전보다는 안정이 중요하다. 법이 현실을 앞서지 못하고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사회문제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길이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고 사회복지관의 경로식당처럼 정해진 것이 없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일 년 사업 계획보다는 분기 사업계획이 유연하다. 열 장짜리 사업계획보다는 한 장짜리 사업계획이 유연하다. 중간관리자부터 최고 관리자까지 모두의 결재를 받는 것보다 팀 단위로 위임된 결재가 유연하다.


넷째, 시도 자체가 성과다. 아무리 앞의 내용에 수긍이 가도 평가라는 잣대를 대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결국 평가를 위한 사업, 단기 성과를 위한 변화의 폭이 작은 안정된 시도만 한다. 익숙한 것에는 변화가 없고 새로운 성과가 없다. 익숙하다는 말은 이전에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조금을 받는 복지기관의 현실을 무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미 있는 본질에 집중하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민간 재원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나 사회운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성과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남이 만들어 준 목표를 성과로 착각하지 말고 스스로 성과를 정의하고 분명한 현장의 언어로 제시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결과 중심의 성과평가에서 벗어나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훈련을 해야 한다. 사실은 새로운 시도 자체가 성과다.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목표 설정을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과거의 성과에 머물고 있을 때 새로운 길을 찾는 게 성과가 아니라면 무엇이 성과란 말인가? 사회는 그렇게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창조적 소수로 인해 진보했다.


이 글을 읽는 100명의 사람 중에 99명의 사람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난해도, 그러면 당장에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힐난해도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도 변화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한 명을 위해서다. 현실과는 너무 먼 정책 앞에 무력한 한 명을 위해, 용기 없는 리더십의 벽 앞에 답답한 한 명을 위해, 바위에 계란 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 하루 지역으로 몸을 던지는 한 명을 위해, 마음속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면서도 만나는 지역의 한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녹는 한 명을 위해. 어딘가 분명히 있을 그 한 사람에게 말해주기 위해서다.  당신이 옳고 당신의 실천이 절대로 헛되지 않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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